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리가 커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모자 앞에서 말이 없구나...

요즘 어린 친구들을 보면 웬만해선 다들 머리도 작고 다리도 깁니다. 전반적인 기럭지는 아직 아쉽지만, 비율은 탈아입구를 향해 가고 있어요. 어깨 좁은 놈은 면봉이요, 어깨 되는 놈은 맷돌인 제 또래들을 보다가 그들을 보노라면 깜짝 놀라는 겁니다. 아니? 혹시 나 모르는 사이 인류보완계획이?

중국제 미세먼지가 공습을 이어가는 충격과 공포에도 불구하고 저는 마스크 끼는 걸 싫어합니다. 두 가지 이윤데요. 하나는 인스타 미녀들의 얼굴을 넉넉히 덮어주는 그 패션템 마스크가 어찌된 영문인지 제 얼굴에만 걸쳐지면 삶은 계란에 붙인 대일밴드 꼬라지가 되어서이고. 다른 하나는 안경에 차오르는 습기 입니다.

제 아무리 콧잔등의 금속 고정대를 정성스레 구부려도 길바닥에서 거친 숨결 습하습하 몇 번이면 열 걸음 마다 멈춰서서 사연 있는 남자처럼 안경을 닦아내야 하는 거지요. 거 참 더러워서 못 해먹겠네!

심청전을 보면 요팟시 레전드 급으로 인생이 좋게된 청이의 암담함과는 별개로 이해할 수 없는 학규의 행보에 분통이 터집니다. 청이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부처님 앞에 삼백석을 바친다고 애비의 눈이 떠질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훗날 청나라 황후가 된 청이가 주관한 잔치의 행사 타이틀은 봉사들을 위한 잔치였으니까요.

청이에게 인생 역전의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닙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던 황부자 댁 부인이 어려서 잃은 딸을 생각하며 착하고 예쁜 청이를 수양딸로 삼으려 했습니다. 학규도 돌봐주고 시집도 좋은 데 보내줄테니 같이 살자 했어요.

그런데 청이가 자기 애비 학규는 자기 손으로 먹여 살려야 한다며 그걸 거절해요. 그러고 부인이 쥐어준 먹을 것들 싸들고 돌아왔더니 애비란 놈이 한다는 말이 뭐? 삼백석? 삼백서어억? 안 되겠다.. 학규 넌 형한테 좀 맞자..

청이는 아마 욕에 욕을 하며 뱃전에 섰을 겁니다. 기억도 없는 어미, 손등이 터져라 일 해도 부쳐먹을 밭뙈기 하나 없는 가난, 삼백석 같은 소리나 하는 애비. "에라이 인생 씨바꺼 그래 내가 죽어주마! 좋냐?" 인당수로 추정 되는 곳은 황해도 장산 앞바다. 두려움에 떨던 십대 소녀가장은 그 죽음의 길이 너무 무서워 치마를 뒤집어 씁니다.

쌀 한 가마를 20만원으로 봤을 때 삼백석의 가격은 1억 천만원. 시세에 따라 1억 3천까지 가는데요. 당시 중앙 관료들이 모여 살았던 북촌의 서른 평 규모 기와집의 가격이 1억 5천이었습니다. 비정규직은커녕 일용직 미성년 노동자였던 청이에게 광화문 청사 근처 서른 평 아파트란 어떤 의미였을까요? 학규 너 좀 더 맞자. 업드려 이 새끼야

땡중에게 딸년 목숨 값을 털리고도 정신 못 차린 학규는 조금 남은 목숨 값을 노리고 접근한 뺑덕 어멈에게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황후가 봉사 잔치를 열어 준다니 거길 가겠다고 꾸역꾸역 길을 떠납니다. 청이는 처음부터 애비가 그런 인간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겁니다. 잔치가 무슨 출석 안 하면 고발 당하는 예비군 훈련인가요? 자기가 안 가면 그만인 것을?

그곳에서 마담 뺑덕은 이제 집에 떡 바꿔 먹을 쌀도 떨어졌겠다, 도중에 만난 반소경과 눈이 맞아 학규를 버리고 자유부인의 길을 걸어갑니다. 이야기가 여기서 종결 된다면 이 스토리의 빌런은 심학규. 그러나, 곧 죽어도 충효는 너와 나의 노후를 위한 연금 없는 시대의 보험이기에 학규는 황제의 장인이 되어 잘먹고 잘살게 되지요. 정의는 패배했습니다. 여러분.

재밌는 것은 뺑덕과 눈이 맞아 달아나는 반소경이라는 존재입니다. 시력측정판 앞에서 숟가락으로 눈 가리기가 민망했던 분들은 그런 생각이 드실 겁니다. 혹시 저 반소경이라는 존재가 나 같은 인간 아니야?

안경이 없던 시절의 근시들은 보기는 하되 제대로 뵈는 것이 없는 반소경 소리를 들었겠지요. 저희 어렸을 때만 해도 안경 쓴 애들이 드물어 안경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놀림 거리가 됐던 걸 생각해보면 아주 납득이 아니 가는 바도 아니에요.

마스크 틈새로 입김이 증기기관차 연기처럼 쉭쉭 뿜어져 나와 안경이 뿌얘지니 뵈는 것이 없고, 지하철역까지 위태롭게 걸어오며 전 반소경의 애환을 씹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제 어느덧 삽십대도 막장을 향해 달려가는 완연한 중년. 나름 사회적 위신을 생각하는듯 점잖은 척 행세를 해도, 친구들끼리 걸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대화를 나누지 않습니까?
야.. 봤냐? 봤지. 봤어. 오오오...

게이들에게 게이더라는 게 있다하듯, 남자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시선을 전방에 고정하고서도 예쁜 여자는 기가막히게 감지해내는 능력이 있어요. 비록 초점이 맞지 않아 제대로 보이지 않는 화각 밖의 공간에 있을지라도. 거의 이지스 방공 시스템급.

즉슨, 뺑덕이.. 전해지는 이미지와는 달리 박색이 아니었던 겁니다. 반소경이 보기에 괜찮았던 거에요. 사치와 못된 심보에 아는 사람들은 멀리 했지만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

그런 사람들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현상을 저는 종종 목격했습니다. 왠지 장미와 와인을 시들해 하고, 노래는 꼭 엘리엇 스미스나 미스티 블루 같은 것만 들으며, 싸이월드에는 권신아 씨 일러스트에 - 우울하고픈 밤- 따위를 적는 양산형 마성녀들. 그런 여자들한테 잘못 걸려서 완전히 거덜나는 인간들 정말 많이 봤어요. 꼭 제가 그랬다는 건 아니고요.... (아, 잠깐만 눈물이...)

이제 저는 마담 뺑덕에서 이솜 배우가 캐스팅 된 이유를 납득합니다. 그녀, 뺑덕. 암컷 사마귀 같은 매력이 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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