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50만원짜리 무릎과 수영

2018.09.11 11:41

쇠부엉이 조회 수:1549

2년 전 가을, 플랫형 신발을 즐겨신던 중 갑작스럽게 무릎통증이 시작됬어요.

뭐 삐끗한 모양이네 하고 소염진통 파스 붙이기 며칠...보통 이틀이나 사흘이면 사라지던 통증이 열흘을 넘어갑니다.ㅡㅡ;;;심지어 걷는데도 방해가 되요.

2주에 접어드는 날 아침, 근처에 있는 유명하다는 정형외과를 갑니다. 이리저리 제 관절을 돌려보던 의사 왈, "MRI 찍어봐야 자세한 걸 알겠네요....관절은 그냥 봐선 모릅니다"

마침 제 체크카드에는 MRI 비용까지는 없던터라 일단 돌아옵니다. 물리치료를 받고 와도 나아지는 건 없어요. 의사말대로 통증은 한 달이 지나니 차츰 사라집니다만

역시 무릎이 전같지 않더군요. 조금만 많이 걷거나 무거운 걸 들으면 바로 통증이 돌아옵니다. 그것도 꽤 심해요.


나이드는 것도 서러운데 50도 되기전에 무릎이 한 개 이미 나갔구나 싶어 울적하더군요. MRI까지 찍으라는 의사말이 어쩐지 미덥지가 않아서

(주변 무릎안좋은 어르신들은 이미 여러분 계셔 조언을 받으니) 안좋은 무릎은 공식적인 약도 없다는데 싶어 영양제부터 찾습니다. 

글루코사민....반쯤 복용하고 나서야 실제 효과는 개인차가 심해 신뢰도가 떨어지더군요. 초록입 홍합...그래도 사놓은거 꾸역꾸역 먹었네요.

관절엔 운동이라고 해서 관절강화운동에 매달립니다. 원래 걷기를 좋아해서 그걸로 체중조절하곤 했는데 

아파지니 운동도 못해 체중이 불어 관절엔 더 안좋더라구요. 걷기말고 운동을 찾다가 도착한 게 수영입니다. 

근데 저는 워낙 운동치인지라 수영은 생전 생각조차 안해본 운동이에요. 물도 싫어하고...그래도 관절엔 여기밖엔 답이 없어서 주저하기를 두 달..

겨우 등록하고 내 인생에 수영이라는 운동을 시작합니다만...


역시 한 달도 못채우고 안나갑니다...일단 너어무 힘들고 물에도 못뜨고..한 시간을 시달리다 물 밖으로 나오면

마치 그래비티의 마지막 장면같이 휘청휘청..(멋있다는건 아님) 체력이 너무 딸려요. 다른사람은 곧잘 따라하는 동작들이 하나도 안되고...

매번 운동 전후로 샤워하고 머리감고 몸에 로션바르기도 귀찮고...그냥 집에서 체조나 하고 필라테스 같은거나 알아보자 싶어 관두었지만..뭐 되나요.

집에서 그냥 안 움직이고 체조나 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냅니다..그 사이 무릎은 더 자주 통증이 심해졌어요. 쉬면 낫고..아프기를 반복.

다시 정형외과를 찾아서 관절 주사라도 맞으라는 조언들에 귀막고 살다가 다시 혹시나해서 수영기초반에 재도전 합니다. 근데요.


저번 선생님이 저랑 안맞았던 걸까요? 이번 선생님은 수영장 인기강사라고 하더니 점점 할만합니다?? 물에도 떠요?? 심지어 배영은 

배영을 위해 태어난 거 같다는 소리까지(물론 뻥반 격려반이겠지만) 듣습니다. 알고보니 기초반이나 초보반은 재수 삼수?가 태반이라 

보아하니 진짜 초보는 물에도 못뜨고 발차기도 가라앉고... 딱 이전의 저인겁니다.(다른사람이 잘하는건 이유가 있었...!)

새 선생님은 그런사람들을 슬슬 웃겨가며 격려하며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즐겁게 해주시더군요. 

진도도 빨라서 한 달만에 자유영 배영 기초동작을 마치고 초급반 올라갑니다만...연말에 챙길 대소사가 많아서 못가고 말았습니다.


아이 학교 입학하고 정신없이 지내고 학교엔 문제가 터져 거의 매일 학부모모입 소집되고..일이 마무리될 무렵 제 저질체력은 더 바닥을 쳐서

아이 저녁도 못하고 드러눕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다시 운동을 결심합니다. 저번에 못한 수영...다들 눈 딱감고 6개월만 투자하면 체력이 좋아진다고 하니

다시 등록해...이제야 평영에 접영을 배우는 단계까지 갑니다...8월이 너무 바빠 또 재수강처지..그래도


이제는 수영이 좋아요. 물 속에서 혼자 내 몸 하나로 물살을 헤치며 나아가는 그 기분이....사람들이 강으로 바다로 물놀이 가는것조차 잘 이해를 못했는데

이제는 어디 경치좋은 바다같은걸 보면 그 물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스스로를 느낍니다. 대단한 변화에요. 바다나 휴양지를 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진 거 같아요.

