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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가 2008년 6월에 듀게(구게시판)에 회원분의 리퀘스트에 의하여 올렸던 글입니다.

아마 로그인해야 읽을 수 있을듯 싶으니 전문을 다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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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펌입니다.
2년반전에 썼던 글이고.... 지인들끼리만 몰래 보던 블로그에 올렸던 글이라 경어체의글이 아닌 점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왠 뜬금이냐 하면....
오늘 쪽지로 날라온 리퀘스트 때문입니다.

그럼 나갑니다.... (스크롤 압박이 좀 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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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예고했던대로 오늘은 중국의 조선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역시나 내 경험을 중심으로 소소한 이야기가 될 것이므로 너무 큰 의미 부여를 하지 말았으면 한다.

얼마전에 베이징에서 조기유학중이던 한국고등학생 하나가 조선족 과외선생이 휘두른 흉기에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조선족에 대한 악감정이 공공연히 유포되고 있는 상황인듯 보인다.
언제나 이러한 순간에 지혜로운 자는 옥석을 구분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어리석은 자들은 최대한 적을 많이 만드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법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사전적 이야기를 간단하게 언급하고 넘어가겠다.
대부분의 조선족의 뿌리는 일제시대 간도로 집단이주한 사람들이다. 경상도에서 그리고 전라도에서 한반도 일대에서 일제의 강폭한 압제를 피하여 이주한 사람들인 것이다. 즉, 그 뿌리는 완전히 한민족인 사람들이고 고작 100년도 채 안되는 과거의 역사인 것이다. 조선족중에는 일제 시대를 지나 한국전쟁시기 전쟁을 피하여 간도로 이주한 사람들도 많다. 이들이 50-60세 정도의 나이에 한국으로의 귀속의식이 매우 강한 조선족이라고 보면 된다. 1949년 내전에서 승리한 중국공산당에 의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이 건설되고 간도로 이주했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중국 인민이 되버렸고 배척과 포용정책을 거치면서 조선족은 서서히 내부로부터 자체의 결속력이나 정체성을 상실해가고 있는 실정이라는 주장을 많이 접하게 된다.

조선족과의 첫번째 만남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1996년경 대형프로젝트 완성을 자축하면서 중국연수를 시행하였고 상해와 북경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 때 우리 일행을 안내한 가이드가 조선족이었고 이 것이 첫만남이 된 것이다. 이른바 교수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가이드는 먹물의 기운이 감돌기는 하였던 듯 싶었다. 하지만 이리보나 저리보나 도저히 신뢰감을 느낄만한 소양을 갖은 사람으로 보기 어려웠고 이런 전차로 나의 조선족에 대한 첫인상은 매우 안좋았다. 사기꾼, 뻥쟁이, 기회주의자....
그당시 연수를 마치고 회사에 제출한 리포트에 썼던 내용중 기억 나는 것 하나는 다음과 같다.
"중국 현지 사업파트너로 최우선적으로는 중국어에 능통하여 중국사정을 잘 아는 한국인이 좋다고 생각한다.
만약 사정이 안된다면 영어 혹은 중국어에 능통한 한족 중국인이 적당하다고 보며, 조선족을 파트너로 하는 것은 가장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그들이 표면적으로 나타내는 국가적 정체성이 매우 기회주의적이어 가장 초보적인 신뢰성 면에서 매우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한국기업을 위하여 임할 자세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도 않으며 대부분 연변과 같은 낙후된 농촌 출신인 관계로 상해와 북경등 대도시를 기반으로 활동을 해야하며 고도의 문화적 산업부문인 '건축설계'와 관련된 파트너로의 기본소양이 전혀 안되어 있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레포트를 제출하였지만 1999년경 상해에 수석대표부가 설립되면서 수석대표는 직원 3명을 전부 조선족으로 채워버리는 바보짓을 하였다 -_-;; (게으른 자들이 흔히 벌이는 실수들)

