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사적인 부동산 생각.

2020.07.30 19:34

잔인한오후 조회 수:1065

사실 듀게에 부동산 관련 글이 여태 안 올라오고 있었던게 매우 신기했어요. 여권 성향이든 야권 성향이든 부동산 이야기를 하지 않는 커뮤니티를 찾아보기 힘들었거든요. 흥미롭게 그 글과 댓글들을 하나하나 읽어보기도 했지요. 영화 관련 게시판에 땅 이야기하는게 이상할 수도 있겠죠.


개인적인, 이라는 말을 어두에 붙일 때가 많은데 그 말을 굳이 할 필요 없냐는 이야기를 가끔 들어요. 누군가 하는 말이 보통 공적일 수는 없는 것이잖아요. 하지만 그런 말을 붙이지 않을 때는 적어도 최소한의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글을 쓴다는 의무를 가지고 써요. 이 글에 붙은 사적이라는 말은 어떤 면에서는 그런 자료조사를 전혀 하지도 않았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사적인 정보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옛날의 저였으면 그 말 많은 스물 한 개의 부동산 정책 각각을 읽어보고, 여러 기사들을 취합해서 글을 썼겠지만 이젠 좀 체념했어요.


집 이야기를 별로 꺼내고 싶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이 부분에 대해서 누구나 행위 주체가 된다는 거에요. 한국에 살고 있는 이상 누구도 어떤 상태를 결정하고 유지해야 하죠. 그리고 그 상태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어요. 이런 당신의 포지션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느냐는 관점들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들이고  그렇게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시작하죠.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지 않고 시작하자면 말이 공허해질 수 밖에 없어요. 여러 사람들이 그걸 기반으로 말을 시작하고 있기도 하구요. 벌써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제 지역의 부동산 신문 게시판에서 집 있는 자와 없는 자가 서로를 업신여기며 적나라하게 몇 년 간을 싸우고 있는걸 목격한 적이 있어요. 익명을 기반으로 해서 상대를 저주하고 상대가 고통받기를 바라는 글과 댓글들이 굴러다녔죠. 휴...


저는 무주택 비수도권 주거자이고, 가까운 시일 내에 주택을 구매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은 위치에 있어요. 마치 저 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듯 논의들이 진행되는걸 보면 놀랍죠. (혹은, 가끔 끼워줄 때가 이런 식이에요. '집 값이 떨어지면 그 부담이 너희들에게도 갈 텐데 어쩔꺼니?' 혹은 '이번에 전세가 6년 단위 계약을 하게 되어 돈을 좀 더 끌어와야 될텐데 어떡하니?' 같은 식이요. 흠, 그렇게 들러리 세울꺼면 아예 안 불러주면 안 될까요.) 아래의 글에서도 최소한이 수원이라던가, 오지에 집 한 채 준다면 살기나 하겠느냐는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살짝 상처 받았어요. 겨자님이 말하시는 '주택을 줘도 안 가는 오지'라는건 한국에서 어디를 말하는 걸까요? 비수도권 정도면 될까요? 아니면 인구 100만 이하의 행정구역 정도면 될까요? 아니면 육지와 연결되지 않은 섬? 흠, 사실 별 신경 안 씁니다. 누가 뭐라하든 이 기조가 바뀌지 않을거란걸 잘 아니까요.


부동산 관련 서적을 여럿 읽기도 했어요. 정부에서 나오거나 민간에서 나오거나. 사실 별 의미는 없어요, 그냥 어떻게 굴러가나 궁금해서 읽었던 것 뿐이니까요. 선대인이 처음 낸 책도 읽고, [콘크리트 유토피아]나 [아파트 게임]도 읽고, [아파트 공화국]도 읽고, [확률가족 : 아파트 키드의 가족이야기]도 읽고... 그리고 부동산 투자에 관련된 긍정적인 말들을 하는 것들도 많이 봤죠. 제가 느낀 바는 이 세계는 다양한 속도의 컨베이너 벨트가 있고 그 중 어디로 갈 것인가를 열심히 생각해서 결정해야 한다는 거에요. 심지어 박완서도 그런 글들을 썼어요, 곱셈과 덧셈 이야기였을껄요. 다만 그 컨베이너 벨트가 앞으로 갈 지 뒤로 갈 지 생각하기 어렵고, 또... 컨베이너 벨트 간 뛰어 넘는건 소수만 할 수 있다는거에요. 마치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듯이 말하고, 하거나 하지 않거나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것 같지만.


