(스포) <겨울왕국 2> 보고 왔습니다.

2019.12.19 20:23

Sonny 조회 수:465

같이 본 지인이 너무너무 즐거워해서 보람은 느꼈습니다만, 재미는 별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영화가 전편에서 주창한 정치적 의식을 스스로 배반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겨울왕국2>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에서 침략자라는 가해성을 깨닫고 이방인의 용서를 구하는데 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만, 이걸 전편의 소수자성이라는 주제로 놓고 보면 좀 뜨악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자기 혼자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고립을 자처할 수 밖에 없던 소수자가, 가족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지지자의 헌신 끝에 공동체로 복귀하여 소속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겨울왕국2>는 그 소수자가 스스로 공동체에 머무르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공동체로 떠납니다. 가장 크게 호명되는 성소수자의 정체성으로 생각해보면 많이 이상하죠. 난 퀴어여도 이반들 사이에서 잘 살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하지만 내 귀에 자꾸 종로3가의 노랫소리가 들려~


<겨울왕국2>의 본래 주제로 생각해도 엘사가 아렌델 바깥으로 가는 건 좀 위화감이 있습니다. 엘사와 안나의 어머니가 바로 노덜랜드의 주민, 이민자 출신입니다. 미국백인의 기준에서 생각할 때 안나와 엘사는 "순수백인"이 아니라 일종의 하프인 셈인데, 여기서 엘사가 아렌델 바깥으로 나가는 건 냉동마법(...)을 쓰는 점이 바로 이민족의 이질성으로 연결되어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엘사는 아렌델 국민과 다른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그 이질성이 자신이 왕궁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 필연적 이유가 됩니다. 다섯번째 정령이라 함은 결국 엘사가 정령의 힘이 없는 "평범한" 아렌델의 사람이 아니라 이민족들인 노덜랜드에 소속될 수 밖에 없다는 걸 뜻하는데, 그렇다면 오히려 엘사는 아렌델로 더더욱 돌아갔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고 이뻐하는 엘사는 사실 코카시언이 아니라 다른 인종일 수 있다구! 하는 타자성을 오히려 불어넣은 걸 수도 있겠찌만... 그래도 좀 궁금합니다. 아렌델과 노덜랜드의 다리 노릇을 하는데 엘사가 굳이 아렌델 왕국을 포기하고 노덜랜드에 소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액션이 전체적으로 시원시원하더군요. 엘사는 이제 건축만 하는 게 아니라 레이저 빔도 엄청나게 쏩니다. 마블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 건 그냥 제 생각인지... 역동적이면서 호쾌한 액션이 속편다운 장점이긴 하더군요. 그렇지만 디즈니면 디즈니답게 공주님의 품위를 좀 더 정적인 자태로 지켜도 되지 않을까 하는 고리타분한 생각도 좀 따라붙긴 했습니다. 도마뱀은 너무 굿즈를 노린 티가 났고, 올라프는 귀여운 줄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냥 저는 엘사를 보면서 아렌델 버젼 아이언걸... 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만 이러나 저러나 엘사가 예뻐서 좋았네요. 안나는 약간 정상가족 헤테로 컨셉이 강해서 그런지 1편에서 한스랑 알콩달콩하던 모습이 없으니까 좀 인상이 덜했습니다. 크리스토프는 그냥 안나와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올라프가 까불면서 겨울왕국 내용 설명할 때는 좀 웃겼네요. 그리고 디즈니의 기술력은 이제 정말 세계최강이라는 것만 실감했습니다. Into the unknown 부를 때나오는 영상이 정말... 저도 모르게 에밀레 에밀레 환청이 들리는 듯한!


@ 아차. 덧붙이자면 <겨울왕국2>가 가지는 환경보호의 메시지가 잘 전달이 될려나요. 그레타 툰베리는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3903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2327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0731
124948 프레임드 #637 [3] Lunagazer 2023.12.08 62
124947 드니 빌뇌브 내한 기념 용아맥 무대인사와 듄 파트 2 프롤로그 상영 후기(파트 2 프롤로그 스포 아주 약간) [2] 상수 2023.12.08 288
124946 드라마 '황금신부'를 보는데 이영아 배우에게서 뉴진스 하니가 보여요... [1] 왜냐하면 2023.12.08 300
124945 하마구치 류스케의 신작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를 겨우 보고(스포 있음) 상수 2023.12.08 255
124944 제논 2 음악 [2] 돌도끼 2023.12.08 65
124943 레알 마드리드 보강 계획 ㅡ 알폰소 데이비스,음바페,홀란두 daviddain 2023.12.08 157
124942 [핵바낭] 올해가 3주 밖에 안 남았습니다 여러분 [14] 로이배티 2023.12.07 435
124941 [피로사회] 좋았네요. [6] thoma 2023.12.07 362
124940 프레임드 #636 [4] Lunagazer 2023.12.07 74
124939 서울의 봄 흥행에 생각난 명대사 - 야 이 반란군 놈의 시끼야 상수 2023.12.07 354
124938 (스포) 전장연 다큐멘터리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6] Sonny 2023.12.07 302
124937 [스압] 오랜만에 올리는 스누피 스티커 [3] 스누피커피 2023.12.07 261
124936 레알 마드리드 음바페에게 최후통첩 daviddain 2023.12.07 207
124935 엑스포 떨어진 부산 민심 달래는 윤석열과 재벌들...(국제시장 방문) [5] 왜냐하면 2023.12.07 498
124934 2023 National Board of Review Winners [1] 조성용 2023.12.07 176
124933 Norman Lear 1922-2023 R.I.P. 조성용 2023.12.07 97
124932 요즘 좋았던 영상 - 스위트홈 시즌 2, 워너 100주년 기념 DDP 전시, 고양이의 도미노, 전정부의 엑스포 홍보영상, 마음돌보기 상수 2023.12.07 221
124931 [넷플릭스바낭] 뜻밖의 인도네시안 스릴러, '복사기' 잡담입니다 [4] 로이배티 2023.12.06 266
124930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2023 한국영화 베스트 10 [1] 상수 2023.12.06 470
124929 프레임드 #635 [4] Lunagazer 2023.12.06 6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