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리벌님께

2011.05.26 02:23

raven 조회 수:2494

답변 잘 읽었습니다. 일단 제 논의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만 제 의견을 적도록 하겠습니다.

김리벌님이 쓰신 원문을 발췌해서 옮기고 코멘트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도록 하죠.


1.


김리벌:

형식논리적으로 비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틀리셨습니다.

 

제 얘기는 hubris님이 제시한 논거(?)들로부터

효율성 측면에서 봤을 때 네덜란드의 정책이 다른 나라의 정책보다 더 낫다

는 결론이 도출되지 않는다는 의미였습니다.

 

raven님은 어떤 근거로 위의 명제가 참이라는 것을 보이시겠습니까?

아니, 그에 앞서

효율성 측면에서 봤을 때 네덜란드의 정책이 다른 나라의 정책보다 더 낫다

일상 언어 명제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입니까?


raven:

저는 hubris님의 글의 문제 대목에서 제시된 논증이 참이라고 얘기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그 논증이 목표하는 바는 저것이라고 얘기했을 뿐입니다.

그 논증이 참임을 보이는 것은 제가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hubris님이 해야 할 일이죠.

제가 hubris님의 논증의 목표를 지적한 것은,

김리벌님의 반박 논증이 과연 타당한가가 의심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김리벌님의 모델은, 제가 보기에는,

각 국가 간의 상이한 초기 조건들과,

허용가능한 도덕적 한계치가 주어졌을 때

성매매 비범죄화가 도덕적 수준에 낳는 결과들을 비교하면서,

어떤 국가들에서는 비범죄화 정책이 채택될 수 없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hubris님의 논증은, 제가 보기에는,

성매매 비범죄화 정책이 가져오는 사회적 총효용과,

성매매 범죄화 정책이 가져오는 사회적 총효용의 단순 비교를 통해

전자를 지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hubris님의 모델에서는 김리벌님이 초기 조건으로 놓았던

각국의 도덕 지수들 자체가 이미 성매매 범죄화나 비범죄화의 결과들이며,

그래서 그 초기 조건들 자체가 이미 비교대상이 됩니다.


저더러 일상 언어 명제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김리벌님은 hubris님의 일상 언어 명제들로 이루어진 텍스트의 정확한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십니까? 적어도 제가 보기에 김리벌님의 재구성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저런 논증 모델의 차이 외에도, hubris님이 도덕적 수준을 넘어서

범죄율, 경제적 효과 등을 거론하는 반면 김리벌님은 그런 hubris님의 글을

도덕적 수준에 관한 모델로 구성합니다. 물론 형식논리적 측면에서 봤을 때

성매매 비범죄화가 도덕적 수준에 관한 것이든 경제학적 총효용에 관한 것이든

그 차이는 무의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덕적 사고를 넘어서 경제학적 사고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이 관련된다면, 저로서는 오히려 형식화의 폐해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논증하려고 하는 게 성매매 비범죄화의 도덕적 영향인지 경제적 효용인지조차

구분되지 않고 있으니까요.


일상 언어는 불투명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형식화시키는 것이 좋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형식화를 시도하려면 먼저 일상 언어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김리벌님은, 제가 보기에는, 일단 hubris님의 텍스트에 담긴 기본 논증 자체를 재구성하는 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hubris님의 글을 다시 인용해보죠.


"네덜란드의 경우에는

부부간의 문제에 국가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아 간통은 형사사건이 아닙니다

중독성이 약한 소프트한 마약 역시 국가가 개입할 명분이 없서 합법입니다.

성매매 역시 국가가 통제하에 둡니다.

그것이 더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매매 자체가 부도덕하고 더럽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마약 허용이 나라를 망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네덜란드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들어

그것이 잘못된 정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지적을 하는 나라들은 네덜란드 보다 훨씬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는데 말입니다."


이 텍스트는 단일한 하나의 논증을 펼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김리벌님이 얘기하듯이 뒤죽박죽인 것도 아닙니다.

단지 많은 것을 압축해서 논증들을 함께 넣어놓았을 뿐입니다.

이 텍스트에는 우선, 네덜란드의 도덕관이 아니라 국가 정책적 관점을 제시합니다.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자제하는 자유주의적 관점이 그것입니다.

이런 자유주의적 관점이 더 현실적이라는 것, 이것이 사실 그 글의 주제 중 하나입니다.

다음으로, 이 텍스트는 성매매를 부도덕하다 비판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성매매와 관련하여 더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는 비판을 합니다..

비판자들의 자기당착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네덜란드의 정책이 다른 나라의 정책보다 문제점이 훨씬 적은,

더 나은 정책임을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이 텍스트는 단지 네덜란드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도덕관을 얘기하면서

논의를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게 아닙니다. 네덜란드의 정책이 갖는 현실적 효율성을

얘기할 뿐 아니라, 그를 통해서 우리가 현실적 사안에 접근하는 관점들 자체를 문제삼고

그를 바꾸라고 얘기합니다. 이 텍스트를 김리벌님처럼 말 그대로 단장취의하여

전체 맥락에서 떼어내어 하나의 결론만을 도출하는 단일 논증으로 만들어버리면

직접 재구성하신 것처럼 뒤죽박죽이 되어버립니다.


