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요리사의 말마따나 맛의 절반은 추억이지만, 떡볶이만큼은 초등학교 앞에서 사먹었던 떡볶이가 진짜로 맛있었습니다.
하교 시간이 가까워오면 문방구 옆 구멍가게 아주머니께선 얼른얼른 밥을 잡수시고 일어나
판데기처럼 커다란 조리구에 물, 설탕, 미원, 고추장을 아낌없이, 또한 대충 턱! 턱! 퍼 넣으셨습니다.
집에선 재현 불가능한 강불에 휘휘 저어가며 훅 익혀내면 그 어느 별미보다 맛있는 떡볶이가 금세 완성이 되는 거지요.
그걸 딱 다섯 개 담아 100원에 팔았는데, 지금이야 겨우 100원이지만, 라면 한 봉지가 100원
(그러니까 이게 노태우 때 얘기에요)
이었던 시절이니 결코 싼 음식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모두 프로레탈리아의 자식들이라 없이 살기는 매한가지라 그걸 도저히 사먹을 길이 없었는데,
다행인 것은 저희에겐 윤재라고(실명) 아버지께서 가전제품 밀수업에 종사하시어
정원에 분수가 있는 으리으리한 이층가옥에 개를 집안에 들이고 사는 부자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하교를 할 때 하다못해 신발주머니라도 잠깐 들어주면
바로 그 매끈매끈 붉은 실루엣이 농염한 떡볶이 하나를 얻어 먹을 수 있었어요.
하교길 내내 신주머니를 들어줘야 겨우 밀떡 하나를 얻어먹을 뿐인데,
그게 뭐라고 그 조차 경쟁률이 치열했습니다.
그럼 윤재는 무려 한 개에 500원을 하는 햄버거를, 뭐 이것쯤 하는 표정으로 씹으면서
100원 짜리 하나를, 마치 "여기 글렌피딕 더블" 하듯이 목로 위에 놓아 두고
그날의 시종들이 각자 하나씩 떡을 나눠 먹는 모습을 흐믓하게 바라보고는 했습니다.
물론, 저는 그 비굴한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남자가 가오가 있지 어떻게 남의 가방 따위를 들어주고..
다만, 숙제를 대신 해줬을 뿐.
가끔 간식으로 떡볶이를 사먹는데, 아무래도 사오는 사람의 입맛에 결정이 되다보니까(돈은 내가 내는데)
그때 그 매콤달콤한 맛의 떡볶이가 아닌, 도대체 얼마나 더 매워질 셈인지 그 새빨간 속내를 알 수 없는 괴이한 맛으로 혀를 괴롭히게 됩니다.
정말 가끔은 먹는게 괴로울 정도여서, 에이 니들이나 먹어! 젓가락을 탁 놔버리면,
마치 우문에 현답이라도 적선한다는듯이 "치즈를 섞어 드세요" 따위의 말을 합니다.
아니, 치즈로 맛을 죽일거라면 애초에 안 맵게 만들면 되는 거잖아.
늙어서 매운 거 먹으면 오늘 혀만 매운 게 아니라 내일 똥꼬도 맵다니까?
여튼, 어여쁜 일본 처자(카오루상♥)가 한국 음식을 리뷰하러 다니는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는데,
그녀뿐 아니라 외국인들 사이에 한국의 맛이란 끝간 데 없이 매운 맛으로 각인이 돼가는 것 같습니다.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서 김치랑 육개장에 먹는 괴이한 민족이 맞기는 한데,
제가 기억하는, 적어도 금강 이북의 입맛은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렇지가 않았어요.
본래 전라도 맛의 대척점을 경상도가 아닌, 평안도의 그것이라 하지 않습니까?
이 맛도 저 맛도, 내 맛도 네 맛도 아니지만, "슴슴하다"는 고유어로 굳이 겁을 만들어 아는 사람끼리 환장하는 그 맛.
일단 한번 잡숴봐, 너 며칠 있다가 오밤중에 갑자기 생각난다 장담하게 하는 그 맛.
서울의 맛은 굳이 따지자면 그 맛에 더 가까웠다는 거지요.
여기서, 그럼 서울의 맛만 한국의 맛이냐? 성을 내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만,
굳이 따지자면 금강을 기준으로 한반도 전체 면적을 따져볼 때
매앱고, 쯔아고, 양념이 쎈 맛이 한국의 맛으로 인식 된다면 그것도 문제라는 겁니다.
여기서 문득, <그대 그리고 나>라는 드라마가 생각이 납니다.
신인배우 손승헌이 이본을 짝사랑 하는 꼬맹이로 나왔던 그 드라마. 거기 이런 장면이 나와요.
신혼 생활의 스트레스로 열이 오르는 최진실. 이모 박원숙 씨와 만나 어마어마하게 매운 떡볶이를 먹으러 갑니다.
매운 양념에 부채질까지 해가며 "매운거 먹으니까 스트레스 확 풀리지?"라는 대사를 주고 받던 그녀들.
제 기억이 맞다면 그 무렵이었을 겁니다. 해찬들 태양초 고추장이 "맛있게 맵다"는 카피로 대성공을 거둔 것 또한.
그때, 외환위기 때였습니다
어쩐지 스트레스 받을 때 매운게 땡기더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