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조문

2020.07.07 12:37

Sonny 조회 수:1201

인권은 꼭 냉정함이나 비인간성, 이해타산과 부딪히지만 않습니다. 인권은 휴머니즘과 부딪힙니다. 이번 손정우 소환건을 두고 손정우의 아버지는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 아들을 제발 미국에 보내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아동성폭행 및 아동포르노 제작, 유통범의 처벌이 부성애와 부딪힌 것입니다. 여성의 인권을 이야기할 때 뭐가 부딪히나요. 남성의 인권과 부딪힙니다. 성폭력 여성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이야기하면 남자들은 "가해자가 불쌍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임신중단의 권리를 이야기하면 태아의 생명과 아이를 홀로 키우는 아버지 같은 애처로운 이미지들이 태클을 겁니다. 인권은 다른 인권, 혹은 휴머니즘과 충돌합니다. "00가 잘못한 건 알겠지만 그래도 xx가 이렇게까지 벌을 받는 건 안타깝다..." 이런 인간적인 문장들이야말로 인권보호에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그 인간다움은 늘 가해자의 폭력은 지우고 피해자의 고통은 외면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안희정은 성폭행범입니다. 그에게는 전 도지사, 전 더민주 소속, 고 노무현의 친구, 민주 투사 같은 여러 정체성이 있었지만 현재 그를 구성하는 가장 큰 정체성은 성폭행범입니다. 성폭행범을 성폭행범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정확한 휴머니즘입니다. 한 개인을 인간다움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사적 친목이나 과거의 개인적 은원이나 공적인 공동시간으로 그 인간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타인의 인간다움을 얼마나 크게 파괴했는지 그것을 주목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휴머니즘은 개개인의 인간다움을 얼마나 지켜냈는가에 대한 척도이지 사사로운 정 같은 게 아닙니다. 그것도 인간다움이기는 합니다만 어설픈 인간다움이죠. 그 인간다움은 어리석음이나 실수를 저지를 수 밖에 없다거나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부조리한 편향을 이야기할 때의 인간다움입니다. "인간 진짜..." 같은 탄식을 내뱉을 때의 인간다움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인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조폭들끼리 니가 가라 하와이 같은 개인적인 정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요. 


안희정과 같은 권력자가 반인권적인 성폭행을 저질렀을 때 그에 대한 처신은 훨씬 더 단호하고 냉정해야 합니다. 이러한 권력자조차도 성폭행을 저질렀을 때는 절대 용서받지 못한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폭행으로 타인의 인권을 파괴했을 때 그 가해자는 피해자의 인권을 기준으로 분노와 냉대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인권을 회복하고 다른 이들의 인권을 지키는 최소한의 일입니다. 안희정의 인간성이 여기서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어머니를 잃은 그 아픔을 알고 존중받으려 하는 사람이, 타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그렇게 무참히 파괴합니까? 여기서 일단 안희정은 틀렸습니다. 본인이 정말 반성을 했다면 조문이라는 형태로 위로를 받고 이걸 공공에 알리는 짓거리는 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본인이 그럴 자격이 없다는 걸 자각을 했어야 합니다. 인권을 파괴한 자가 자신의 인간다움은 따로따로 나누고 만천하에 떠들고 싶어하나요? 그는 인격적으로 전혀 겸허함이 없습니다. 그렇게 큰 죄를 지어놓고도 할 건 다 하고 받을 건 다 받고 싶어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피해자의 인권과 가해자의 휴머니즘이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경우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거의 모든 경우, 피해자의 인권과 가해자의 휴머니즘은 반드시 충돌합니다. 성폭행 피해자와 친구이면서 성폭행 가해자와 친구일 수가 있습니까? 성폭행 피해자와 친구라면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폭행 가해자와의 우정은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한 사람을 용서하고 포용하는 행위, 즉 피해자의 절망을 무시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파괴당한 인간과 연대하고 가해자를 멀리하는 것이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성폭행은 황희 정승처럼 너도 맞고 너도 맞다고 할 수가 없는, 기초적인 옳고 그름의 문제입니다. 피해자의 인권과 가해자의 인간다움은 일관되게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하는 선택지입니다. 성폭행범의 슬픔과 개인적 외로움을, 성폭행 피해자의 분노와 절망보다 우선할 수 있을까요?


