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딱히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 호러 앤솔로지를 벌써 여러 개 봐서 그런지 대뜸 추천 컨텐츠로 초기 화면에 계속 뜨더라구요. 제목도 정말 직관적이기 짝이 없죠. ㅋㅋㅋ 에피소드 수랑 분량을 확인해 봤더니 전체 일곱 편에 각 30분 이하. 이 정도면 뭐... 라는 맘으로 봤습니다.



 - 이걸 보기로 결정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원산지(?)였습니다. 대만제 호러를 볼 일이 그리 많지 않잖아요. 그런데 그런 측면에선 좀 실망스러웠어요. 전반적으로 이야기들이 제 기대와 달리 몹시 모던합니다. 대체로 만듦새가 깔끔한 건 좋은데 그렇게 지역 특성이 드러나는 이야기나 비주얼은 거의 없거든요. 



 -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게 아니라... 무섭지 않은 건 둘째치고 이야기들이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ㅠㅜ 20여분의 런닝 타임이면 아이디어 하나, 컨셉 하나라도 제대로 뽑아 놓으면 큰 부담 없이 연출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기억에 남을만한 아이디어가 있는 이야기가 거의 없어요. 이상할 정도로 하나 같이 다 느릿느릿 여유를 부리며 전개가 되는데 그게 아이디어의 결핍을 커버하기 위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 괜찮았던 이야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한 방'으로 기억될 에피소드가 없으니 전체적으로 느낌이 그냥 흐릿하구요. 결론부터 내리고 이야기하자면 추천하지 않는 시리즈입니다.



 - 아래는 각 에피소드별 간단 소감입니다.


 1. 뺑소니


 주인공은 경찰입니다. 밤 늦은 시간에 근무를 마치고 집에 가다가 차에 치여 죽어요. 그런데 갑자기 뙇!!! 하고 사무실에서 정신을 차리죠. 그리고 다시 퇴근을 하다가... 뭐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겠네요. 타임 루프물입니다.


 사실 타임 루프물이란 게 요즘 세상에 특별한 재미를 주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그냥저냥 차별화 되는 아이디어 하나에 나머지는 평타만 쳐주면 그럭저럭 재미를 뽑아낼 수 있는 소재이기도 하거든요. 근데 이건 그냥 쉣입니다. 인생의 낭비. 자본의 낭비죠. 그 어떤 차별화 아이디어도 보이지 않습니다. 런닝 타임이 20분 남짓이다 보니 루프도 몇 번 못 하구요. 또 이야기 속 타임 루프의 논리도 영 엉망입니다.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가장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는 아이디어가 있는데 그걸 끝까지 시도 조차 안 하는 주인공도 한심하고. 또 루프와 죽음의 공식이 어떻게 생각을 해도 납득이 안 되니 중반 이후로는 걍 어떻게 끝나나 엔딩이나 보자... 라는 맘이 되는데 그 엔딩마저 한심.

 태어나서 타임 루프물을 한 번도 못 본 분들을 제외한 모두에게 비추천입니다.



 2. 완벽한 무결점


 이상할 정도로 하얗고 깔끔한 집에 사는 여자 이야기입니다. 외출도 하긴 하는 것 같은데 거의 그 집 안에서 생활하는 모습만 나와요. 그리고 영문은 모르겠지만 정기적으로 집 청결도 검사를 받아서 통과를 해야 계속 살 수 있는 모양인데 어느 날 집 한쪽 벽에 검은 얼룩이 나타나고 그걸 지워 보려는 주인공의 노력에 아랑곳 않고 얼룩은 점점 커져만 갑니다...


