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희망버스 다녀왔습니다. 한진중공업에 진입하지 못한 아쉬움이 무척 큽니다. 그 아쉬움 그대로 가져오며 3차 때는 그 아쉬움이 행동으로 투쟁으로 이어지리라 다짐했습니다. 함께 해주신 듀게분들 무척 고맙습니다. 1박 2일 오프 제안이 부담스러울 법 한데, 선뜻 와주신 분들, 무척 고맙습니다.

 

1. 듀게에서 함께 내려간 분은 저포함 3명이서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저녁을 먹는데, 밥과 반찬을 골라서 반찬마다 매겨진 가격을 합계해서 내는 구조였습니다. 각기 다른 반찬을 사들고 다 함께 먹었어요. 적은 돈으로 다양한 반찬을 먹으며 연대의 소중함에 대해 뻐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2. 가는 도중 진보신당에서는 선깹을 팔았습니다. 썬캡과 희망버스에서 나눠준 손수건으로 어떻게 채증에 피하며 얼굴이 나오지 않을 수 있는지 숙련된 조교가 직접 시범을 보였습니다만, 전 썬캐보다 도시락을 준비한 옆단체가 무척 부러웠습니다.

 

3. 부산역에서 공연하면서, 누군가 그랬습니다. '한진중공업 행태에 반대하면서 한진중공업 불매운동을 선언한다. 한진에서 나오는 배는 결코 사지 않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저 또한 이 일에 동참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한진중공업 배는 결코 사지 않겠습니다. 많은 분들의 불매운동에 동참해주시길.

 

4. 공연가운데 쌍용차유재석씨 께서 시크한도시남자st를 하시려는듯, 단답형으로만 대답하며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습니다. 이런 설정, 부끄러웠지만, 그분의 말씀에는 공감했습니다. '10일내내 평택에서 부산까지 내려가는 동안, 쭈쭈바도 삼계탕도 아닌 눈물이 가장 맛있었다'고요. 우리 정동영 시인께서는 그 분 말씀을 듣고 그 눈물이 희망이기때문이라는 멘션을 트위터에 날리셨더군요. 정도령 시인 탄생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5. 부산역에서 부산에 살고계신 듀게분을 만나 함께 행진하였습니다. 그동안 해주신 밥상말씀을 비롯해 제 마음에 오롯히 새겼어요. 선배님들께서 힘들게 만든, 진보의 길, 제 후배들을 위해서 열심히 지키고 있겠습니다.

 

6. 진입장벽을 보기 전, 조금씩 전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 인원이면 충분히 뚫을 수 있겠구나 설레발이 가득이였습니다. 한시간이 지나도 움직이지 않았을 때, 앞으로 앞으로 전지하고 진입장벽을 보니, 무력감이 들더군요. 뚫기 어렵겠구나, 그 때 절망감이 결국 진입장벽을 뚫지 못한 게 아닌가, 내내 마음에 걸립니다.

 

7. 영도다리를 건너 경찰들이 진입장벽을 만들고 맨 앞 사수대에게 모기약 뿌리듯 칙칙 최루액을 뿌릴 때 힘들게 고생한 동지들 수고많으셨어요. 그 때 연행되는 심상정을 보고 우리 모두는 참으로 기뻤습니다. 그 곳에서는 연행되어야죠. 역시 심상정입니다. 진보신당 당원으로서 화가 났던 건, 심상정이 연행될 때 노회찬은 연행되지 않고 최루액만 맞고 싸웠다는 겁니다. 심지어 조승수는 모자를 쓰고 왔더군요. 안그래도 까매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 지금 채증 염려하는 시위대도 아니고 아직 시위대 시절을 벗지 못하였단 말입니까. 카메라 앞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정동영을 보면서 아직 배워야할 게 많은 철든 애를 보는 심정이였습니다.