한국에서 보면 레벨업 같은 루트가 정해져 있죠. 초반 쪼렙일 때는 월세에 살다가, 반월세나 전세로 옮기고, 청약이 되던가 안 되던가 대출을 해서 아파트나 주택으로 옮기고, 그 가격이 올라가면 팔아 더 비싼 곳으로 옮기고. 일단 무리해서 더 비싼 아파트를 산 후에 그걸 전세로 내고 그 돈으로 더 싼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가는게  (지인의 말에 따르면 최신이 아니라) 기본이라고 하더군요. (갭투자라는 이름이죠.) 이 루트가 온존하려면 1. 대출은 계속 되어야 한다. 2. 주택의 가격은 계속 상승하여야 한다 라는 원칙이 계속 보존되어야겠죠. 아! 더 좋은 경우도 있어요. 자신이 사 놓은 아파트의 가격은 오르고 옮길 아파트의 가격은 잠시간 떨어지는 거에요. (이런 튜토리얼 같은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진정한 의미의 바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래전 열의가 있었을 때 살펴본 바로는, 부동산 정책은 어떻게 하든 욕을 먹는다는 거에요. (모두가) 행복한 정책 같은게 있을리가 없잖아요. 분명 어느 정도 손익계산 후의 결과가 좋은 방향도 있겠죠. 하지만 부동산은 일종의 재분배 시나리오에 무조건 껴들어가게 되어 있는 거라고 봐요. 부동산 가격 상승이 어디에서 오는 건지 다들 알잖아요. 건실한 펀더멘탈에서 오나요? 아니죠, 낮은 이자율의 대출에서 오는거죠. 저도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꺼라고 보지 않아요. 인구가 감소한다해도 주요한 곳은 계속 오르겠죠, 오래 전 마이너스 성장과 성장이 아닌 수축과 팽창이라는 글을 썼던 적이 있어요. 한국이 쪼그라든다면 각 지역이 비례적으로 쪼그라들겠죠. IPCC의 이야기대로라면 우리는 기후적응을 시작해야 하는데 그 인프라가 좋은 곳은 또 어디일까요.


한참 부동산 이야기가 나오던 때, 근처 서점의 매대를 본 적이 있어요. 각 주간지 표지마다 부동산을 다루고 있는데, 어디였더라 복덕방 앞을 찍어놨더군요. '24억, 26억, 17억.' 아, 서울 살면서 지나가다 저런 걸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하긴 했습니다. (지인의 말에 따르면, 길가다 소나타 보는 것 만큼 일상이라 아무 생각이 안 든다고 합니다, 제가 호들갑 떨었네요.) 신한은행의 2019년도 보통사람금융보고서인가를 최근에 잠깐 보긴 했는데 사적인 이야기니까 굳이 다시 자세히 찾아보고 싶지도 않아요. 5분위까지 있는데 월간 소득이 30대까지는 3분위가 300만원인가 되요. 이걸 어디에 가져다 대어봐도 단기간 구매할 수 있는 부동산은 없지요. 이런 상황이 '이상'하다고 말해볼까 하지만 '정상'은 또 어디 있기나 싶구요.


마무리를 해볼까요. 현 상태가 문제가 있다는건 다들 공감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바꿔야 될 지는 영영 합의되지 않을꺼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가끔 이상한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집값이 올라도 떨어져도 이득이 아니라 손해를 본다는 이야기만 들으니까요. 그럼 어떻게 되는게 좋은 건지를 잘 모르겠어요. 과거 정권들을 보면 신비하게도 보수 정권에서는 떨어지고 진보 정권에서는 오르더군요. (그러나 언제나 평균값에 속으면 안 되요. 나만 안 올라~ 나도 올랐는데 쟤도 올라~ 이렇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사실 중앙은행도 비슷한 목표를 삼긴 하죠. 금융이 팽창을 하긴 해야 하는데 너무 빠른 속도로 팽창하면 안되고 그걸 매 번 조절하니까요. 과연 부동산도 그와 같은 류의 꾸준하게 골디락스 존에서 성장해야할 무언가일까 생각해보게 되요. (하지만 저는 다른 행위자들이 이해가 가요. 자신의 부채가 포함된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는데 그래선 목숨을 건 한 판 승부가 될 수 밖에 없잖아요.)


아직 비수도권에 절반의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그걸 기억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웬만하면 모순되는 요청을 하고 있다는 것도 이해해주시면 좋겠어요. 아, 그리고 또 이 게임이 제로섬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다양한 행위자들로 쪼개서 서로간의 손익 계산서로 구성된 방식으로 생각해보는게 어떨까 하는 작은 소망이 있어요. 전 그런 관점에서는 정권이 누구든 별 신경도 안 써요. 딱히 기대해본적도 실망해본적도 없네요.


P.S. 아, 차라리 두괄식으로 숫자를 적어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적어주는건 어떨까요. 1. 제 3기 신도시 진행이라거나 2. 증여세법 개정안(감소)라거나, 3. 300만호 임대주택 공급계획이라거나.


P.S.2. 어떤 면에서는 좀 불공평하다는건 알지만, [착취도시, 서울]이나 읽어볼까 싶군요. [사당동 더하기 25] 정도 되려나요? 아, 요즘 사당동 집값은 얼마려나요?


P.S.3. 아, 청년 난민류 관련 책들도 괜찮겠군요. 요즘 부동산과 엮어 청년들이 자신들을 난민이라고 하는건 알고 계신가요? 가끔 언론이나 정부에서 미는 협소주택이나 (말이 좋아) 쉐어주택 같은걸 보면... 휴, 모르겠네요. 놀랍게도 협소주택도 비싸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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