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지금 대학원 때문에 미국 동부에 1년 반정도 머물고 있는 중입니다.


요즘 미국 학교들은 한국인이 바글거리지만 이곳은 특이하게 한국인은 커녕 외국인 숫자 자체가 적은 학교라 미국인 친구들이랑 어울리게 되는데

저랑 상관 없이 여기 미국인 중 김치와 불고기는 모르는 이들이 거의 없고 좋아하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김치/불고기는 널리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대표적인 한국 음식으로 각인되어 있고, 또한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음식이더군요.

제 백인 룸메는 제가 두세번 김치볶음밥을 해준 이후론 맛을 들려 혼자 김치볶음밥도 해먹고, 계란에 밥 비벼서 김치를 얹어 먹기도 하는;;;


이틀 전에는 미국인 친구들이랑 식당에 갔는데, 버거 등 미국식을 파는 식당이고 손님도 다 백인/흑인인 곳에 신기하게도  불고기샌드위치가 있더군요.

전 불고기샌드위치라는 신개념에 경악을 했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엔 불고기피자나 불고기버거도 있으니까 그렇게 이상하진 않은가 하고 있는데,

저와 같이 갔던 친구들 중 무려 4명이 불고기샌드위치를 시키더니 싸이드로 김치를 시켜서 샌드위치와 먹더군요. 전 그냥 치킨 와플.


한국식당 뿐 아니라 일부 미국식당에도 이젠 불고기가 메뉴에 있다는건,

스시의 미국 사촌으로 캘리포니아 롤이 나온것처럼 불고기도 메리카나이즈 해서 소비할 정도로 대중화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전에 중국이 있었을 때도 제가 있던 남동부 지역 중국인들이 가장 즐겨하던 외식 중 하나가 한국식당에서 삽겹살이나 고기를 구워 김치랑 먹는거였습니다.

그다지 크지 않은 town급 동네에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카페를 제외하면 주인이랑 종업원은 다 중국사람인 한국식당 2개가 유일한 외국음식점이었죠.

우리나라 시골에도 중국집은 하나씩 다 있는듯한 느낌? 그리고 손님은 다 외식나온 중국인.

재밌는건 두 식당 다 대장금 사진에 벽에 크게크게 걸려있고 메뉴는 한글과 중국어로 표기가 되어 있는데 주인도 종업원도 막상 한국어는 전혀 모르던.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는 코리안 바베큐라고 해서 미국인들도 즐겨먹는 음식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물론 불고기나 코리안 바베큐를 먹는 이들에게 김치 온 더 싸이드는 필수고 말이죠.

스시 하면 일본음식인거 다 아는 것처럼 김치, 불고기, 그리고 "코리안 바베큐"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알 만큼 세계화 된 음식이고

일본에서도 김치는 대표적인 한국음식으로 이미 알려져 있는게 현 주소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김치 기무치 발음 논쟁은 한식과 김치가 세계화 되기 전,

그리고 우리나라가 말 그대로 듣보잡이던 시절에나 의미가 있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죠.


사실 김치-기무치가 논란이 되었던 때를 돌아보면 당시 발효음식의 포장/유통 기술이 뒤쳐지던 한국보다 일본이 더 많은 김치를 수출하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우리것으로 일본이 돈번다는 생각에 우리나라 특유의 반일감정이 겹치면서 사람들의 자존심이 상한 것이 컸습니다.

그리고 김치의 표준화 논의과정에서 일본의 전통적인 야채절임인 즈케모노의 연장에서 김치에 접근하려던 일본 업체 때문에,

한국 언론에서 일본이 기무치라는 이름으로 김치를 자기네 음식으로 만들려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터트리고 이것이 확대 재생산 된 것인데,

당시 논의는 사실 김치를 절임음식으로 보느냐 발효식품으로 보느냐와 같은 표준화 논의 문제였지 김치-기무치 발음과는 상관이 없는 문제였습니다.

그 당시의 논의 결과로 국제적으로 97년에 이미 김치는 한국음식이라는 세계승인을 받아 "김치분쟁"은 끝이 났죠.

그리고 2006년엔 한국정부가 김치를 일본식으로 표기할때 기무치라 하는것을 공식적으로 승인했으니 이건 이미 끝난 문제입니다.

현재 김치와 킴치와 기무치는 언어상의 발음만 다른것이지 모두 한국의 김치를 뜻하는 것으로 정리되고 논쟁선상에서 내려왔단 말이죠.


하지만 여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아직도 분쟁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현실,

여기에 한국언론에서 반일감정을 자극해 기사 클릭수나 늘려보고자 자극적인 기사를 날리면 네티즌들이 사실관계 파악할 생각 없이 신나게 뒷북 때리는거죠.


결국 문제는 기무치 발음을 한 연예인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해당 연예인은 한국음식을 소개하는 프로에, 식당 주인이 일본인 손님을 위해 기무치라고 설명해주는 것을 받아서 이은 것이기도 하고요.

문제는 언론에서 떡밥 뿌려주면 죽자고 달려들어 공격성이나 발휘한 후 애국한 느낌에 뿌듯해하는 무식한 대중들이죠.

아니, 사실 애국심에 달려드는 것도 아닐거에요. 그저 깔 대상이 필요해서 눈에 불을 켜고 기다리다가 뭐라도 생기면 좋다고 물어뜯고,

그리고선 똥이나 싸지른 벽에 쳐바르면서 희열을 느껴대니.



그리고 보니 갑자기 생각나는건 올림픽 시즌과 월드컴 시즌에 주로 등장하는 Korea를 Corea로 바꿔야 한다는 논쟁.

일본이 국제회의에서 한국보다 먼저 언급되고 올림픽 등에서 한국보다 먼저 입장하기 위해 일부러 Corea를 Korea로 바꾼 때문이라는 주장이었죠.

그 중 1908년 런던올림픽에 맞춰 우리나라 이름을 C에서 K로 바꿨다는 설이 유명하지만 이 자체가 말이 안되는게,

Korea 혹은 Corea는 대한제국이 Imperial Korea란 이름을 쓰면서 이후 병행되던 표기이고 이를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이 픽업해 일제시대동안에도 사용한 것이죠.

반면 일제는 한국을 Chosen이라고 표기했고 한국인들이 Chosen 대신 Corea 혹은 korea를 국호로 쓰는데 대해 불만을 표출했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 견제한답시고 이름 철자를 바꿀 이유가 성립하지 않을뿐더러 말이 안되는거죠. 관련 기록도 전혀 없고.


이 논쟁을 접할때면 어이가 없어서 정신이 아득해 지는게, 그럴거면 가장 먼저 언급되고 가장 먼저 입장하게 나라 이름을 아예 AAA로 바꾸던가 싶더군요.

여하튼 생각없는 사람들이 목소리는 가장 크게 내는걸 보면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은 참 정확한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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