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잡담...(돈의 속성, 희석)

2020.07.09 17:30

안유미 조회 수:392


 1.어떤 사람들은 '돈이 충분히 모이면 무언가를 해야지.'라는 계획을 짜곤 해요. 하지만 이런 생각에는 사실 함정이 있어요. '돈이 충분히 모이면 무언가를 하거나 산다.'라는 계획을 지닌 사람들은 사실 그게 꼭 필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돈이 충분히 모이면'이 아니라 '무언가를 사거나 해야지.'에 방점을 찍는 사람들은 당장 돈이 없어도 비싼 물건을 사거나 여행을 가거나 해요. 당장 가진 돈을 다 털든, 빚을 내든 말이죠.



 2.어쨌든 내 경험으로는 그래요. '돈이 많아지면 사기로 한 것'은 사실 '돈이 많아져도 살 필요 없는'것인 경우가 많거든요. 그게 정말로 있어야 할 물건이라면 오늘 당장 돈이 있든 없든 살거니까요.


 물론 소비와 낭비는 조금 달라요. 그리고 그 돈을 경험에 쓰느냐 물품에 쓰느냐 사람에 쓰느냐도 각각 다르고요.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한 소비가 아니라 타인과 약속을 맺은 소비라면, 취소하기도 힘들고요.



 3.하지만 어쨌든 그래요. 돈은 쓰면 줄어들거든요. 돈을 소비하거나 낭비하거나 하는 건 그 순간엔 매우 즐겁지만 그 순간이 지나가면 제대로 된 소비를 한건지 제대로 된 낭비를 한건지 계산해 보게 되죠. 소비를 한 경우에는 합리적인 소비를 한 건지, 낭비를 한 경우에는 모자라지 않게 과시를 한 건지 따져보게 돼요. 그러다 보면 알게 되죠. 소비도 낭비도 전략적으로 해야 한다는 거요. 미리 세워둔 계획대로 하지 않고 순간의 즉흥적인 기분에 따라 해버리면 후회가 남거든요.



 4.휴.



 5.그렇기 때문에 돈의 즐거움은 소비가 아니라 소유에 있는 법이기도 해요. 어느날 돈이 생겨서 가지고 싶던 옷이나 구두를 잔뜩 사러 가게 되어도 마음이 바뀌거든요. 중요한 건 옷이나 구두가 아니라 옷이나 구두를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돈...그것 자체인 거니까요. 


 그야 브랜드를 걸치면 사람들은 그걸 알아봐 주긴 해요. 그래서 브랜드를 살 수 없을 때는 늘 브랜드를 가져보고 싶은 법이예요. 하지만 막상 브랜드를 자유롭게 걸칠 수 있게 되면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주든 말든 상관이 없거든요. 내가 나를 아니까요. 


 어떻게 보면 돈의 좋은 점은 소유인 거죠. 물론 돈을 쓰는 건 좋은 거지만 쓰지 않아도 좋다는 점 말이죠. 



 6.왜냐면 그렇거든요. 어떤 사람이 아주 속물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을 먹어버리면? 그 사람에게 부동산 빼고 30억의 현금이 있다면 그 사람은 30억이 없는 사람들을 상대로는 얼마든지 우월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사람들에게 얻어먹으며 다니면서도 말이죠. 어중간한 돈은 브랜드와 바꿔서 몸에 걸치고 다니고 싶어지는 조바심을 느끼게 만들지만, 많은 돈이란 건 쓰지 않고 그냥 가지고만 있어도 좋은 법이예요.



 7.그야 물론 이건 어렸을 때나 가능한 사고방식이예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사회와 사람과의 완벽한 격리...고립은 점점 스스로를 힘들게 만드니까요. 고립이라는 걸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자아의 강도가 단단할 때는 그렇게 사는 것도 재밌지만 나이가 들면 각각의 단위별로 점점 침범을 허용하게 되니까요. 


 살다 보면 자아의 외피도 약해지고 그 외피가 감싸고 있는 내면도 약해지거든요. 약해진다...라기보다는 무언가와 섞이고 싶어지는 거예요. 너무 자기자신이라는 것에 천착하지 않기 위해서요. 그렇게 사람들의 침범을 허용하다 보면 어느날 남의 걱정이 곧 내 걱정이 되기도 하고 내 걱정이 곧 남의 걱정이 되는 날도 오는 거죠. 


 뭐 위스키도 그렇잖아요? 어렸을 때는 스트레이트로 쫙쫙 마시지만 이제 나이도 먹고 다음날도 생각해야 할 때가 되면 물과 얼음을 넣어서 마시듯이요. 너무 강하거나 분명한 것은 희석되는 게 좋은 거니까요.



 8.하지만 전에 썼듯이 그렇게 되면 글쎄요. 사실은 돈이 너무 적다...라는 사실에 직면하게 돼요. 생각해 보면 그렇거든요. 한 사람이 잘먹고 잘살 수 있는 돈은 그렇게 많지 않아도 돼요. 거기서 조금 더 돈이 많아지면 자신의 신세를 펼 수도 있고, 좀더 많아지면 자신의 신세를 더욱 더 펼 수 있죠. 자신의 신세에 금가루도 뿌릴 수 있고요.


 그러나 남들이랑 같이 있게 되면 자신의 신세를 펼 수 있는 돈은 너무 적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의 신세를 펴줄 수 있는 돈이어야 많다고 할 수 있는 거지 자신의 신세를 펴고 펴고...금가루도 뿌리고 말 정도의 돈이면 무의미한 연민만을 느끼며 살아가게 되는 거죠. 어쨌든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죠.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4824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380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1731
125946 넷플릭스 찜한 리스트에 대해 catgotmy 2024.04.09 142
125945 스즈키 세이준의 3부작 보고 왔습니다. [6] Sonny 2024.04.09 254
125944 에피소드 #84 [2] Lunagazer 2024.04.09 40
125943 프레임드 #760 [4] Lunagazer 2024.04.09 183
125942 Roger Daltrey - Heaven on their minds daviddain 2024.04.09 55
125941 곰돌이 푸의 모험 (1977) catgotmy 2024.04.09 107
125940 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2] 조성용 2024.04.09 333
125939 2024 백상 예술대상 후보 [1] 상수 2024.04.08 357
125938 프레임드 #759 [4] Lunagazer 2024.04.08 46
125937 사전투표하면... 민주당 지지자로 의심받습니다(??), 제 22대 투표용지 길이 상수 2024.04.08 314
125936 요즘 좋았던 예전 노래...들과, 태안여중 밴드부의 커버실력(케이온 실존) [1] 상수 2024.04.08 129
125935 우정과 정치색 [8] Sonny 2024.04.08 483
125934 네메시스 5 신상 돌도끼 2024.04.08 67
125933 [영화바낭] 현시점 기준 아마도 가장 존재감 없을 콩, '킹 콩(1976)'을 봤습니다 [13] 로이배티 2024.04.07 327
125932 프레임드 #758 [4] Lunagazer 2024.04.07 86
125931 한국 정당사에서 ‘국민의 힘’은 역대 최악인듯; [5] soboo 2024.04.07 869
125930 [넷플릭스] '리플리', 와우!! [9] S.S.S. 2024.04.07 494
125929 기동전사 건담 시드 프리덤 (+스포) [1] skelington 2024.04.07 124
125928 커피와 운동 [1] catgotmy 2024.04.07 198
125927 고척은 1회부터 뜨겁군요 [9] daviddain 2024.04.07 15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