제 인생에 수영이라는 운동을 하게만든 제 무릎은 그러나 이렇게 열심히 노력함에도 통증은 주기적으로 찾아오고...관절염파스를 백 장짜리 한 통을 사면

한 달도 못 되 다쓰고...체력은 확실히 좋아지고 했지만 여전히 나아지지 않습니다. 설상가상 거울에 관절을 비춰볼 일이 있어 자세히 보니 

양 무릎의 모양자체가 달라진 걸 발견합니다. 헉! 내가 자세한 검사를 거부하고 혼자 치료한다고 난리치는 동안 

내 무릎은 더 맛이 갔구나. 연골이 다 닳아서 모자라진건가?? 거기다 이젠 안아프던 다른 무릎까지 아프기 시작합니다. 최악이에요.ㅡㅡ;;;

이전의 정형외과는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믿음이 안가는 구석이 있었던 터라 이번엔 아예 종합병원 정형외과를 예약해 다시 갑니다. 두근두근


새 의사는 만사가 조금 귀찮다는 듯한 여윈 타입의 안경선생님이셨는데...일단 엑스레이부터 찍자고 보자마자 내보냅니다. 사진을 찍으니 이전 병원보다 더 자세히,

이방향 저방향, 이자세 저자세 다 찍더군요. 사진과 함께 다시만난 의사에게 그동안 아팠던 과정과 이전 병원에서 한 말을 다 전해줍니다. 

다 듣던 의사는 누워보라고 하고선 제 무릎을 양쪽 다 이리저리 만져보고 돌려보고 하더니만

"관절엔 이상이 없습니다. 아프신 건 관절문제가 아니고 무릎주변의 근육이나 인대문제인거 같네요..진통제랑 소염제 드릴게요"

이러는 겁니다.


헐.

뭐지 이건.

전 더 어필합니다. 파스 백장짜리를 두 번이나 쓰고도 여전히 아프다고. 자주 아프다고. 너무 아파 저린데 어떻게 관절에 아무문제가 없는거냐고

그 말을 듣더니  그렇게 자주 아프다면 MRI 찍어 확인하면 좋겠지만 권장사항이지 꼭 찍을 필요는 없다는 식(관절문제 아니야..도리도리..)입니다.

붙이는 관절치료제를 붙이고 호전이 되는 정도라면 더더구나 관절문제는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나서 찍자고 합니다. 찍었습니다. 찍는 내내 괜한 짓을 한 거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더니만...결과를 받아보니 흑

'관절엔 이상없음'


그렇다면 그동안의 통증은 대체 왜 그런거냐고 하소연하니 의사가 그제야 배시시 웃으면서

"제가 약 넉넉히 처방할테니 너무 아프면 드시고요. 수영은 좋은 운동이니 앞으로 주욱 계속하세요. 

근육이나 인대쪽 통증같으니 운동 성실하게 무리하지 말고 꾸준히 하세요. 자세 좋게 유지하시면 좋아질 겁니다"

이러고 진료는 끝납니다. 

터덜터덜 두툼한 약봉지 받아 돌아오는 길. 아침부터 쑤시던 무릎이 전혀 아무렇지도 않네요. 안 아프니 약을 먹을 일도 없습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지금도 약은 안먹었습니다. 그 이후 이상할 정도로 무릎은 안아픕니다. 잠시 저리기는 했지만 무시할만한 수준이었어요...

마지 자린고비 굴비 달아놓은거 쳐다보듯..약봉지는 열지도 않은 채 약선반에 늘 진열되있어요. 아프면 먹어야 하니까요.


수영은 접영을 배울 단계에 여름휴가로 자주빠진 탓에 다시 상급1반으로 내려가 재도전 중입니다. 몸에 힘을 못 빼 물타기가 잘 안되요.

수영을 마치고 나른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오면서 문득 50만원을 주고 무릎을 다시 되찾은 거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릎 MRI가격이 대략 50만원 더 넘는데 정확히 얼마였더라......그거 보험료 신청하러 컴 앞에 앉았다가 이렇게 잡글을 길게 쓰고 있네요.

동네 유명하다는, TV에도 나오는 정형외과 병원은 엑스레이로도 잡아내는 증상에 왜 무턱대고 MRI 찍자고 해서 나를 이렇게 먼길을 돌게했나 원망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수영을 하게 되었으니 그냥 쌤쌤인가요..무릎이 안 아팠다면 수영은 절대 제 인생에 없을 운동이었으니까요...

체력이 좋아진 것과 보너스라면..체중은 100그람도 안빠졌는데 신기하게 바지사이즈가 두 치수 내려갔습니다. ㅡㅡ;;;이건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여튼 전에 못입고 박아둔 결혼전 바지까지 이제 다시 입어요. 여기서 수영을 좀 더 열심히하고 식이요법까지 하면 결혼전 체중도 되찾을 것 같은데...ㅎㅎㅎ


결론은..여러분 운동 좋아요. 수영 특히 더 좋아요. 뭐 그런거네요...제가 더 어릴때부터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스스로의 몸을 돌봤다면

제 인생이 조금은 더 다른 색채로 물들었을 거 같다는 생각을 수영다니면서 정말 많이 느꼈거든요.

여러분 운동 좋아요.....이만 쓸게요.ㅎㅎㅎ 간만의 기~인 잡글 투척이었네요.^^

다들 건강하세요~


푸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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