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 네, 영국입니다. ‘브로드처치’라는 제목은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가상의 해변가 시골 마을의 이름이구요. 설정상 전체 인구를 다 해봐야 1만 5천명 정도 되는 작은 동네인데 바닷가 풍경이 끝내줘서 관광객 덕에 그냥저냥 먹고 사는 모양입니다.
 여기에 도시에서 경찰 생활을 하다 큰 사건 하나를 제대로 말아 먹고 시골로 막 부임해 온 전직 닥터 데이빗 태넌트가 있습니다. 좀 흔한 영국 드라마 캐릭터죠. 시니컬하게 말빨 좋고 인간 관계 관심 없고 늘 멀끔한 정장을 입고 다니지만 머리랑 수염은 늘 덥수룩하구요. 쓸 데 없이 말을 위악적으로 해서 주변 사람들을 다 질리게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좌천 비슷하게 흘러들어오는 바람에 자신의 진급이 막혀서 짜증이난 올리비아 콜먼이 있습니다. 이 분도 딱 영국맛으로 위풍당당 억센 시골 아줌마 캐릭터인데, 사실 워낙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서 잔뼈가 굵은 고로 경찰로서의 능력은 매우 의심스럽지만 이 동네 터주대감으로서 동네 사람들(=용의자들)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당연히 이 둘은 만나자마자 서로 으르렁거리지만 바로 그 날 해변에서 동네 11세 소년의 시체가 발견되니 일단은 사건부터 해결하고 봐야겠죠.
 하지만 시골 경찰들의 정겹도록 투박하고 소탈한 수사 능력은 사건 해결을 지지부진하게 만들고, 그러는 동안 영국의 특산물 옐로 저널리즘이 폭발하며 마을 사람들의 관계는 아수라장이 되고, 외진 시골 마을 특유의 ‘겉보기엔 평화롭지만 그 속은 음험한’ 모습들이 차츰 드러나면서...


 - 장점부터 말해보겠습니다.

 1. 이 드라마를 찍은 동네의 자연 풍광이 죽입니다. 그리고 그걸 정말 멋지게 잡아냅니다. 유럽쪽 드라마 특유의 회화 작품을 보는 듯한 미장센이 매 회마다 몇 차례씩 작렬해서 눈이 즐거워요. 깔리는 음악들도 좋구요.

 2. 배우들의 연기도 좋습니다. 처음엔 그냥 대부분의 인물들이 늘 보던 익숙한 영국식 츤데레(...) 캐릭터들이란 느낌이라 ‘다들 잘 하지만 좀 날로 먹네’란 생각으로 시큰둥했는데, 감정이 고조되고 상황이 강렬해지면서 캐릭터들이 속을 드러내는 막판으로 가면 ‘아, 역시 잘하네’라고 감탄했지요. 연기 좋아요.

 3. 범인 잡기보다 피해자들과 그 주변 사람들의 삶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더 주력하는 드라마인데 그게 꽤 그럴싸하게 묘사됩니다. 
 마을의 특성상 ‘어차피 범인은 우리 중 하나’인데 그러다보니 마을의 공동체가 무너져내리고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생각만큼 살갑고 서로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 거죠. 심지어 함께 사는 가족들에 대해서도 아는 게 별로 없었다는 거. 뼛속까지 다 안다고 믿었던 누군가가 사실은 전혀 알 수 없는 타인일 뿐이었다는 거...


 - 단점을 말하자면...

 1. 바로 위에서 말했듯이 이 드라마는 사건 수사, 범인 잡기 보다는 그런 끔찍한 사건이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공동체에 남기는 상처를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 의도는 잘 알겠습니다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중심이 되는 사건이 많이 허술하고 진상도 별 게 없어요. 끝까지 보고 나면 ‘이거 평범한 도시 경찰이면 일주일 안에 범인 잡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죠. (극중에선 거의 두 달이 걸립니다) 
 이렇다보니 경찰들이 필요 이상으로 무능해 보이고, 또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긴장감이 떨어져요. 매 회마다 등장 인물들 하나하나 돌아가며 수상한 일을 한 번씩 시키는 식으로 떡밥을 날려서 긴장을 유지하려 하지만 사건의 퀄리티(?) 대비 경찰의 수사가 지지부진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기에.

