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 주인공 이름을 제목으로 쓰는 드라마들은 대부분 주인공 캐릭터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는 경향이 있고 이 드라마도 그렇습니다.

 주인공인 '마르첼라 백랜드'에 대해 요약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전직 형사입니다. 어떤 연쇄 살인마를 쫓는 데에 삶을 다 쏟아 붇다가 gg를 치고 돈 잘 벌고 스윗한 남편을 만나 결혼해서 은퇴했어요. 딸 하나 아들 하나 낳아 잘 키우며 행복하게 살... 줄 알았죠. 하지만 그러고 15년이 지난 지금 마르첼라의 삶은 엉망입니다. 가족사에 큰 비극이 생겨서 찾아온 우울증으로 결혼 생활은 망가졌고 남편은 바람을 피우며 이혼을 요구하구요. 금쪽 같은 자식들은 맨날 아빠만 좋다 그러고 엄마에겐 거리를 둬요. 거기에 극심한 스트레스로 정신적으로 큰 문제까지 생긴 가운데 어느 날 형사 한 명이 찾아와서 15년 전에 멈췄던 그 사건이 다시 시작됐다는 말을 전해주고, 마르첼라는 이번에야말로 그 망할 놈을 잡아 넣겠다는 일념으로 형사 일에 복귀합니다...



 - 어떻게 생각하면 삶의 위기에 처한 전업 주부가 일을 통해 새 삶을 찾는 씩씩하고 희망찬 이야기로 만들기 딱 좋은 스타트 같습니다만. 요즘에 그런 씩씩하고 희망찬 이야기는 대체로 인기가 없죠. 요즘 제가 본 대부분의 영국제 스릴러와 같이 이 드라마도 내내 칙칙하고 어둡고 우울합니다. 끝까지 보고 나도 카타르시스 같은 건 별로 없어요.



 - 처음에도 얘기했듯이 이 드라마도 결국 주인공의 캐릭터성이 하드 캐리하는 드라마입니다.

 일단 주인공은 예쁩니다(...) 까칠하고 폐인 같고 깝깝해보이게 예뻐요. 쌩뚱맞지만 중요한 건 중요한 거니까요. (쿨럭;) 일단 이 얘긴 이쯤 하고 넘어가고.

 상당히 유능한 형사입니다. 타고난 촉도 좋고 앞뒤 물불 안 가리는 추진력도 탁월하며 머리도 잘 돌아가는 편이고 육탄전 상황에서 남자에게도 특별히 밀리지 않을만큼 강해요. 그리고 뭣보다 맡은 사건에 대한 집착과 열정이 압도적이죠.

 다만 그 집착이 문제입니다. 그 어마어마한 집착에 자신의 판단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확신이 합체돼서 결국 진상 캐릭터가 돼요. 상부의 지시와 지침을 어기고 늘 멋대로 튀는 건 기본이고 동료들은 그저 본인이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한 셔틀일 뿐이며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라면 1초의 주저도 없이 불법 행위도 마구마구 저지르고 다니면서 거기에 대해 반성도 후회도 없습니다. 피의자 인권 같은 건 안중에도 없고 거짓말은 늘 입에 데롱데롱 붙어 있구요. 뭐 이런 캐릭터 자체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하다면 흔하겠지만 드라마의 톤이 어둡고 심각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꽤 튀는 느낌을 주죠.

 

 그리고 가장 핵심적인 것. 위에서 언급 안 하고 넘긴 게 하나 있는데 그게 뭐냐면, 아까 '정신적인 큰 문제' 얘길 했잖아요. 그겁니다. 어떤 상황에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필름이 끊겨 버린채로 본능대로 막 저질러 버린 다음 기억을 못 합니다. ㅋㅋㅋ 근데 이 필름이 끊기는 기간이 몇 시간씩이나 되고, 기억만 못할 뿐 멀쩡한 사람이 하고 다닐 일들을 아무 문제 없이 다 해치우고 다녀요. 그래서 이야기상 중요한 순간에 갑자기 필름이 뚝. 정신을 차려보면 영 쌩뚱맞은 상황. 뭐지? 내가 방금 뭘 한 거지? 이건 피인가? 방금 내 앞에서 나랑 말다툼 하던 사람은 어디로 사라졌지? 죽었나 살았나? 내가 죽였나? 워떠케...... 이런 상황이 종종 벌어지고 이게 이 캐릭터와 이 드라마의 핵심 아이디어입니다. 범인이 누구인가! 보다 주인공은 대체 뭘 했나!!? 를 핵심으로 미스테리가 전개되는 이야기인 거죠. 나름 참신한 아이디어였고, 상당히 잘 써먹었습니다.



