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지붕과 임대업)

2020.03.29 19:32

안유미 조회 수:610


 1.예전에 썼던 생각은 아직 변함없어요. 임대 목적의 대형 부동산은 더이상 돈을 '불리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돈을 '보전하기 위해' 사는 거라고 말이죠. 그냥 그 정도 사이즈의 돈에 안주하기로 마음먹고 눌러앉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는 해도 너무 안정성이 없으면 극단적인 거고...생활비(상식적인 수준의) 정도 나오는 임대업은 괜찮은 거 같아요. 투자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모든 식비나 생활비가 매달 생돈으로 퍽퍽 깎여나가는 상황에서는 멘탈이 흔들리니까요. 투자나 다른 일에 집중할 수가 없게 되죠. 



 2.요즘엔 일부러라도 가끔씩은 동네를 돌아다녀보곤 해요. 바빠진 후론 이면도로를 걸어볼 일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래서 몇달에 한번정도 날잡고 동네의 안쪽을 걸어다녀보면 그동안 새로 생긴 가게나, 새 가게가 생겼다가 사라진 흔적이 보이곤 해요. 일부러라도 이런 곳을 걷는 이유는 대로변 쪽은 늘 뻔한 가게가 들어오거든요. 유동인구가 많거나 목이 좋으니까 당연하다는 듯이 프랜차이즈만 들어오니까요. 뭔가 아기자기한 동네 가게를 찾으려면 동네의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봐야 해요. 개인 카페라던가 이런저런 걸 만들어서 파는 공방들 말이죠.



 3.그런 가게들을 볼 때마다 나도 언젠가는 가게를 한번 해볼까...라고 주억거리곤 해요. 예전에 알고지낸 빈디체는 이미 내 나이때 홍대에서 이름난 카페를 차렸다가 동남아까지 건너가서 게스트하우스 사업을 했다는데 나는 이나이에 뭘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하지만 한번 해 보려고 이것저것 알아보니 역시 엄두가 잘 나지 않아요. 생각지도 못하게 돈 들어갈 곳이 너무 많고, 이런저런 신고도 해야하고 막상 연다고 해도 잘 되기는 커녕 버티기조차 힘들어 보여서요. 그야 소유한 건물에 카페를 차리면 버티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죠. 한데 간신히 버티려고 카페를 차린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거고요. 그럴 바엔 그 공간을 임대를 주는 게 낫죠.


 어쨌든 카페를 차리려면 돈이 많아야 해요. 카페를 차릴 때는 '카페를 차릴 돈'으로 카페를 차리는 게 아니라 '카페를 차려서 완전 말아먹어도 괜찮은 돈'으로 카페를 열어야 하는 거니까요. 기본적으로 자영업을 하면 일단 망할거라는 각오를 하고 시작해야 하는 거거든요.


 

 4.휴.



 5.그야 만약 카페를 한다면 최선을 다해서 하긴 할거예요. 알바에게 맡겨 놓고 놀러다닌다거나 하는 거 없이 일찍 나가서 가게도 스스로 청소하고, 일주일에 대부분은 카페를 지키고 앉아있을 거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자영업은 쉽지 않은 거니까...카페를 차려서 완전히 날려버려도 괜찮은 돈이 있어야 카페를 차릴 수 있겠죠.


 사실 문제는 돈보다는 다른 거예요. 장사하겠다고 어딘가 신고를 하는 순간 내가 잘 하고 있는가 아닌가, 내가 법이나 기준을 어겼는가 아닌가를 다른 놈들이 판단하러 오게 되잖아요. 그런 같잖은 놈들이 찾아와서 내 앞에서 나대고 있으면 살의가 치솟을 것 같단 말이죠. 그래서 역시 자영업을 하는 건 망설여져요. 자영업이란건, 별 이상한 놈들이 나를 문제삼을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것과 같거든요.