두번째 만남은 그 이듬해 15명의 답사대를 이루어 떠난 고구려유적지 및 백두산일대 항일 유적지를 들러보는 6박7일간의 간도여행에서 역시 우리 일행의 안내를 맡은 조선족 가이드와 일정의 끄트머리즘에서 북한식당에서 조우한 연변대학 국문학교수(조선족)였다.
우선 20대 후반의 맑은 눈빛을 갖은 조선족가이드 청년은 현재에도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는 편이다.
처음 열차편을 제대로 조직하지 못하여 일행의 따가운 눈총을 한눈에 받았으나 그이 타고난 성실함은 하룻만에 그런 분위기를 일신하여 일행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기에 충분하였다. 연변에서 마지막날밤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면서 나눈 이야기속에서 그를 통하여 조선족으로서의 정체성에 관련된 고민을 솔직하게 듣게 되었으며 한국기업인들이 처음 동북지방에 들어와서 저지른 여러가지 나쁜짓들 그에 따른 조선족 일반에 자리잡은 한국인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의 사연을 듣게 된 것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날 저녁만찬을 같이 하였던 연변대학 교수를 통하여 밑 빠진 독마냥 대도시로 빠져 나가는 젊은이들 때문에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존립기반이 흔들리고 있으며 교수인 자신조차 조선족이라는 정체성과 실체가 어찌 지속될 수 있는지 그 미래가 암울하게 느껴지고 희망을 갖기 힘들다고 스스럼없이 말하였다. 만찬장이었던 '평양식당'에서 만난 옹골찬 북한여성들의 불꽃튀는 눈매와 조선족 교수들과 학생들의 어눌하고 맥빠진 눈의 대비가 매우강열하였던 기억이다.

세번째....6년간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조선족친구가 하나 있다.
내가 중국에 관광이 아닌 일 때문에 와서 알게되어 현재까지 인연을 지속해오고 있는 친구가 하나 있다.
심양출신이며 상해의 명문대학중 하나인 동제대학을 졸업한 매우 명민한 친구인데 공산당원이기도 하여
정치의식이 높은 편이다. 
그 친구와 6년간 만남을 가져 오면서 가장 크게 느낀것은 뒤틀린 중국인으로서의 자존심과 한국에 대한 애증의 감정이복합되어 있는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었다.
내가 무심결에 눈 앞에서 벌어지는 중국인의 무례하거나 무질서한 모습에 대해 한심하다고 말을 하면
이 친구는 본능적으로 자국문화를 비호하면서 한편 한국인은 머 그리 잘났냐는 듯이 대드는 습관을 갖었었다.

"어찌 저렇게 쓰레기를 함부로 버릴 수 있는거지요? 아니 도대체 새치기가 너무 심하네...."
이렇게 푸념하면 마치 자신이 공격 당했다는 듯이 발끈한 이 친구는 얼굴을 붉히면서
"예전엔 한국사람들도 더했다면서요? 멀 그정도를 갖고 그러는겁니까?"

이런식의 실랑이를 벌인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나의 푸념이나 지적이 XXX를 향한 것이 되면 반발의 강도는 더욱 심했다.
그러던 어느날 벼르고 벼르다가 다음과 같이 설득?을 하여 보았다.

"무언가 오해가 있는것 같은데....나는 두 민족간의 우열을 가르거나 중국인민 전체를 싸잡아 매도하려고 그런 이야기를 꺼냇던 것이 아니다. 그저 눈 앞에 보여지는 부조리한 상황을 개탄하려고 했을 뿐이다. 당신도 '루쉰(魯迅)을 알것이다. 그의 아큐정전이 의미하는 바를 안다면 현재 이 상황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중국인민들의 옳지 못한 태도나 잘못들이 제3자에 의해 지적되고 비평되는 것에 감정적으로 반발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시정해나갈지 고민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예상대로 그 친구는 그동안 만나왔던 다른 많은 한국사람들의 '비웃음', '힐난' 등에 짜증이 날대로 난 상태였던 것이고 구경꾼들의 그런 조롱에 대해 반발하는 것이 몸에 베인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중국의 주류에 편입하려는 열망에 가득한 청년공산당원이었다.
중화인민공화국에 공화국민으로써 중국공산당 당원으로써 그의 자긍심은 매우 강하였고 그러하기에 한국에서 온 말만 통할 뿐이며 국가적 민족적 연대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중국교포 2-3세들의 보편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보면 된다. 그들은 100% 중국인이다.) 한국인들의 조롱과 질시에 감정적으로 저항하게 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후로는 최대한 그가 오해하지 않도록 함께 걱정하고 개선방안을 고민해보는 자세로 그러한 주제를 언급하게 되었고 그도 나의 선의를 오해하지 않으면서 심각한 문제이고 걱정된다고 동의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게다가 공산당원인 자신만큼이나 중국공산당과 당 정책에 대해 잘 아는 게다가 중국의 역사와 미술사에 대해 대화가 전혀 막히지 않은 나를 보면서 마음의 문을 열고 대하게 되었다.(1995년부터 중국에 대한 공부를 개인적으로 꽤나 열심히 재미 있게 하던 밑천이 득을 보게 된 것이다)

