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흑백으로 시작합니다. 트와일라이트 존 같은 곳입니다. 길 한 가운데에서 잘생긴 택시 운전사가 승객을 태웁니다. 승객은 엘름 거리와 강 거리 교차로 (Corner of Elm and River drive)에 내려달라고 합니다. 이상하게도 같은 시간이 계속 반복됩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거죠? 외계인에게 납치된 걸까요? 아니면 택시운전사는 단기 기억상실증인 걸까요? 


영화는 이 장면을 반복하면서 플롯을 진전시킵니다. 볼레로 같은 영화입니다. 같은 가락을 처음에는 조그맣게, 갈 수록 우렁차게 변주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합니다.


스포일러


택시운전사는 죽은 자를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네주는 카론(The fairy man)입니다. 엘름 거리와 강 거리 교차로는 스틱스 강 저편입니다. 느릅나무 (Elm)는 켈트 문화에서 지하 세계를 상징하지요. 강은 스틱스 강이구요. 승객 페니는 페르세포네이고, 남편은 하데스입니다. 페르세포네는 일년에 얼마간을 지상에서 보내고 나머지를 지하에서 보내죠. 그렇다면 페르세포네는 지상에서 바람을 피우지 않았겠는가, 그 바람을 피운 상대는 어떻게 되었겠는가 하는 상상력에서 나온 영화입니다. 저예산 영화로 보이는데 스릴러, 미스터리, 사랑 이야기가 다 들어 있어요. 여자 주인공을 맡은 브리나 켈리가 각본도 썼고, 이탈리아 모델처럼 보이는 지노 페시가 남자 주인공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견우 직녀 이야기 같기도 하지요.  실제로 영화 뒷 편에서 견우 직녀 이야기도 나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일 년에 한 번만 만날 수 있다니 가슴 아픈 일이죠. 그것도 단 20분 정도만 이라면요. 하지만 카론과 페르세포네처럼 영원히 산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죠. 영원을 천으로 나누면 다시 영원이 됩니다. 365일마다 20분씩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다시 영원을 곱하면 영원이 되죠. 그래서 이 이야기는 어처구니없게도 해피앤딩이 됩니다. 


2. '아웃랜더'가 그렇게 유명하다는데 도무지 볼 엄두가 안납니다. 20세기 여자가 18세기로 타임슬립합니다. 물론 18세기에도 멋진 사람들은 존재했죠. 그러나 그 사람들은 그 시대의 인습, 문화, 시스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시간을 점프할 때마다 여자들의 자유가 얼마나 제한되었는지,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과학이 얼마나 무시당하는지, 과거가 얼마나 후회스러운지, 미래가 얼마나 불안한지를 느껴야하죠. 그걸 느끼는데 드라마까지 볼 필요가 있을까요? 당장 한국에서 낙태허용 주수를 14주 (성폭행 임신은 24주)로 정할 거라고 입법 예고 되었죠. 지금으로부터 2백 년 후의 세상에서 클레어가 지금으로 타임슬립해왔다고 한다면, 그녀에게는 이 세상이 얼마나 어이없고 불합리한 것이겠습니까? 


하긴 2220년에서 2020년으로 타임슬립해오는 인간이 있다면, 연도를 확인하고 얼굴이 경악으로 가득 차겠죠. 고르고 골라서 어떻게 2020년으로 왔을까요. 


3. 2020년 타임캡슐을 만들었습니다. 뉴욕타임즈는 이 타임캡슐에 마스크, 손수 자른 머리카락, 데모같은 거 참가했으면 데모에서 사용한 물건, 식료품 리스트, 텅 빈 거리 사진, 온라인 클래스에서 해낸 숙제를 집어넣으라고 합니다. 병 속에 고통을 넣고 봉할 수 있다니 괜찮은 생각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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