김리벌님이 재구성한 논증 형태를 보죠.


A a 정책을 택하고, B ~a 정책을 택한다. (fact 1)

김씨는 b 도덕관을 갖고 있고이씨는 ~b 도덕관을 갖고 있다. (도덕관)

김씨는 A에서 일어나는 a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정책의 효과에 관한 평가도덕적-사회효용적 측면)

그런데 B not a 정책을 택하고 있음에도 문제점이 더 많고 (fact 2) 김씨는 이런저런 사람이다. (fact 3)


이 재구성에서, 김씨와 이씨의 도덕관에 관한 것, 김씨는 이런저런 사람이다란 것은 글 전체 맥락과 엮이면서

다른 논증들을 구성합니다. 이것이 여기에 들어온 것은 순전히 김리벌님이 자의적으로, 형식적으로

논증을 단일 논증으로 재구성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을 빼고서, 제가 이해하는 대로 정책과 관련한 hubris님의 논증을 구성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A는 a 정책, B는 ~a 정책을 택한다.

2. ~a 정책은 a 정책보다 더 많은 문제를 낳는다.

3. 따라서, a 정책이 낫다.


형식논리적으로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까?

엄밀히 말해 없습니다. 김리벌님이 하듯이(하지만 원래 논증의 목표에 부합하는, 다른 방식으로),

어떤 가능한 추가 조건들을 도입해서,

1, 2로부터 3의 결론이 필연적으로 따라나오지 않을 경우를 상정하지 않는 한 말이죠.

그런데 그러한 추가 조건들의 도입은, 위의 논증 모델을 형식논리적으로, 그 자체로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델의 현실 적합성을 문제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논란이 모델의 현실 적합성과 관련되면,

반박받는 입장에서도 할 말이 많아질 것입니다.


 형식화는 유용합니다. 하지만, 일상 언어를 형식화하는 것은 상당한 수고가 듭니다.

그것은 일상 언어가 단지 불투명하기 때문이 아니라, 형식화될 수 있는 수많은 논증들을 굉장히 압축된

형태로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형식 언어가 훨씬 더 비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지금의 경우도 그런 것 같군요. 김리벌님이 hubris님의 텍스트를 분석하여 나온 결론은 무엇입니까?

그 타당성이 의심스러운 재구성을 통해 성매매 문제에 대해 무언가 통찰이 얻어졌습니까?

아니면 경제학적 사고란 이런 것이라는 점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졌습니까?

사실 저는 그간 김리벌님이 써온 몇 안 되는 이전 글들에서도 비슷한 형식논리화의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굳이 재론할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형식 언어를 모든 판단의 궁극 심급으로 만드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임을 지적해두겠습니다. 형식 언어가 자명하고 명료한 것은 누구나 압니다.

하지만 일상 언어는 형식 언어로 "당연히" 전부 환원되지 않습니다.

당장 김리벌님이 쓴 글에만 해도 오해 가능성, 불명료한 측면들은 쉽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김리벌님의 형식화도 여전히 일상 언어가 섞여 들어가 있는 불완전한 형식화에 불과하니까요.

형식화는, 그것이 요구되는 정확한 맥락 내에서 필요한 만큼 시도되고 그 한계 안에 머물면 됩니다.

그 이상을 넘어가면 오히려 불명료함을 증폭시키고, 사태를 더 비효율적으로 만듭니다.

hubris님의 글은 그 맥락 내에서 그렇게 이해 불가능하고 타당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두고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정할 필요가 있습니까?

"투자심의위원회, 리스크관리위원회, 여신심사위원회, 신용평가문서, 투자자 유치 IM 등에

[텍스트 1] 과 같은 문장을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투자심의위원회 보고서에서 그런 문장이 발견되면 그 때 지적하시면 됩니다.

(물론 이 인용문은 hubris님의 다른 글을 [텍스트1]로 지칭하면서 얘기하는 문장입니다.

하지만 이 인용문에 나온 태도는 김리벌님의 일관된 태도로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김리벌님이 아무리 모든 글이 다 형식적으로 명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라고 변명한다 해도, 결정적인 대목에서 항상 저런 요구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정확성과 명료함은 정도 차이를 포함합니다. "창문 좀 열어라"라고 말했더니,

"몇 센티, 어느 각도로 열어놓으라는 거냐?"라고 반문하는 상황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조금만 더 넘겨짚자면, 저는 김리벌님의 글에서 어떤 과도한 욕망을 봅니다.

바로 다음의 문장에 표명된 욕망입니다.


"경제학의 본령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저런 식의 텍스트가 경제학의 이름으로 반복되는 게 싫은 것입니다."


경제학의 본령, 경제학의 이름, "주류" 경제학.