네번째 조선족은 30대 초반의 여성이고 내가 2년전 상해에 설립하였던 법인의 수석관리자였다.
이전에 만나고 접했던 조선족들에 비하여 매우 독특한 인상과 경험 그리고 취향탓에 용기를 내어 파트너가 된 것인데
무엇이 달랐냐하면 이 여성은 조선족이라는 정체성을 되도록 지워버리려 애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선 대부분의 친구가 죄다 한족이었고 상해에 흔하게 돌아 다니는 서양인 친구 사귀는대 스스럼이 없었다. 중산층 조선족 가정 출신으로 개인에 대한 자긍심이 높은 편이어서 고집이 매우 쎄고 한국인들을 일반적으로 불신하고 싫어하고 경원하는 편이었다. (이유는 한국인들 대부분이 조선족이라는 이유 하나로 무시하고 업신여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매우 특이한 부류이긴 하였으나 그녀의 반한감정에 대해 전적으로 무시하거나 타박할 수많은 없는 사정을 이해할 도리밖에 없었다. 내가 직접적으로 경험하게된 한국교민들의 조선족에 대한 멸시의 감정은 내가 생각해도 매우 지나친 감이 있었으니까....(먼 머슴 대하듯이 한다는 -_-;;)
그리고 우연히 방문하게 된 집에서 그녀의 어머님이 차려준 저녁식사를 얻어 먹데 되었는데 그 때 그녀의 어머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오래도록 귓가에 맴돈다.

"한국사람들은 우리를 한국사람 취급 안하고 중국사람들은 우리를 중국사람 취급 안해요...."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푸념하는 50줄에 달하는 아주머니의 무심결에 내뱉은 신세타령? 치고는 너무 무거운 이야기였다.

그리고는....매우 매우 많다.
지금 적을 두고 있는 회사의 인사과장 C씨, 호시탐탐 나와 일할 기회를 노리는 사업가 N씨, 나에게 해변별장 설계를 의뢰하였던 청도에서 가방공장을 운영하는 여장부 K여사장님, 출근 시작하고 일주일만에 말도 없이 도망간 인간 -_-;, 이불이나 소파에나 푹신한 곳이면 가리지 않고 오줌을 싸대는 고약한 버릇을 갖고 있는 고양이를 시치미 뚝 떼고 나에게 넘긴 의상디자이너 K양 등등....

연령별로 계층별로...매우 다양한 조선족들을 접한 샘인데....

공통적으로 느낀 바는 한국인에 대한 경계심....과 병존하는 기회주의였다.
물론 한국인과의 교류가 전혀 없이도 자신의 생업을 유지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기회주의적인 태도가 전혀 없다.
이게 한편 먼말이냐하면, 한족 일반의 엘리트들과 경쟁할 정도의 수재들, 능력가들은 굳이 한국인들과 접하려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졸업후 공채시험을 응시한다면 한국기업을 제외한 다른외국기업에 응시를 하지 한국기업은 좀 능력이 떨어지는 조선족들이 마지 못하여 가는 곳이라는 것이다.(이건 전적으로 그간 한국인들이 행한 행위들의 댓가? 혹은 결과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싶다)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이야기가 있단다.
조선족이 한국인 일반을 대하는 태도는 결국 중국에 진출한 한국인들의 거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혹자는 조선족 '촌뜨기들'이 중국에 진출한 한국인 덕분에 그나마 살기 좋아졌는데 그것도 모르고 고마운줄도 모르고 대든다고 힐난하기도 한다. 사물의 서로 다르게 공존하는 양면일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혹자는 역시 조선족들 덕분에 싼값에 통역을 두고 중국에서 돈을 벌 기회를 잡았던것 아닌가?

역시 세상이치는 평범한 것이다.
머는 머끼리 논다라고 ^^

하여간 그리하여서 나의 결론은 이렇다.
거울앞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좋은 표정을 지어 보이자는 것이다. 거울속의 그가 당신을 항하여 활짝 웃으며 진심을 보여주길 바란다면 말이다. 