 

8. 대치상황이 심각해졌을 때, 옛날 말씀 하시던 듀게분 아내님께서 거의 말씀을 안하시다 남편분께 입을 여셨어요. 정확한 말씀은 기억나지 않지만, 자랑하지마라,는 뜻이였습니다. 아내님도 운동 하셨냐고 제가 물었었는데 그 시절에는 다 했다는 말씀을 하셨지요. 한없이 겸손하셨던 말씀과 태도가 무척 인상깊었습니다. 몇 번의 시위 참여로 앞에 나서고 있는 제 자신이 무척 부끄러웠어요. 저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운동하는 사람이 소수이듯이, 모두가 운동했다고 무용담을 펼치던 그 시절에도 아주 소수였다는 걸요. 그리고 그 소수이신 분들은 이렇게 남 앞에 서지 않고 묵묵히 열심히 투쟁하고 계시다는 걸요. 더 많이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말없이 서로 챙겨주고 배려해주는 모습 보면서 무척 부러웠어요. 애인에게 배려와 챙겨주는 모습에 대해 전하니 '우리도 그렇게 나이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이였어요. 많이 겸손해지고 겸허해지고 배려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 또한 그 나이가 되서 시위에 내려오는 저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부부님들처럼 대접해주시려고 노력하고 그리고 또 좋은 모습 보이도록 노력할께요.

 

9. 새벽 불고기를 드시고 라면을 끓이는 아저씨들 옆자리에서 라면냄새를 이기지 못하고, 같이간 일행들에게 황도와 라면을 맞바꿔오겠다고 아저씨들에게 갔습니다. 아저씨들은 민노총 조합원들이라고 하셨는데, 그 가운데 한 분께서 시민으로 온겁니다. 하시더군요. 민노총 조합원으로 오지 않고 개인이 시민으로 참여했으니 지금은 조합원이 아니라 시민인거라고요. 그 말씀이 굉장히 씁쓸하게 들렸습니다. 민노총 깃발을 들고 민노총 조끼를 입고 민노총 조합원으로서 희망버스에 얼마나 탑승하고 싶었을까요? 개인이 아닌 조직으로서 참여로 민주노총이 김진숙을, 한진중공업을 지지하고 싶다고 얼마나 보여주고 싶었겠습니까. 누구보다 맨 앞에서 자랑스런 노동자 조끼를 입고 얼마나 싸우고 싶었겠습니까. 민주노총, 금속노조 지도부는 비판받고 반성해야합니다. 시민들에게만 맡겨둘 게 아니라, 조합원을 시민으로서 참여시킬 게 아니라, 조직으로서 한진중공업 조합원들하고 연대해야합니다. 그리고 함께 투쟁해야합니다. 진입장벽이 너무 두터워서 뚫지 못하겠다는 절망감이 들었으나, 우리는 못뚫은 게 아닙니다. 조직으로서 참여하지 못함으로서 우리는 진입장벽을 무너뜨리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투쟁현장에서 깃발이 왜 필요한지, 우리가 왜 깃발을 펄럭여야하는지, 깃발이 어떤 상징이고 의미인지, 민주노총은 다시 처음부터 배우고 공부해야할 것입니다.

 

10. 새벽 졸리고 지치고 힘들 때, 무키무키와 만만수였던가요. 재기발랄한 공연이 상당히 웃겼습니다. 어느 상황에서도 우리가 잃지 말아야할 것은 유머에 대한 애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11. 같이 내려간 동지들이 인근 식당에서 문 열자마자 밥을 먹을 때, 가게 사장님께서 그러셨대요. 이렇게 장사가 잘 되기는 8년만이라고요. 재료가 없어서 더 이상 팔지 못하는 품목들. 물밀듯이 들어오는 사람들. 사장님 표정이 참 오묘했다고 해요. 손님은 많고 재료는 없는 상황. 8년만의 상황. 8년, 8년 전 지난 주말처럼 장사가 잘 되었던 날들이 있었던 8년전, 김주익 열사의 장례투쟁이 있었죠. 사장님께서는 그래서 8년전이라고 말씀하셨던걸까요. 우리에게 희망버스가 희망이였듯이 그 지역 상권에서도 희망버스가 상권의 희망이 된 건 아닌가 싶습니다.

