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파동이 쓸고 간 자리

2019.09.15 15:46

Sonny 조회 수:1957

이번 조국 파동에서 제일 지겨웠던 점은 더민주와 자한당의 양강 구도 대결 끝에 또 울며 겨자먹기로 더민주라는 차악을 선택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정치적 대결구도는 항상 하나의 답을 강요합니다. 자한당은 죽어도 안되니까, 하나뿐인 대안으로 더민주를 고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저 역시도 청문회 소식을 들으면서 조국에 대한 실망과 이를 비호하는 더민주에 대한 회의가, 자한당과 검찰에 대한 경멸을 끝내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궁금했습니다. 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간판을 걸고 있는 정의당은 대안이 되지 못하며, 이 때다 싶어 기회로 만들지도 못하는가. 촛불시위와 박근혜 탄핵 이후로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자한당 중심으로 정치가 돌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자한당에 찬성할 것이냐 반대할 것이냐. 이 구도에서 더민주는 심지어 주어로 등장하지도 못하는 것 같아요. 본인들 스스로 만든 이 적대적 공생관계에서 더민주는 동등한 라이벌이 아니라 자한당이라는 적폐를 숙주로 삼는 기생적 정치주체로 보일 때가 있거든요. 과거에는 자한당에 저항하는 모양새였다면 이제는 자한당의 저항에 흔들리지 않으려는, 샅바싸움의 유일한 파트너 같달까. 힘의 방향과 크기만 달라질 뿐 여전히 중심은 자한당 같습니다.


현실의 정치는 참으로 매력없는 스토리입니다. 선택을 위해서는 매혹이 필요한데, 한국의 현실정치에선 환멸을 두고 겨룹니다. 너무 난장판이라서 아예 신경을 끄게 되니까 자한당에 대한 더민주의 승리가 무거운 피로로 다가옵니다. 이번 여론 조사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잘못했다는 답안이 50%를 넘겼고(리얼미터라고 기억하는데 정확하진 않습니다) 더민주의 지지도는 3% 떨어진 반면 자한당의 지지도는 4%였나 올랐더군요. 그러니까 조국이 임명되서 다행이어야 할까요. 검찰이나 자한당의 승리를 저지했다는 점에서 안도를 해야 할 텐데, 그러면 파랑 적폐를 용인했다는 생각에 괜히 괴롭습니다. 당장 촛불시위의 불씨는 정유라씨의 부정입학이었고 이 때문에 삼성공화국의 황태자까지도 감옥 문턱을 밟았었잖아요? 문재인 대통령에게 묻고 싶어지죠. 당신이 최우선으로 여기는 그 지지율이 이번 이슈에 한정해서는 잠깐의 변덕으로 치부하기 어려울 만큼 결정적 균열을 일으키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이 인사를 꼭 강행했어야 하느냐고. 이해는 합니다. 당장에 자한당에게 승기를 내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검찰개혁의 칼을 칼집 안에 넣을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더민주 내에서 검찰 개혁의 칼자루를 맡길 사람이 정말 없었나요. 그 검찰개혁이 교육문제, 결정적으로는 계급상승의 유일한 콩나무를 이렇게 무시하면서까지 급하게 착수해야 하는 문제냐고. 너무 이판사판으로 몰고 갔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면 차라리 정치권 내의 환멸을 정치권 밖에서라도 풀 수 있어야 할 텐데, 어째 조국 임명에 대한 투쟁은 다시 한번 환멸을 일으킵니다. 더민주 지지자들의 현실왜곡장은 물론이고 조국 임명을 반대하는 스카이 생들의 투쟁은 너무 자가당착에 당파싸움의 연계같아서 지루하고. 염려와 근심만 하는 게으른 시민이 마음 줄 데가 없네요. 


천만영화는 안보면 되고 끽해야 몇만명 대에서 맴도는 독립영화를 기꺼이 선택할 용의가 가득합니다. 그런데 현실의 정치는 작은 숫자로 시급한 변화를 일으킬 수가 없는 노릇이니까요. 양당체제 마인드에서 자유롭고자 했던 저도 이번 청문회를 보면서 다시 한번 그 양자택일의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왜 우리는 자한당을 아직도 하한선으로 두고 있는가. 왜 거기서 조금 더 뛰어오르지 못하고 계속해서 발이 걸려 더민주라는 두번째 하한선에 발을 걸어야 하는가. 미학은 적은 숫자의 성취로도 충격의 강도와 질로 도약을 일으킬 수 있지만, 현실의 정치는 오로지 숫자만이 말을 합니다. 일전에 허문영 평론가가 그랬죠. 본디 픽션에서나 나올 법한 미학적 인물들이 계속 현실에서 튀어나오면서 그 경계를 흐리고 있다고. 저는 이 미학적 인물의 탄생이 트럼프와 두테르테 같은 망나니들이 아니라, 조국과 자한당 모두를 능가하는 도덕적 인물이기를 바랍니다. 그렇지만 그런 철인의 등장을 기다리다가는 늙어 죽고 말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적당히 먼지가 끼어있고 눈은 감아줄 수 있는 대안적 인물을 더민주에서 찾아주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제가 다 팔아버린 체념을 대출해서 더민주에게까지 팔아야 할 것 같으니까요. 저는 한국의 정치가 끝도 없는 빨강과 파랑의 인지부조화 악순환이 아니라, 안될 당은 도태시키고 생존하는 당은 계속 성장해나가는 그런 스토리를 갖추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까지나 시민인 생업과 여가를 포기하고 촛불을 들면서 변혁을 실천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 다른 점에서 또 씁쓸합니다. 민정수석부터 법무부장관까지, 행정부의 요직을 쏙쏙 빼먹으면서 얼굴을 팔고 있는 조국을 보면 이건 조국 개인의 큰 그림이라기보다는 더민주의 차(차차)기 대선후보 육성플랜쯤으로 보이기도 하거든요. 정치인을 향한 분노는 축적된다지만, 동시에 소모된 분노는 충분한 불길을 일으키지 못하고 얼룩 정도로 남아서 여론의 공정한 비판에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 지지율 자체는 별 거 아니지만 유시민이 대선주자 후보 순위에서 꽤 상위권이더군요. 정말 황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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