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면서 먹으면 체하나요

2011.03.28 12:28

settler 조회 수:3456

어릴 때 밥상머리에서 엄마한테 혼나고 눈물이 글썽한 채로 꾸역꾸역 밥 먹을 때면

씹는 동작이 부스팅이라고 한 것처럼 눈물이 더 울컥 울컥 나지 않나요

센과 치히로에서 주인공이 주먹밥 먹으며 닭똥 같은 눈물을 막 흘리는 장면

밥이 들어갈수록 눈물방울이 더 커지는 그 장면 묘하게 실감 나서 좋아해요

 

오늘 남편이랑 찍어둔 가게에 브런치 먹으러 갔다가

음식이 나오기 직전에 말다툼을 하고 눈물이 글썽해졌는데

피할 새도 없이 음식이 나온 거에요

 

치킨 앤 와플이라고 요샌 달달구리 말고 짭잘한 식사류에 와플이 같이 나오는 브런치 메뉴가

나름 유행이래요 여하간 맥앤치즈 같은 파스타 조금이랑 와플 치킨 이렇게 같이 나오는데

파스타가 너무너무 맛있는 거에요  와플도 맛있고.

근데 먹으니까 먹을수록 눈물은 더 나고

그렇지만 오래 굶기도 했고 맛있고 따끈한 걸 먹으니까 뭔가 더 설움이 북받쳐 숨은 막혀 오는데

먹는 걸 중단하기는 싫은 그런....;

 

그래서 울며 불며 밥을 먹고 남편은 약간 걱정 or 그냥 당황하는 거 같았고 -_-+  서버는 우리 테이블을 피해 다니고

그런 청승 한 장면을 찍고 왔습니다.

 

울면서도 밥은 참 맛있고

계속 먹고 싶어서 나중엔 눈물 닦고 열심히 먹어 치웠습니다.

웬수 같은 남편에게 와플 한 조각도 주고요.

밥 먹고 와서 아직 말은 안 섞고 있어요. 대신 벗어 둔 추리닝 바지를 열번 가량 발로 차 주었지요.

 

여하간 세상이 무너져도 밥은 맛있다는 걸 깨달은 하루였지요.

그리고 밥상머리에서 구박하면 정세가 몹시 불리해진다는 것도요. 상대가 울며 불며 밥 먹거나 못 먹으면

참 곤란지경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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