 - 반면에 아쉽게도, 전체적인 이야기의 퀄리티는 좀 눈에 띄게 허술하고 산만한 편입니다.

 초반부터 등장 인물이 쓸데 없이 많고 그래서 쉴 새 없이 여기저기로 옮겨다니며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그게 교통정리가 잘 안 돼 있어서 전체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려요. 그 동안 집중도 잘 안 되구요. 얜 또 누구야. 줄거리랑 무슨 상관이지? 라는 생각을 꽤 자주 했습니다.

 그리고 뭐랄까... 되게 '스몰빌' 내지는 90년대 한국 드라마 속 세상 같아요. 소수의 등장 인물을 지나치게 다양한 상황과 역할에 돌려 쓰는 이야기들 있잖아요. 무슨 대형 건설사 비리 얘기부터 청부 살인 얘기도 나오고 연쇄 살인 얘기도 나오고 불륜도 나오고 깨진 결혼도 나오고 그러는데 이 사건들이 거의 대부분 주인공과 '직접적으로' 연결이 됩니다. 이게 무슨 '마르첼라 백랜드의 우울'도 아니고 너무 작위적이고 인위적이죠. 그래서 종종 막장 연속극의 향기가 느껴지기도 해요.

 마지막에 밝혀지는 진상도 뭐 대단한 게 아니고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합니다.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평가하자면 "그냥 그래요" 정도가 적당하겠습니다.



 - 일단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좀 튀는 주인공의 캐릭터빨과 나름 참신한 '필름 뚝!' 설정 하나로 허술한 이야기를 하드캐리하는 드라마입니다.

 결국 주인공 캐릭터에 대한 호불호가 전체적인 인상을 결정하게 될 텐데 제게는 그 캐릭터가 꽤 먹혔어요. 게다가 그 필름 끊기는 설정이 허술한 드라마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이나 미스테리를 꽤 잘 지탱해주기도 하구요.

 대단한 작품을 기대한다면 좀 아쉽겠지만, 충분히 집중해서 재밌게 볼 수 있었던 45분 x 8화였습니다. 아마 시즌 2도 연달아 달리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거 보느라 제껴 놓은 직장 일들부터 충분히 해결한 후에 말이죠. ㅋㅋ 연말은 드라마 폐인에게 해롭습니다(...)




 - 그래서 또 여담으로 들어가면. 주인공이 여성이고 직장 상사들도 여성이구요. 선역이든 악역이든 좀 폼 나거나 감정 이입할만한 캐릭터들은 죄다 여성이고 남성들은 선악을 가리지 않고 찌질하거나 좀 모자라고 치사하거나 변태이거나 혹은 그 모두이거나 그렇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들만 놓고 보면 지구촌은 이미 양성 평등을 이룩하고도 좀 더 나아간 알흠다운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 메인 사건은 깔끔하게 해결되고 마르첼라의 번뇌들도 거의 정리가 되는 결말입니다만. 의도한 건지 그냥 구멍인 건지 수습 없이 그냥 넘어가버린 이야기들이 많아요. 시즌 2를 봐야 파악이 가능하겠지만 이게 애초에 그렇게 단단하게 구성된 이야기가 아니다 보니 큰 기대는...



 - 주인공 마르첼라 역 배우에게 관심이 생겨 검색해보니 이것저것 되게 많이 찍은 가운데 제가 본 작품은 딱 하나더군요. 우디 앨런의 '환상의 그대'인데... 무슨 역으로 나왔는지는 스크린샷을 찾아보고도 모르겠습니다. ㅋㅋ 재밌게 본 영화이긴 하지만 벌써 꽤 묵은 영화이다 보니.



 - 런던이 배경이고 런던의 풍광을 근사하게 잡아주는 장면들이 여럿 나오긴 해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좀 애매합니다. '리버'처럼 대놓고 칙칙하고 울적하게 잡아내는 것도 아니고 '셜록'처럼 음침한 척하면서 예쁘장하게 잡아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명확한 컨셉 없이 무난하달까.



 - 위에서 범인 잡아봤자 별 거 없다고 그랬지만 범인이 잡히게 되는 계기는 좀 울컥했습니다.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



 - 그리고 주인공이 내용상 마지막으로 필름 끊겼을 때 저지른 행동은 정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최근에 본 영국맛 스릴러가 '리버', '브로드처치', 그리고 이 드라마인데 재미삼아 순위를 매겨 보자면 역시 전 재미와 완성도 모두에서 '리버'의 손을 들어주겠습니다. 남은 둘을 비교하자면 또 여러모로 '브로드처치' 쪽의 완성도가 높긴 한데, 쉴 새 없이 벌어지는 사건들과 반전... 뭐 이런 재미를 원하신다면 '마르첼라'가 나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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