 2. 8화 밖에 안 되는 이야기라는 게 장점이긴 한데, 그 와중에 많은 캐릭터들을 굴리면서 관계 묘사까지 다루려다 보니 종종 캐릭터들의 성격이나 관계가 납득이 안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냥 주인공 형사 둘만 봐도 그래요. 처음엔 분명 둘이 진심으로 싫어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서로 인정하고 공감하는 사이가 되는데 왜 그랬는지 납득이. 설정상 도시 형사는 유능해야할 것 같은데 그런 모습은 별로 안 보여서 그냥 시골 형사가 압도적으로 무능해 보일 뿐이고. 사실 범인도 좀 쌩뚱맞구요. 피해자 누나는 처음엔 진짜 무슨 사이코패스인 줄 알았...;
 그리고 가끔은 좀 교통정리가 덜 되어서 산만해요. 좀 더 나와야할 것 같은데 나오다 마는 캐릭터도 있고 크게 필요 없어 보이는데 계속 나오는 캐릭터도 있고...

 3. 단점 1, 2와 겹치는 이야긴데, 뭘 기대하고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살인 사건!! 범죄 수사!!! 범인은 누구인가!!!! 라는 부분을 놓고 보면 대체로 많이 루즈합니다. 스릴러를 볼 때 머리 싸움을 우선 순위에 두시는 분들은 안 보시는 게 좋아요. 살짝 과장하면 이 영화의 형사들은 주인공까지 포함해서 다 '추격자' 수준입니다.



 - 일단 대충 정리하자면 그렇습니다.
 범죄 스릴러이지만 사실은 그런 사건을 겪고 상처 입고 무너져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그린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결말만 봐도 그래요. 대놓고 교훈을 주거든요.
 범죄 관련 이야기는 허술하고 수사의 재미도 없지만 그런 인간 군상극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재밌게 보실 수 있을 거에요.
 전 뭐 상당히 재밌게 봤습니다만, 솔직히 시즌 2를 볼 생각은 안 드네요. 그리고 데이빗 태넌트도 '멋진 징조들'에서 훨씬 매력적이었던.


 - 여담으로. 가장 꼴 보기 싫었던 건 젊은 저널리스트 남녀 콤비였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그냥 꼴 보기 싫더군요. 


 - 할배 관련 에피소드는 정말 마음이... 음. 이 드라마에서 가장 훌륭했던 부분이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좀 믿을 수 없긴 했는데 뭐 그 정도면.
  저는 해리 포터에 전혀 관심이 없고 본 것도 없는 사람이라 몰랐는데 이 할배 역을 맡은 배우가 해리 포터에서는 어린애들을 그렇게 싫어하는 캐릭터였다면서요. ㅋㅋ


 - 올리비아 콜먼의 모습이 가장 강하게 각인된 게 '플리백'에서의 레전드급 진상 아줌마 연기여서 그런지 이 드라마에서도 자꾸만 그 이미지가 떠올라서 보기 괴로웠...


 - 피해자의 엄마 역할 배우가 이후로 최초의 여성 닥터가 되었다죠. 그 외에도 닥터후 배우들이 엄청 나온다는데 제가 닥터 후를 본 게 거의 없어서 무의미했습니다. ㅋㅋ


 - 외딴 시골 마을에서 나름 사랑받던 어린 존재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그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도시에서 온 똑똑한 수사관이 시골 터줏대감 수사관을 만나 콤비를 이루고. 사건을 파헤칠수록 따뜻하고 평화로워 보이던 마을 사람들의 음침한 속사정들이 드러나고. 쌩뚱맞게 초현실적인 요소가 끼어들고... 어찌보면 '트윈픽스'의 21세기 영국맛 버전 같기도 했습니다. 동료 여성으로 교체하고 피해자를 남성으로 바꾼 건 21세기 센스인 셈 쳐주면 나름 꽤 비슷... 하다고 혼자 우겨봅니다.
 근데 어차피 전체적인 분위기는 판이하게 다르니 그냥 제 억지인 걸로. ㅋㅋ


 - 근데 데이빗 태넌트의 얼굴은 정말 조류(...) 느낌으로 생기지 않았나요. 보면서 계속 무슨 새를 닮았나 생각하고 있었네요. 근데 아는 새가 몇 없어서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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