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온지 딱 10년된 영화네요. iptv에 무료로 있길래 봤고 넷플릭스엔 없어요. 스포일러 없게 적겠습니다.



 - 시작하면 갑자기 상콤발랄한 음악과 함께 무슨 수영대회 장면이 나옵니다. 일등한 윤승아와 2등인지 3등인지를 차지한 박은빈이 해맑게 웃으며 응원석의 (전직 티아라) 지연을 부르네요. 그러고 뭔가 의미 없는 장면이 지나가고 나면 또 시간이 좀 흐른 후인데... 박은빈이 수영을 때려 치웁니다. 그리고 한밤중에 수영을 하다가 수영장 바닥에서 귀신을 보고. 또 장면 넘어가면 다시 상콤발랄한데 아무리 들어도 카라의 '허니' 전주와 똑같지만 카라의 '허니'는 아닌 노래와 함께 생기발랄한 학교 풍경이 나오고. 거기엔 김수로 선생과 황정음 교생 선생이 있고. 뭔가 역할이 있어 보이는 학생들은 하나도 빠짐 없이 다 좀 재수 없는 행동을 하고들 있고. 그러다 '내일이 방학인데 전교 1등부터 30등까지 한 달간 학교 합숙이다!'는 얘기가 나오고. 당연히 우리의 주인공들은 성적이 좋고. 다음날이자 방학 첫날에 애들이 방학 보충 수업을 하는데 '교생' 선생인 황정음은 이유를 알 수 없게 거기에 함께 있고. 밤이 되고. 사람이 죽기 시작하고. 왜인지 납득이 안 가지만 모두 다 전화 통화 불가에 학교 건물 탈출 불가. 애들은 학교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패닉에 빠지고. 알고보니 윤승아는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고 이 사건은 그에 대한 복수인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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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가장 괴상한 캐릭터인 윤시윤씨. 왜 그런지는 설명을 못 하겠네요 스포일러라서. 근데 암튼 다 보고 나서 생각해보면 웃깁니다. ㅋㅋㅋ)



 - 못 만든 영화죠. 못 만들었기로 유명한 영화. 네, 그래서 봤습니다. 그리고 만족했습니다(!).


 일단 위의 정신 사나운 도입부 요약이 그냥 이 영화의 상태입니다. 뭔가 진행하느라 참 바쁜데 그게 계속 툭. 툭. 하고 끊어져서 종종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어져요. 애초에 이야기랄만한 건더기가 거의 없어서 그게 그렇게 감상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랄까요.


 이야기의 비중도 영 괴상합니다. 그러니까 이게 말하자면 슬래셔 무비인데, 슬래셔 파트는 여기저기 골고루 배치되어 있긴 한데 늘 갑작스럽게 튀어나와서 갑작스럽게 끝나버리구요. 앞부분에 사건 배경 깔고 뒷부분에 구슬픈 사연 까는 게 2/3 이상 정도 되는데 위에서 말한 만듦새의 문제로 그것도 충분히 전달이 안 되구요.


 하지만 역시 뭐니뭐니해도 이런 영화에서 최고로 즐길 수 있는 부분은 개연성 부분이죠. 네, 정말로 말이 1도 안 됩니다. ㅋㅋㅋㅋ 시내에 있는 학교에서 어떻게 전화를 기지국 이탈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지, 어째서 애들과 교사들은 정문을 제외한 다른 출입 방법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지. 뭣 때문에 자기들 안에 범인이 있을 거라고 다들 확신을 하는지 뭐 아무 것도 모르겠구요. 범인이 사람을 죽이는 방식들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그냥 불가능'한 방법들 뿐이구요. (그냥 엄청 성실하고 손이 빠름, 힘이 마블 히어로급으로 셈. 같은 걸 납득해줘도 설명이 안 됩니다 ㅋㅋㅋ) 심지어 막판에 범인의 정체와 동기를 알고 나면 더더욱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정말 갸들이 그런 이유로 범행을 계획했다면 이런 식으로 할 이유가 하나도 없거든요. 일부러 더 힘들고 불확실하며 쓸 데 없는 민폐까지 사방에 퍼뜨릴 방법을 선택해서 최선을 다 하는 모질이들이라고 밖엔. 



 - 어차피 놀려대며 웃으려고 본 영화이니 좀 관점을 바꿔서 말씀드리자면.

 스토리는 충분히 멍청하고 바보 같구요. 연출도 충분히 촌스럽고 오그라듭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놀랍게도(?) 황정음이 가장 빼어난 발연기를 통해 재미를 줘요.

 그리고 전체 상영 시간은 90분이 좀 안 되는 것 같으니 오래오래 보느라 지칠 일도 별로 없고. 단 하나, 막판에 길게 늘어지는 신파 파트가 문제인데, 저의 경우엔 그 부분마저도 비웃으며 즐겁게 봤기 때문에 괜찮았습니다.

 여러모로 괜찮은 비웃으며 즐기기용 영화입니다. 딱 그런 영화를 원하는 분들께 가볍게 추천드려요. <-



 + 사실 고사 1편에 비하면 나름 주인공들이 못 벗어나는 이유 같은 걸 설명해보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물론 추가된 설명 역시 한참 부족하지만요. 그리고 여러모로 1편을 떠올리게 만드는 장면들이 많아요. 대표적으로 복도 중앙 부근에 위풍당당하게 매달려 있는 모니터라든가. 수업 벨소리라든가...



 ++ 놀랍게도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를 오마주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애초에 제목부터 비슷하게 지어놨잖아요. 



 +++ 당연히 안 보셔도 되는, 안 보시는 게 좋을 영화지만 어쩌다 기왕 보기 시작하신다면 꼭 끝까지 보세요. 마지막 클라이막스와 엔드 크레딧이 정말 죽여줍니다. 소리내서 웃어버렸어요. 그 정도로 90분간 잃어버린 인생에 대한 보상이 될진 모르겠지만 뭐... 그렇습니다. ㅋㅋㅋ



 ++++ 근데 대체 한국에서 '학교'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딱 봐도 말도 안 되게만 만드는 걸까요. 다른 공간도 아니고 학교라는 곳은 거의 99%의 사람들이 다 경험해보고 겪어낸 곳이잖아요. 아니 뭐 애초에 이 영화는 모든 것이 다 말이 안 되는 경우이니 이런 불평이 의미가 없겠습니다만.



 +++++ 10주년 기념으로 여기 나온 배우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상영회를 열어주고 싶다는 못된 생각을 해봤습니다. ㅋㅋㅋ 근데 놀랍게도 이 분들 연기는 '그렇게 나쁘지는' 않아요. 황정음만 빼고. 이 탁월하게 바보 같은 시나리오와 모자란 연출력을 생각해보면 젊고 어린 우리의 배우님들은 제 밥값은 다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황정음, 윤승아, 윤시윤, 지연, 남보라, 박은빈, 지상욱(!), 그리고 이름을 말할 수 없는 또 한 명... 등등의 뽀송뽀송한 젊고 어린 시절을 구경하는 건 나름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아마 그래서 더 호의적(?)으로 글을 적고 있는지도. 제일 놀라웠던 건 지창욱. 정말 '애'느낌이 물씬 나더라구요. 실제 나이는 이미 24살이었는데...;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10년 전 우리들은 모두 폴더, 슬라이드폰을 쓰고 살았더군요. 세상이 하도 빨리, 확실하게 변해서 종종 까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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