 와 같은 줄거리가 있긴 하지만 거의 소용 없는 수준입니다. 런닝 타임 내내 하얀 공간과 그 안에 갇힌 여자를 최대한 괴이하고 불길한 느낌으로 보여주는 게 연출 의도가 아니었나 싶어요. 무지막지하게 생략해 버린 이야기의 디테일과 나름 꽤 고심해서 연출해낸 괴이한 이미지들 덕에 '악몽 같은 분위기'가 제법 살아나서 그런 의도는 어느 정도 먹힙니다. 재밌다고 할 순 없지만 꽤 괴상하고 칙칙한 경험이긴 했거든요. 다만 이야기는 거의 없다시피한지라 추천해드리기는 좀 애매하네요. 그래도 뭐 나쁘지 않게 봤습니다.



 3. 암고양이


 어떤 젊은 부부가 나옵니다. 남편이 국수집을 해서 먹고 사는 모양인데 아내가 영 이상합니다. 대놓고 바람피우고 남편을 학대하면서 돈만 뜯어가요. 남편은 그런 마누라가 그래도 좋아 죽겠는지 화도 안 내고 다 참고 삽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내가 내연남과 함께 동물원에 갔다가...


 위에서 요약해 놓은 내용이 런닝타임의 거의 90%를 차지합니다. ㅋㅋㅋㅋㅋ 그러다 막판에 사건이 하나 벌어지긴 하는데 이미 시작 부분에서 암시를 넘어선 자체 스포일링으로 예고를 해 놓았으니 놀랄 것도 없구요. 결말의 마지막 장면 역시 충분히 예상도 가능하거니와 별 감동도 없고 재미도 없어요. 부부 사이의 일들이 하도 초현실적일 정도로 막장이라 당연히 뭔가 비밀이 있을 것 같았는데...

 암튼 '뺑소니'와 쌍벽을 이루는 에피소드입니다. 보지 마세요.


 아 딱 하나. 남편이 하는 국수집 요리는 맛있어 보였습니다.



 4. 애완동물 금지


 주인공은 초딩 남자앱니다. 아파트라기엔 좀 작은 건물에 살고 있고 엄마가 건물주인 것 같아요. 윗층... 이라고 하지만 그 건물 옥상 위 컨테이너에는 아무래도 성매매를 하는 듯한 젊은 여성이 주인공과 동년배의 딸을 키우며 살고 남자애 엄마는 아들이 그 집과 엮이지 않길 바라지만 아들의 마음은 다릅니다. 윗집 딸은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하지만 아들네 엄마가 정해 놓은 생활 수칙 1번 '애완동물 금지' 때문에 그러지는 못 하구요.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윗집 딸은 고양이를 키워야겠다며 고양이 모래를 사들고 집으로 가는데...


 나름 주제 의식 같은 것도 자연스럽게 잘 스며들어 있고 연출도 괜찮구요. 인물들간의 드라마도 준수하게 묘사되면서 마지막에는 '괴기특급'이라는 시리즈 정체성에 걸맞는 서비스도 잊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주인공들... '현실적으로 평범한 인상이지만 보다보면 귀여운 초딩들'이라는 건 일종의 치트키 아니겠습니까. 덕택에 결말 장면에서 여운 같은 것도 좀 느낄 수 있었구요. 이 시리즈에서 딱 하나만 본다면 이걸로 추천해요. 호러라기 보단 비극적인 드라마에 가까운 이야기이지만, 명작급과는 거리가 멀지만 준수하게 괜찮았어요.



 5. 낙원 리조트


 노부부의 이야깁니다. 젊을 적의 열정을 되살리고 싶은 남편이 아내에게 졸라 캠핑을 와서 추억의 이벤트들을 열심히 열어주지만 아내에겐 그런 건 이미 다 귀찮은 옛날 일들일 뿐. 그러다 캠핑장 바로 옆에 늙은 부부들에게 활력과 행복을 되찾아 준다는 용한 리조트가 있다는 걸 알게된 아내는 남편을 거기로 데리고 가는데... 어라. 갑자기 이 둘이 젊은이가 되어 있습니다. 덕택에 오랜만에 낭만적인 저녁을 보낸 부부 앞에 리조트 관계자들이 나타나 알약을 들이미는데, 이걸 먹으면 완전히 젊은이로 돌아갈 수 있답니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는데...