 

12. 계속 엇갈렸던 청.님과 새벽에 잠깐 그리고 오후에 제대로된 인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사근사근하고 나긋한 목소리를 듣고 목소리 참 좋구나...말씀에 품격이 묻어난다고 생각 했었는데 알고보니 전주분이셨어요. 역시 전주는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제 마음의 고향 다웠어요. 그 터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쩜 이렇게 한결같이 우아한가요. 저처럼 제가 한 일을 자꾸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투쟁하는 청.님같은 분들 덕분에 우리의 연대가, 투쟁이 지속되고 빛이 난다는 생각을 내내 들었습니다. 3차 때는 제가 더 많은 식량 가져 갈께요. 좀 더 많이 함께 놀아요 ^^

 

13. 같이 가신 닉네임 밝히기 꺼려하신 모님, 반가웠습니다. 투쟁현장에서 또 뵙고 또 인사하고 그리고 더 즐겁게 보내면 좋겠어요. 혹시 인적사항이 드러날까 염려되어 자세한 에피소드는 생략해야할 것 같습니다. 아쉽 ㅠㅠ 그리고, 함께해서 더 즐거웠다는 말은 진심입니다. 참석쪽지를 주신 그 순간부터, 님의 존재는 시위 내내 제게 큰 기쁨이였고 즐거움이였어요. 또 뵙고 싶어요 ^^

 

14. 투쟁현장에서 주는 밥과 김치는 어쩜 이렇게 맛있을까요. 그 맛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비 털어서 음식을 잔뜩 사서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나눠주는 분들. 사람들. 우리는 1박 2일 내내 이렇게 희망과 사랑 그리고 연대를  나눕니다. 저는 3차 희망버스도 탑승할 것입니다.

 

 

 

덧붙임.

1. 시간이 점차 늦어져 마지막 집회는 보지 못하고 3시가 조금 안되는 시간에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올라오는 도중 터널이 산사태 위험으로 보수작업을 해서 근 2시간 정도 도로에 정체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집회를 보고온 차량과 동시에 서울에 도착했었죠. 이래서 집회는 끝까지 있어야합니다.

(그 과정에서 스마트폰은 연결이 잘 되지 않아 왜 정체되어있는지 한참동안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아직 2g폰인 제가 다산콜센터에 전화해 사태파악에 나섰고 그제서야 우리는 산사태위험으로 보수작업 중임을 알게되었습니다. 위험상황에서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스마트폰 따위 우리는 버려야합니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버림으로서 무자비한 문명의 발달에 저항해야합니다)

(2시간동안 기다리기 지루해 오목을 두다가 오목토너먼트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살떨리는 대회를 개최하고 3차 때는 더 크게 열기로 했습니다. 오목에 자신있는 분 적극적인 참여신청해주세요. 한달동안 저도 맹연습하고 있겠습니다)

 

2. 희망버스 책이 출간되었다고 해요. 1차 때 같이 간 청년 절망속아름다움님 후기기 실린다고 알림 메일이 왔다고 해요. 저는 그런 메일을 받지 못했음을 알게되었고, 무척 절망했습니다. 패배감이란 이런 기분일까요? 지나치게 가볍게 적은 것이 문제가 되었던 걸까요? 문창과 출신으로서 한없이 괴롭습니다. 이 절망감을 이기지 못할 것 같습니다.

 

3. 그래서 말인데 아래 제 닉넴이 언급된 글을 보고 무척 반가웠어요. 불편하게 할 의도는 없지만, 제 글에 동조해주시는 뜻이기에 한없이 반가워 와락 껴안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좀전에 J모님께서 제 팬이라는 리플 달아주셨는데 다시 보니 없더라구요. 혹시 제 팬임을 잠시라도 자처한게 부끄러웠던걸까요...? 희망버스 책 출간소식을 들을 때만큼이나 절망감이 듭니다. 울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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