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솔직히 어느 정도, 아버지가 오래 못 가실 거란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제가 휴가를 나갈 때마다 나날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안 좋아지시는 모습이 자주 보였기에. 일병 휴가 때도 아버지가 많이 상태가 좋지 않으셔서, 정말 안 하려고 했지만 그런 생각이 조금은 들더라구요. 하지만, 아버지가 본인 스스로 그 날을 앞당기실 줄은... 솔직히 심적으로 많이 무너지신 분이라 그러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설마 그걸 실제로 실행을 하실 거라고는.... 차마 생각도 못 했었죠.

 

2. 그래서 그 이야기를 어제 점심에 부대에서 들을 때는, 처음엔 누군가의 악질 장난인 줄로 착각했었죠. 아무리 안 좋아지셨대도 그렇지 병으로 가신 것도 아니고 스스로 가셨다니. 하지만 동생이랑 엄마에게 왔다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보니, 정말 한스럽게도 사실이더라구요.

 

처음에는, 사실 조금 웃었어요. 도무지 현실 같지가 않고, 조금 일찍 나온 만우절 장난인 것 같았고. 하지만 부대에서 급히 나와 울고 계신 어머니와 아버지의 유서를 보니.... 그제서야 모든 게 현실이라는, 도무지 생각하고 싶지 않고 믿고 싶지도 않지만 이 모든 게 사실이란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3. 그래도 안 울려고, 어머니나 동생처럼 목놓아 울지 않으려고 했어요. 직접 그 현장을 본 동생이랑 어머니가 얼마나 크게 충격을 받았을지 알기에, 저라도 냉정한 척, 의연한 척을 하면서 버텨야 된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점점 오면서 아버지 빈소에서 눈물을 흘리니, 저도 도저히 울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그래도 억지로 참고 또 참았지만....

 

4. 하지만 오늘 오후부터는 아버지의 지인들, 교회 사람들, 부대 간부들이 찾아오니까, 슬픔을 표현할 겨를도 없겠네요. 내일 아침에 화장하고 유골을 안치할 때까지는 그래야 하겠고요. 하지만 다 끝나고 나면.... 간만에 소주 병나발이라도 불면서 한을 조금이나마 씻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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