아래는 위 글을 2년반만에 끄집어 내어 보면서 든 감상어린 사족입니다.

* 이 글을 쓴 이후에도 더 많은 조선족을 만나서 인연을 맺어 보았는데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그렇지 하는게 나의 결론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신분상승과 물욕이 앞설만한 사회적 처지에 있는 조선족이 바로 앞에 있다면 그 조선족에게 중국말을 할 줄 모르고 중국실정을 잘 모르는 한국인은 '봉'이 되는 것은 꽤 일반적인 상황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서....중국에 와서 산다던지 중국 관련된 사업을 하게 될 경우 어느정도의 중국어 회화능력은 필수라고 생각됩니다.
   현재 제가 인사권을 발휘할 수 있는한 조선족 직원 채용을 최대한 절제하는 편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인종적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가 한족이 주류인 중국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보자면 매력적이고 인간적이며 친구나 파트너가 될만한 조선족이 충분히 꽤 많습니다.
   하지만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조건과 시스템을 지향해야할 회사 혹은 비지니스 환경에서는 상황이 다르겠죠. 


* 한가지 더 최근들어 채용하게 되어 일을 같이 하게 되거나 상대편 회사의 담당자인 조선족 젊은이들의 경우(20대 중반 전후) 중국인 의식이 희박한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한류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세대들이죠. 이들은 한류를 통하여 한국이라는 나라와 문화에 대해 일종의 동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족중심의 중국문화에서 자신이 처하는 변방으로서의 자각이 부지불식간에 생기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구요. 이들을 두고 100% 중국이다....라고 규정하는 것은 가끔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꽤 세련된 옷차림과 스타일을 갖추고 능숙한 한국말을 구사하며 한국인 행세?를 하는 조선족 젊은이들을 보게 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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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근 3년만에 꺼내어 읽어보고 되네요.


* 최근 일년 넘는 기간동안 거의 단 한명의 조선족과도 접촉이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완전히 한족중심 쇼설네트워크에서만 일하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사는 동네 역시 상해에 30여개나 된다는 한국식품점도 일년에 한번 갈까말까 할 정도로 멀찌감치 떨어진 동네구요. (사실 일본계백화점이나 까르푸 같은데만 가도 왠간한 한국식품들과 조미료는 쉽게 구할 수 있거든요.


* 3년전엔가 한국으로 일하러 가서(한식당 주방보조) 돈을 모아 상해로 돌아와 개업을 했던 조선족 동생이 하나 있어요. 가게자리가 좋지 못해서 만류를 했었는데 말 안듣고 밀어부치다가 반년도 안되어 말아먹고 종업원들 월급도 못준채 야반도주해서는 소식이 끊기더니 다시 한국으로 가버렸더군요. 지금은 강남에 꽤 큰 한식당에서 실장으로 일하고 있데요. 조만간에 또 모은 돈으로 중국에 돌아와 한식당을 개업하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무조건 제가 하는 말을 듣겠데요. 제가 그랬죠. "그러던지 말던지 알아서 해 -_-"  제가 접했던 대부분의 조선족 친구, 동생, 클라이언트들이 소고집들이라 질렸고 좋은 마음에 그 고집 꺽으려다가 한 두번 데인게 아니었고 너무 피곤했거든요;;;


* 앞으로도 가급적 중국에서 조선족과 상관없는 쇼설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싶은게 솔직한 마음입니다.  사실 한국인과 조선족간에 여러가지로 얽히고 섥힌 사회,역사적인 문제들이 개개인에게 내제되어 있다보니 표현하기 힘든 애매한 문제들로 다소 불편한게 사실입니다.  일부러 관계를 맺고 일하고 교류하는건 피하고 싶어요. 그리고 또 주변 지인들에게 권하기도 하구요. 좀 초반에 더디고 고생스럽더라도 조선족과 관련 없이 일과 생활을 시작하라고 권합니다. 

이게 편견이라고 공격한다면 전 할말 없습니다. 따로 반박할 생각도 없구요.(저로서는 그럴 가치가 전혀 없으니까요) 제 개인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사회적 갈등과 모순들이 있는데 그것을 제가 피할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피하는게 가장 최선책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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