 일곱개의 에피소드들 중 가장 시리즈 컨셉에 잘 맞는 이야기라 하겠네요. 이야기의 논리도 전개도 계속해서 덜컹거리지만 그래도 나름 '환상특급'의 평범한 에피소드 하나의 재미 정도는 줍니다. 재밌고 괜찮은 부분보다 멍청한 부분이 더 많이 눈에 띄지만 그런 멍청한 부분을 씹으며 즐길 수는 있는 정도랄까요. 하지만 물론... 남에게 추천할만한 건 아니구요. ㅋㅋ 이 시리즈 내 상대평가로 나쁘지 않다. 라고 정리하겠어요.



 6. 비극의 로그인


 평범하고 못 생겼다고 주장하지만 아주 평범한 수준으로 조금만 꾸미면 예쁠 것 같은 젊은 여성이 주인공입니다. 이 분의 삶의 낙은 sns 미녀의 사진들을 퍼다가 도용해서 사칭 계정 활동을 하며 사람들에게 예쁘다는 칭찬을 받는 거에요. 그러다 어느 날 본인 기준 꽤 근사해보이는 남성을 만나 썸을 타는 꿈 같은 일을 겪게 되는데, 마침 그 때쯤에 누군가에게 계정 사칭을 지적 당해서 온라인의 가짜 삶이 위기에 빠집니다...


 그냥 뻔하고 식상한 스릴러입니다만. 연출이나 연기 같은 부분들이 꽤 그럴싸해서 재미가 없진 않았습니다. 클라이막스 부분의 주인공의 절규 같은 것도 나름 이해가 되구요. 다만 '이건 괴기특급이니까 이런 장면 하나 넣어줘야지?'라는 느낌으로 들어간 마지막 장면은 대체 뭘 어쩌라는 건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영 별로였네요.



 7. 터널


 사는 게 좀 칙칙한 솔로 남성이 자기 눈 앞에서 픽 쓰러져 버린 우아한 여성을 병원에 데려다줘서 살려 놨는데. 알고 보니 둘 다 참 피곤한 사연들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당연한 순리로 이 둘은 서로 끌리게 되고...


 이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자 가장 당황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지루해서 중반부터 핸드폰을 깔짝거리며 대충 봤는데 결말을 보고는 '내가 뭘 놓친 거지?' 라는 생각에 다시 중반부터 집중해서 봤는데 결국 놓친 게 아무 것도 없었더라는 무시무시한 반전이(...)

 다 떠나서 이게 왜 '괴기특급'인지 저도 모르겠고 아마 제작진에게 물어봐도 모르겠다고 할 것 같은 이야기에요. 넷플릭스가 준 제작비로 여섯편을 만들려다가 돈이 남아서 그냥 하나 더 만들었나? 아님 제작자가 전부터 만들고 싶은 이야기였는데 여건이 안 돼서 못 만들다가 넷플릭스에게 사기 치고 만들어 넣은 건가? 수많은 의문과 시나리오들이 머리를 맴돌지만 그 답은 영원히 얻을 수 없겠죠. 그렇게 저는 '터널' 속에 갇혀 버렸습니...



 - 그래서 다시 한 번 결론.

 그냥 안 보셔도 됩니다. 전부 다 봐도 네 시간이 안 되는 시리즈지만 이걸 보느니 차라리 '그녀의 이름은 난노'를 보세요. 태국산이지만 어쨌든 일본도 한국도 아닌 아시아산 호러 엔솔로지이고 이것보단 훨씬 낫습니다.

 기어즈5를 열심히 달리다 잠깐 쉬어가려고 본 시리즈인데. 이럴 시간에 기어즈를 달려서 엔딩 보고 글 적을 걸... 하고 후회 중입니다.

 소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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