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전은 우리나라 전쟁영화에서 한번도 전쟁에 대해서 제대로 다루지 않았던 지점을 다루고 있습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헐리우드식의 장르 전쟁 영화였고 결국 가족물이었습니다. 우리가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면서 한국전쟁의 비극을 느꼈나요? 아니죠. 실미도를 보며서 분단의 아픔을 느꼈나요? 아닙니다. 한국전쟁과 분단을 다른 모든 영화는 그 소재를 제대로 다룬 적이 없습니다. 아직도 한국전쟁과 북한의 존재는 정치권에서 헤게모니 싸움의 주요 쟁점이기 때문이죠.

 

고지전은 2년 동안의 휴전 협상 동안 이유없고 의미없이 바스러진 생명들에 대한 영화입니다. 그 땅 몇 킬로미터 쳐먹는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고지 쟁탈전에서 2년동안 300만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고지전은 실제 있었던 전쟁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현실도피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소재를 택한 겁니다. 6.25는 아니고 그 이후의 고지 쟁탈전. 지금의 누가 봐도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짓입니다. 하지만 고지전은 이 전쟁에 대해서 동막골처럼 후퇴하지도 않았고,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상업성 속에 모든 걸 숨기지도 않았습니다. 

 

전쟁의 전체를 조망하지는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지 쟁탈전은 전쟁의 부조리가 모두 집약된 곳이고, 실제로 한국전쟁의 일부분으로 일어났던 일입니다. 소재를 살짝 피해가고 후반부의 감정이 과잉일지더라도 적어도 고지전을 한국전쟁을 다루는 법에 있어서 정공법을 택했고, 우리가 겪었던 전쟁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지는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미, 서구의 장르 전쟁영화들이, 그리고 그 영화들을 모방한 우리 영화들이 전쟁을 게임이나 장르 속의 오락물로 바꾼 것과는 달리요.

 

고지전은 한국전쟁이 아직도 우리 역사의 일부일 동안에 처음으로 한국전쟁의 실제 모습을 보여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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