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실질적인 공포

2011.06.13 23:59

서생 조회 수:3817

 요즘 제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저희 반 꼬맹이들의 유희왕 카드나 청소 구역에 대한 시비가 아니라 헬스장의 조폭들입니다. 바스키아가 김홍도를 만났을 때나 나올 법한 아트가 목 언저리부터 발목까지 있는 분들이 대여섯 탈의실에 몰려있을 때는 제 평생 가장 실질적인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오늘은 그분들이 제 락커 앞을 가로막고 논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순간 영원히 제 가방과 핸드폰을 못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존심이 상하더라고요. 그 좁은 탈의실을 차지할 때는 누군가가 불편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못하나요? 저는 저 정도 비만인들의 평균 넓이보다 약간 더 넓은 어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깨를 접었지요. 반으로, 1/3로 차라리 새우가 된다면 터지는 건 등뿐이었을텐데 하며. 그렇게 좁디 좁은 동양화 사이를 겨우겨우 지나갔을 무렵 미처 접지못한 팔꿈치가 봉황의 날개죽지를 건드리고 말았네요. 머리털이 곤두섰죠. 제가 가진 존엄은 봉황의 깃털보다 가벼운 것이니까요. 공손하면서도 비굴하지 않을만한 표현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죄송해요'보다 나은 표현이 있을 것 같지 않더라고요. 봉황이 먹잇감을 찾듯 저를 쳐다보는 그 분께 저는 준비한 멘트를 날렸습니다. '잘못했습니다.'라고....

 헬스장 이용기간은 앞으로 열흘이 남았네요. 그동안 저는 또 얼마나 제 잘못을 실토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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