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녀 이야기

2019.11.11 16:01

Sonny 조회 수:839

평어체로 썼습니다.... 양해바랄게요



이 책의 당황스러운 점은 주인공 오브프레드가 아무 것도 한 게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오브프레드 개인의 지옥, 오브프레드와 같은 처지에 놓인 여자들 공통의 지옥, 오브프레드와 같은 성별을 가진 여자들이 제각각 수모를 겪는 여성의 지옥에서 오브프레드는 저항다운 저항을 하지 못한다. 이는 오브프레드가 늘 그리워하는 친구 모이라를 통해 더 확연히 대조된다. 길리어드 통치 전 그는 확고한 페미니스트로서 오브프레드에게 당당하게 싸우는 태도를 보여줬고 길리어드 통치 이후에는 "아주머니"를 구속하고 자신은 몰래 탈출하면서 역동적 저항을 해냈다. 죽거나 충성하거나. 이 두 가지 선택지를 고르지 않고 체제 밖으로 사납게 뛰쳐나가는 모이라를 보면서 독자로서 초조해지게 된다. 오브프레드, 당신은 언제 무엇을? 그러나 책의 중후반부가 지나고 은밀한 내담이 진행될 때에도 오브프레드의 용기보다는 공포와 긴장이 더 많이 보인다. 그리고 그조차도 크게 전황을 바꾸진 않는다. 


뒤집어서 질문해보게 된다.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의 저항은, 우리가 상상하는 서프러제트 식의 그런 투쟁뿐인가. 투쟁을 어떻게 명명하고 규정할 것인지 그 기준을 다시 세워야하지 않을까. 일단 싸움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그것부터 재정의해야 할 것 같다. 오브프레드의 나레이션은 이상할 정도로 그가 사는 사회의 통치체계나 규칙을 곧바로 설명하지 않는다. 이는 그가 가진 정보가 부족한 탓이기도 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정보도 속시원하게 풀려나오진 않는다. 나는 누구이고, 이런 상황에 처해있다. 이렇게 명료한 설명이 이어지지 않는 것은 적, 가장 적극적으로 대치하는 대상에 대한 우회적 서술이기도 할 것이다. 오브프레드는 가장 직접적으로 무엇과 싸우고 있나. 그의 서술이 일차적으로 향하는 것은 그의 감상 그 자체이다. 이 현실이 얼마나 지리멸렬하며 살고 싶지 않은 곳인지, 그는 절망을 계속 명시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오브프레드가 계약된 "강간"을 계속 당하며 거의 모든 자유를 박탈당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일단 체념과 무의지에 맞서 싸운다. 살 수가 없다, 살고 싶지 않다, 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행위 자체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저항한다. 오브프레드의 싸움은 무기력에 대한 싸움이다. 그래서 그는 과거까지 갔다 오고, 현재의 미세한 가능성들을 탐색하고, 구원과 무관한 풍경에 눈을 돌리면서 현실의 압박에서 자유를 찾는다. 숨을 쉴 수 없는 것 같은 상태에서 가장 시급한 일은 숨을 돌리고 심박을 조절하는 일일 것이다. 걷거나 뛰거나 휘두르는 것은 이 다음 문제다.


여성의 해방은 격렬한 혁명으로 이뤄낼 수 있는가. 시녀 이야기는 그것이야말로 세상을 뒤엎고 소요를 일으키는 "남성적 혁명"의 드라마틱한 함정일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지도 모른다. 길리어드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는가. 세계 지도자들을 한꺼번에 숙청하고 금융과 언론을 통제하면서 세계의 실질적 권력을 다 움켜쥐었다. 그리고 현실은 남성의 일방적인 통치 아래 떨어졌다. 여기서 카운터어택으로 여성 역시 차근차근 길리어드 정예요원들을 암살하고 돈과 언론을 되찾은 후 지배권을 찬탈해야할까. 혹은 가능할까. 그 거시적이고 압도적인 물결 아래에서 또다른 물결을 일으켜 맞선다는 것은 "전쟁"이라는 남성적 폭력의 대여일지도 모른다. 변화와 저항은 가장 미세한 것부터 시작한다. 바람이 거셀 때 할 수 있는 것은 폭풍에 불씨를 옮겨 불바다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단 불씨를 품에 안고 꺼지지 않도록 지키는 일일것이다. 혁명이라는 것이 결국 마음에서부터 일어나는 것이라면, 그것은 대의와 세계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가장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해서 전달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위와 운동이 일종의 전시라면, 그 전시할 내용물을 꾸리고 정렬하는 것은 오브프레드가 하는 사유와 기록에서 먼저 출발한다. 조용해보이고 사사로워보이는 그것이야말로 정치적일수 있다. 오브프레드는 무엇을 보고 느끼는가. 이 한 개인의 기록은 다른 이들과 얼마나 겹쳐지고, 겹쳐지지 않는 개개인의 이야기들로 얼마나 도약하는가. 당신과 같은, 당신과는 전혀 다른 "나"로서 억압받는 자들의 세계는 얼마나 무궁무진해질수 있는가. 그저 힘으로 존재하는 남성의 세계는 이미 지루하고 생기가 없지만, 아직 비밀로 흩어져있는 여자의 이야기는 뻗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훗날의 혁명이 어떻게 전개되고 실패하든, 시녀 이야기는 가장 최초의 불꽃이 점화되어가는 이야기다.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으로부터.