 6.사실 의류업계든 요식업계든 다 그렇듯이 이젠 건물이나 빌딩(상가) 임대업도 양 극단으로 흘러간다는 느낌이 들어요. 아예 필수품이거나 아예 싸거나 아예 고급스럽거나. 한국에서는 모든게 이 세가지 중 하나로 귀결되고 있단 말이죠. 한끼 식사도 의복도 아예 합리적인 가격이거나 아예 끝판왕급 허세거나 둘 중 하나여야 살아남고 있으니까요. 심지어는 햄버거도 그렇죠. 열라 싼 버거이거나 왕창 비싼 수제버거거나.


 어쨌든 사람들은 햄버거는 안 먹고 살 수도 있고 영화를 안 보고 살 수도 있고 옷을 안 사 입으면서 살 수도 있고 여행을 안 가면서 살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들이 유일하게 사지 않고 버티는 게 불가능한 게 있죠. 지붕이요. 사람은 아무리 한계에 몰려도 지붕이 없이는 살 수 없거든요. 지붕을 사든가 빌리던가 둘 중 하나는 해야 하죠.


 그러니까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인 거주형 임대업은 어쨌든 수요가 없어지지는 않을거예요. 사람들이 아무리 돈이 쪼들려도 벤치에서 잠잘 수는 없으니까요. 



 7.한데 상가형 임대업은 글쎄요. 완전히 목이 좋은 역세권들도 잘 나가고 아예 발품을 팔아야 할만큼 가기 힘든 곳도 그럭저럭 나가는 것 같아요. 임대료가 싼 곳은 아예 월세를 싸게 받는 대신에 임차인의 개성이 잘 발현되는 가게가 들어오곤 하니까요.


 그런데 아주 나쁘지도 아주 좋지도 않은 정도의 입지에 있는 상가가 위험하단 말이죠. 임대가 안 나가고 있는 경우가 빈번하게 눈에 띄어요. 대로변에서 몇 블록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층마다 텅텅 빈 건물도 꽤나 보이곤 하고요. 그리고 이런 상황...경기가 몇달씩 꺾이는 상황이 되니 대로변에 있는 상가도 공실이 나고 있고요. 결국 임대 장사를 하기 가장 안전한 건물은 사람들에게 지붕을 빌려주는 임대업인 것 같아요. 그건 생활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니까요.



 8.물론 위에 쓴 '생존에 필수적인 임대업'을 하려고 해도 돈은 많이 나가요. 원룸이나 투룸을 굴린다고 가정하면, 임차인들은 어쨌든 출근을 해야 할 거고 그들은 아침에 5분이라도 더 자고 싶어하니까요. 그리고 역까지 걸어가는 시간을 5분이라도 더 줄이고 싶어하고요.


 바로 그 5분, 10분을 아끼게 해 주는 초역세권 임대건물일수록 공실 없이 굴릴 수 있는 거죠. 대신에 비싸지는 법이고요. 위에는 거주용 임대업의 생존의 문제라고 했지만 그건 너무 극단적인 얘기니까요. 가능한 한 역에서 가깝고, 임차인이 머무르는 동안만큼은 안락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게 임대인의 책임이죠. 그들의 방에 들어오는 순간만큼은 바깥에서 힘들었던 현생을 잊을 수 있을만한 쉼터 말이죠.


 그래서 아무리 원룸이나 투룸이라도 방을 하나 더 빼기 위해 다닥다닥 붙여놓거나 평수를 좁혀버린 매물은 싫어해요. 다른 임대건물에 비해 비교적 방을 큼직하게 만들어 두면 임대료는 더 적을 수도 있겠지만 공실은 더 적으니까 마음이 편해요. 방을 보러오는 사람들도 같은 가격에 눈에 띌 정도로 넓이에 차이가 있으면 당연히 그쪽을 픽하니까요.



 9.어쨌든 그래요. 건물은 싫어하지만 세금을 최대한 안 내면서 임대사업을 할 수 있는 원투룸건물 하나 정도는 괜찮다예요. 뭐 이것도 향후에는 임대사업자 등록이 점점 더 강제성을 띌 거고 임대상한제도 실행되면 힘들어 지겠지만...그냥 조용히 흐지부지되길 바래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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