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즌 3까지 나온 미스테리 스릴러 시리즈이고 시즌 3은 편당 한 시간씩 8편입니다. 스포일러는 없게 적을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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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때는 현대. 2019년 독일의 '빈덴'이라는 가상의 시골 마을이 무대입니다. 얼마나 시골이냐면,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도심, 쇼핑몰, 슈퍼 한 번 안 나와요. ㅋㅋ 사실 제작비 때문이겠지만 여기에 갑자기 실종된지 33년된 어린애의 시체가 마치 이틀 전에 죽은 것 같은 상태로 툭 떨어지고. 마을 사람들이 경악에 사로잡힌 가운데 비슷한 또래의 어린이 하나가 실종이 되죠. 실종 당시 그 어린애와 함께 심야에 동네 동굴 탐험 중이던 청소년들, 그 중에서도 주인공격인 녀석 하나가 그 아이를 되찾는데 집착하다가 결국 그 동굴 안에서 뭔가를 발견하는데 그거슨...


 뭐 대략 이야기의 시작은 이러합니다. 시즌 3 관련 스토리는 적을 수가 없네요. 시즌 3에 대해 설명할만한 내용이라면 뭘 적어도 스포일러라서.



 - 이 시리즈의 성격과 분위기를 간단히 요약한다면.... 고대 비극 내지는 신화에 빗댈 수 있겠습니다. 시즌 초기에 대놓고 등장 인물들이 '아리아드네' 연극을 연습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구요. 현실성은 시크하게 엿바꿔먹고 주인공들의 비극과 고난에만 집중하는 태도도 그렇고. 캐릭터의 입체성 같은 데도 별 신경 안 쓰고 일관된 성격 하나씩만 부여해서 끝까지 밀어 붙이는 것도 그렇고. 뭣보다도 이 이야기 자체가 다루는 주제와 그로 인해 연출되는 분위기가 그러합니다. 그게 뭐냐면, 한 마디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실패하기를 끝없이 반복하는 이야기에요. 운명. 숙명. 벗어날 수 없음. 안 됨. 니가 뭘 하든 암튼 안 됨. 우와앙 좌절!!!


 거기에다가 정적이고 어두우며 기이하고 절망적인 분위기'만' 시종일관 끝까지 밀어붙이는, 하지만 뭔가 유럽 중세 회화 느낌으로 폼나게 장엄한 미장센, 배우들의  드라마틱한 얼굴(?)과 가라앉는 연기까지 결합되어 그야말로 '다크'한 비극이 완성됩니다.



 - 상당히 폐소 공포증을 유발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툭하면 동굴이나 벙커로 기어들어가서 문자 그대로 '폐소'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야기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그렇게 신나게 다양한 시간대를 넘나들면서도 공간적 배경은 '빈덴' 하나로 끝나요. 거기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구요. 등장 인물도 첫 시즌 1~2화에서 얼굴 본 캐릭터들만 계속해서 우려먹구요. 이야기와 사건의 스케일은 점점 더 커지는데 공간과 인물들이 시작부터 끝까지 그대로 유지가 되니 좀 답답하기도 하고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너희들 중 단 한 명이라도 그냥 다른 동네 가서 새 삶을 찾으면 안 되겠니?) 그게 또 전체적인 작품 분위기와는 잘 어울립니다. 불만은 없었어요.



 - 또 한 가지 이 드라마의 강력한 특징이라면 '도무지 이해 불가능'(...)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결국 현재를 고치려고 시간 여행을 하는 시간 여행자들의 이야기인데. 음... 주요 등장 인물만 열 댓명이 되는 가운데 그 중 두 셋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시간 여행을 합니다. 순서대로 한 명씩 이딴 거 없고 그냥 다, 막 하죠. 그것도 한 번씩만 하는 게 아니라 밑도 끝도 없이 계속합니다. 그러다보니 시즌 2 중반을 넘어가면 이야기가 대략 네 다섯개쯤의 시간선에서 전개가 되는데 이걸 교차편집으로 마구(!) 집어 던져요. 그러다보니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모든 시간선에서 모두 다른 나이, 다른 시기, 다른 목적으로 존재하면서 서로 맞물려돌아가게 되는데... 보면서 정말 작가와 제작진 패기 넘친다는 생각을 했네요. 진짜로 시청자들이 이걸 다 이해하며 따라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걸까요. ㅋㅋㅋ 참고로 전 시즌 2 말미에 완전한 이해를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시즌 3에선 그냥 이해를 포기


 그런데 이런 복잡 난해함이 사실 분명한 의미가 있고 효과가 있다는 게 이 작품의 특이하면서 절묘한 점입니다.