그렇다면 주인공 오브프레드의 상태를 재정의해야할지도 모른다. 리디아 아주머니부터 체제에 적극적으로 따르는 수많은 다른 여자들까지, 이미 철저한 복종자로 거듭난 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오브프레드는 어떤가. 그는 적극적으로 순종을 연기하나 여전히 자유와 반란을 꿈꾼다. 이것이 단순한 감상주의야도 상관없다. 온갖 옳음과 필요와 강제에 마침내 마음을 꺾인 사람들 속에서, 오브프레드는 이를 내면화하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같은 독백으로 체념을 그리는가 싶다가도 어쩔 수 "있던" 시절을 계속 불러내고 자신의 상황을 비관적으로 받아들인다. 이제는 무엇을 해야하고 과거는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순응에 온 노력을 기울이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오브프레드는 여성의 사유재산화와 출산용 존재화에 한없이 게으르다. 그는 아직도 불온한 인간으로 남아있다. 반동분자의 씨앗을 머릿 속에 숨기고서, 가슴 속에 위험한 꿈을 숨기고서. 오브프레드처럼 어떤 여자들은 결코 시대에 적응하지 않는다. 이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를 본능으로 체화한 인간들의 본성이다. 여자는 마땅히 이래야 한다, 고 외치는 세계에서 어떤 여자들은 끝까지 그걸 수긍하지 않는다. 오브프레드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아도, 이러한 문제적 인간으로 끝까지 남아있다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희망이다. 


오브프레드는 정말로 무위의 상태인가? 그는 분명 "따르지 않음"과 "찬성하지 않음"과 "죽지 않음"을 실천하고 있다. 모이라처럼 탈출과 육체적인 난동을 일으키진 못해도, 가장 근본적인 회의와 반항의 기조에서 둘은 다르지 않다. 여성의 가장 근본적인 혁명은 (남성중심)체제의 부작위가 아닐까. 그리고 오브프레드는 무엇을 꿈꾸는가. 그는 자살과 과거로의 회귀와 안락한 미래와 세상의 붕괴를 소망하나, 그가 실질적으로 가장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기록"의 권력이다. 뭔가를 쓰고 남기고 싶어서 오브프레드는 계속 종이와 펜을 갈구한다. 그가 아무 것도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상태는 사실 기록 직전의 상태이다. 단지 도구가 없어서 그의 체험과 감각은 상념의 상태로 머릿 속에 남아있다. 일기를 쓰고 하루하루 있었던 일들을 글씨로 재잘거리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어도, 이것은 사실 역사의 편찬이다. 공정과 객관을 뒤로 한 채 개인이 마주한 가장 생생한 진실 그대로의 기록이다. 뭔가를 쓰고 남긴다는 유물론적 저항으로서의 기록은 오브프레드가 간절히 원하는 동시에 수많은 여자들이 무기이자 방호구로 써왔던 행위이다. 나는 누구이며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 기록은 움직이지 않는 증언이 된다.


에필로그에 가면 알게 된다. 사실 독자가 접했던 이 길고 긴 오브프레드의 나레이션들은 사실 녹음된 테이프로 남은 기록이었다는 사실을. 오브프레드는 마침내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니까 시녀 이야기는 기록할 수 없던 여자가, 마침내 기록할 수 있는 곳까지 탈출해 기어이 기록을 성취해냈다는 이야기이다. 세계를 뒤흔들고 억압자들을 처형시키지 못했어도, 오브프레드는 기록했다. 그가 누구였고 그 기록이 얼마나 사료적 가치를 지녔는지는 중요치않다. 오랫동안 존재해 목소리로서 공유되는 것, 그것을 여자가 남겼다. 이 숨막히는 세계에서 여자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폭탄과 화염병이 없이도, 마음 속 폭동의 원본으로 존재하는 폭풍은 글귀로 휘갈겨진다. 그것이 읽는 이들에게 언어의 바람으로 불어올 때, 그 촉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Hero라는 남성명사의 격정적 운동 대신 Heroin은 훨씬 더 겸허하고 극단적으로 투쟁한다. 쓰지 못하는 세계에서 쓰고 남긴다. 인간은 사고하고 말한다. 그 진실이 변하지 않는 한 여자의 투쟁도 멈추지 않는다. 가지런한 군홧발 소리에 벌벌 떨면서, 여자는 쓰고 녹음한다. 계급 아래 놓인 시녀는 그저 네, 알겠습니다만을 대답할 줄 알았겠지만, 모두의 오해였다는 것을 에필로그가 밝히고 있다. 입을 틀어막혀도 여자는 기어이 소리를 지르고 만다. 나즈막히 진동을 실어서. 이 책은 시녀를 다룬 이야기가 아니라, 시녀가 가진, 시녀"의" 이야기이다.


@ 이 픽션 역시 기록의 형태를 띄고 우리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이 소설 바깥의 기록과 저항으로 사람들에게 다시 묻는다. 기록을 읽은 우리는 무슨 기록으로 나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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