지극히 당연한 얘기지만, 김리벌님이 경제학의 대표도 아니고 김리벌님이 생각하는

경제학의 본령이 진정한 경제학의 본령인 것도 아닙니다.

경제학에 열려 있는 인문학, 사회과학을 얘기하셨는데,

반대로 자신이 경제학 안에 너무 갇혀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2.


김리벌:

"인과 관계의 정확한 방향 및 크기를 평가하기 위한 방법론-추론/논증 규범”은 경제학의 정의로 기능하기에는 지나치게 폭이 넓습니다.

사실 모든 과학적 사고는 kim님이 제시한 정의를 따르고자 하지, 그것이 경제학만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상당한 정도로 동의합니다.

, 이런 요약은 경제학의 고유성을 제거하는 것이 되겠지만,

이는 곧 경제학의 보편성 확대로 이어진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raven:

짓궂게 굴자면, 이 대목에서 형식논리적 재구성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1. 논증 규범은 경제학의 전유물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 일반의 속성이다.

2. 따라서, 경제학의 보편성이 확대된다.


1로부터 2의 결론이 나옵니까?

제가 여기에서 과학적 사고로 얘기하는 것의 모델은 인문 사회과학이 아니라 자연과학입니다. 

경제학은 양적 방법론을 택하는 반면, 인문 사회과학은 질적 방법론을 택합니다.

경제학이 경쟁해야 할 모델이 있다면 같은 방법론을 택하는 자연과학입니다.

그러므로, 인문학, 사회과학이 계량적 방법론에서 경제학에 버금가는 성과를 이룩했느냐는

질문 자체가 오바입니다. 저는 그런 건 염두에 두지도 않았고, 양자는 길이 다르다고 생각하니까요.

뭐 이 지점에서 텍스트를 명확하게 쓰지 않은 제 잘못이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자신의 독해를 확신한 채 그로부터

정치학 등의 양적 방법론 문제를 들어 경제학의 우월성을 강변하면서

소칼까지 한 달음에 얘기가 진행되면, 자신의 오독 가능성을

계산에 넣지 않은 독자의 문제도 크다 하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저 문장의 원래 의미는 경제학의 정의로 제시한 것이 자연과학 일반에서 발견되는 양적 방법론의 논증 규범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경제학과 과학의 관계에서 무언가 보편화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연과학입니다.

언젠가 아원자들의 운동에 대한 물리학적 법칙들이 경제학까지 포섭해서 통일하는 날이 오겠죠.

정치학을 비롯한 다른 인문사회과학들은 몰라도 말이죠.


3.


김리벌:

"그리고 죄송하지만 크기 측정을 포함한 과학적 방법론에 해당되지 않는 학문들에 대해서도

raven님이 저나 다른 경제학자들보다 더 많이 아신다고 자신하실 만한 근거가 별로 없어 보입니다.

효율성이라는 단어에 대한 언급들은

매우 초보적인 화용론 또는 언어사(言語史)라고 해야 할 지.. 하여간 언어학 관련 주제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보입니다.

이런 내용은 nomppi 님께서 더 잘 설명해 주실 것 같습니다.

힌트는 경제학이 “efficient, 효율적이다라는 표현 대신 “aaa, 가나다라는 표현을 새로 만들어 썼다면

두 단어 각각의 의미-가치함축, 관계가 어떤 식으로 변해 왔을지 생각해 보는 것 정도가 어떨까 싶습니다."


raven:

재밌는 것은, 제가 hubris님의 글을 주 타켓으로 해서 쓴 글이,

마치 경제학자들 일반에 대한 비판인 양, 더 나아가 그들이 인문학이나 철학을

저보다 더 모른다고 꾸짖기라도 한 양, 제가 그렇게 자신하기라도 한 양, 독해된 반응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제 글 끝머리에서 밝혔듯이, 제가 쓴 것들은 아주 기초적이고 교과서적인 내용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새로울 것이 없죠.

제 글은 경제학 자체를 비판하는 글이 아닙니다. 경제학의 올바른 자리와 역할, 가치는 누구나 알고 있고

제 글에서도 제시되었습니다. 제 글은 경제학을 모든 합리성의 본령인 양 생각하는 이데올로그들에 대한 것인데,

김리벌님도 여기에서 그렇게 자유롭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어쨌든 논증을 중요시하는 분이라면, 남의 지식 수준(논증되거나 실증될 수도 없는)을 운운할 것이 아니라,

그냥 틀린 논증만 지적하면 됩니다. 겨자님이나 세간티니님을 비롯해서 다른 사람들의 지식 수준을

이러쿵 저러쿵 평가하는 건, 제 일은 아닙니다만 '경제학의 본령'이란 표현을 새삼 생각하게 만드는군요.

우리의 기본 술어들이 가치 함축적이기 때문에 완전히 가치 중립적, 객관적 서술은 가능하지 않다는 주장은,

김리벌님이 생각하듯이 그렇게 허술하고 허무맹랑한 주장이 아닙니다. 철학적으로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양 진영 모두 나름의 탄탄한 근거들이 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보다 경제적이겠죠. 넘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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