 이해가 안 되죠. 상황을 못 따라가겠죠. 근데 주인공들도 그래요. 자꾸만 과거, 미래에서 누가 나타나 이래라 저래라 조언을 빙자한 지시를 하는데 이런 상황 자체도 영 쌩뚱맞을 뿐더러 이 놈들이 자길 도와주려는 건지 이용해먹으려는 건지, 사태를 해결하고 싶은 건지 끝장을 내버리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선택은 해야 하고 선택을 하면 노력도 해야 하구요. 이렇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뭐든 결단은 내려야 하니 정말 환장하겠군' 이라는 인물들의 심정을 십분 이해하게 됩니다. ㅋㅋ


 그리고 또 이런 복잡성이 이야기의 신화적인 느낌, 숙명적인 느낌을 강화해주는 것도 있어요. 하도 많은 인물들이 '홀연히' 나타나서 선문답 같은 소릴 조언이라고 툭 던지고 사라지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니 나중엔 이게 다 그냥 끝 없는 악몽이고 쟈들은 다 유령이고 (보면서 귀신 하나도 안 나오는 유령 영화 같다는 생각을 계속 했습니다주인공 저 놈은 결국 뭘 해도 안 될 거야... 뭐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굉장히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이해를 살짝 내려놓고 분위기를 즐기기 시작하면 이전에 많이 경험 해 보지 못한 흔치 않은 분위기를 만끽하실 수 있습니다.



 - 이쯤에서 대충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운명, 숙명에 대한 고전 비극 스타일의 이야기를 좋아하신다면 추천합니다.

 미쟝센부터 배우 생김새, 언어까지 '헐리웃 스타일과 뭔가 다른 맛'을 느껴보고 싶으신 분들께도 추천합니다. 독일 잘 모르는데도 '되게 독일스럽다'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만드는 드라마였어요. ㅋㅋ

 보다가 상황이 이해가 안 되면 짜증이 난다... 이런 분들은 회피하세요. 제가 살면서 본 드라마들 중에 가장 따라가기 힘든 작품이었거든요.

 느릿느릿한 분위기 싫어하는 분들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이게 희한한 게, 사건은 쉬지 않고 벌어지고 이 시간대에서 저 시간대로 점프하는 호흡도 아주 짧은데도 늘 느리다는 느낌을 줘요. ㅋㅋㅋ

 그리고 지금까지 설명을 보면 짐작하시겠지만,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유머라곤 1도 없습니다. 묵직 느릿 암울 절망 칙칙 잔혹... 뭐 이런 느낌이라는 거.

 마지막으로, '명색이 시간 여행 다룬 드라마인데 최소한의 과학적 양심은...' 같은 생각도 하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고증이 엉망이다... 가 아니라 그냥 애초부터 고증 같은 덴 아예 관심이 없는 드라마거든요. 보시려거든 이 드라마의 장르는 SF가 아니라 환타지다... 라고 생각하면서 보세요. 


 뭐 전 아주 만족스럽게 봤습니다만. 남한테 추천해주긴 많이 겁나는 드라마입니다. 




 + 위에서 말 했듯이 시간 여행자들이 너무 많고 등장 인물과 배경은 제한적이다 보니 별의 별 막장 조합이 다 나옵니다. 자기가 자기를 죽이기도 하고 부모가 자식을 해치고 자식이 부모를 해치고 심지어 자식이 부모가 되고 부모가 자식이 된다든가... ㅋㅋㅋㅋㅋㅋ 엄청 가라앉은 진중한 톤으로 시치미 딱 떼고 전개해서 그렇지 제가 일생동안 본 드라마 중 가장 막장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근데 뭐, 원래 신화가 그렇잖아요.



 ++ 그리고보니 마지막 시즌인데 결말 소감을 얘기 안 했군요. 음... 뭐 나쁘지 않았습니다. 우왕 이거야!! 까진 아니었고 살짝 힘이 빠지는 느낌도 들었지만 뭐 이 정도면 만족할만한 결말이었어요. 다만 만약 내가 1, 2, 3시즌을 연달아 달렸으면 어땠을까... 를 생각해보면 좀 '잘 모르겠다' 싶은 부분이 있네요. 자칫하면 좀 질렸을 것 같기도 하구요. 뭐 그래도 막판에 너무 티나지 않는 연출로 인물 관계들과 그 마무리를 정리해주는 건 좋았습니다. 너무 복잡하게 꼬여 있어서 다 보고 나서도 엔딩의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가계도를 다시 훑어봐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었지만요. ㅋㅋㅋ



 +++ 아. 그러고보니 한 가지 큰 불만이 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 떡밥으로 등장하는 '어떤 사건'이 중반 이후로는 이야기의 관심권 밖으로 멀어져가다가... 마지막까지 구체적인 설명이 없이 그냥 넘어가버려요. 아마 열심히 분석하며 본 팬들은 답을 알고 있겠지만 저는 여전히 ? 인 상태로 결말을 맞아서 좀 당황스러웠네요.

 뭐 그래도 질질 끌며 시즌 수 늘리지 않고 끝내줘서 고마웠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아주 인상적으로 잘 본 드라마였어요.



 ++++ 막판에 대략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는 일에 매달릴 수 있지만, 무엇을 원할지는 선택할 수 없다."

 작품 분위기와 주제를 정말 잘 요약하면서도 인상 깊은 대사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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