안희정에게 조문을 간다는 건, 성폭행범인 건 알지만 그래도 우리 식구이고 친구이니 위로해주겠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그 순간 피해자의 절망과 고통은 무시하고 가해자를 우선한다는 뜻입니다. 여태껏 더민주 인사들이 공개적이고 적극적으로 안희정의 성폭력을 비토하고 김지연씨와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있나요? 없습니다. 그런데 그의 모친상에는 "공식적으로" 화환을 보내고 그를 위로하는 방문을 했습니다. 지금 때가 어느 때입니까. 코로나 때문에 일반인들은 조문객을 아예 안받습니다. 그런데 성폭행범이, 조문객을 받고 언론에 그 현장을 내보고 있습니다. 거기에 화환 보내고 방문한 인사들? 그 사람들 다 더민주 의원들이고 당원들입니다. 본인들의 공적 정체성을 내걸고 성폭행범을 위로하러 간 겁니다. 이게 어떻게 순수한 휴머니즘으로 이해가 됩니까. 정치인이야말로 사회에 본을 보이고 인권에 민감해야할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이 이렇게 사적 친분에 휩쓸려서 성폭행범의 편을 듭니까? 더민주는 지금 이 조문으로 보여준 겁니다. 성폭행을 해도 우리 식구는 우리 식구다, 성폭행을 했다는 것보다 우리 당원이었다는 게 더 중요하다... 의리 빼고는 그 어떤 사회질서나 약속도 없는 조폭이랑 전혀 다를 게 없는 행태입니다. 더민주 소속 공인들에게 아주 선명한 악의나 뻔뻔함은 없었겠죠. 그런데 그 아마츄어리즘이 문제입니다. 자신들의 행위가 피해자, 피해자와 함께 하는 국민들에게 어떤 식으로 비춰질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무디고 멍청합니다. 


재미있는 거 말해드릴까요. 문재인은 이번 노무현 기일 공식행사에 참석안했습니다. 청와대에만 있었죠. 이게 그냥 문재인이 바쁘고 기분 안좋아서 그랬을까요. 그는 분명히 선택을 한 겁니다. 대통령으로서의 균형을 지키고 본인이 노무현 추모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어떻게 진보 보수 갈등에 불씨를 보탤지 알았으니까요. 저는 문재인이 공인으로서 보이는 그 강직함과 형식을 초월한 우정에 감격했습니다. 그런데 성폭행범과의 우정에는 그런 사려를 반의 반도 발휘하지 못하네요. 성폭행범에게 여당과 다른 행정부 직원들이 보여야 하는 태도는 그 인간다움마저 내치면서 인권이 파괴된 이들의 분노를 공유하고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못한다고 욕을 먹고 있는 겁니다. 인간적 도의를 지켜야 하지 않느냐? 그럼 김지은씨와 다른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지키는 인간적 도의는 어디로 갑니까? 대통령과 여당 인사들이 성폭행범 모친상에 당당히들 조의를 표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누구 눈치를 보겠습니까? 지금 성폭행범 아들은 정치인 비서관으로 잘 나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출마도 하겠죠. 더민주는 계속 "우리 식구"로서의 의리를 제1원칙으로 삼아서 다른 인권파괴적 행위를 못본체 할 거란 말입니다. 이 비인간적 행위를 비판하는 데 어떻게 인간적 도의를 이야기하는지. 근친 성폭행 사건에서 피해자들을 가장 괴롭게 하는 행위는 "그래도 아빠인데, 삼촌인데" 같은 관계와 의리와 도의를 이야기하는 말들입니다. 우리 사회는 정확한 분노와 연민을 아직도 할 줄 모릅니다. 안희정 조문을 가는 인간들 때문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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