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기억이 맞다면 동일한 제목의 글을 쓴 일이 한번 있을것입니다. 그래서 2를 답니다. 내용도 비슷할꺼에요. 뭐 메피스토가 그렇죠.

 

 

* 동성애, 지역차별, 인종차별, 혹은 이런 맥락의 편견 상당수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혹은, 이런 의견들은 어떤 형태를 띄고 있을까요.

 

머리에 뿔이 달린 대악마? 콧수염을 달고 제복을 입은 독재자? 한 200년정도의 형을 받고 외딴섬에 위치한 감옥에 갇힌 죄수? 물론 이런 대악당들이 편견섞인 주장을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편견들은 매우 일반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표현그대로입니다. 이 게시판에서 활동하는 유저A일수도 있고, 우리 부모님들일수도 있고, 내 친구일수도 있으며, 심지어 나 자신일수도 있습니다.

 

주장의 형태는 어떨까요. 유태인을 모두 잡아죽여야한다, 흑인은 모조리 노예로 부려야한다, 여자가 무슨 교육이냐, 동성애따위는 더러운 것이다, 전라도 사람은 전부 뒷통수를 치니 조심해야한다와 같은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주장들도 있겠죠. 실제로 문제가 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런 주장들 뿐일까요. 내가 겪은 유태인, 내가 겪은 흑인, 내가 경험한 동성애자, 내가 경험한 전라도 사람으로 시작되는 짜잘한 에피소드들의 상당수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화자가 있고 그 화자가 말하는 방법이 있으니 우린 대략적으로 형태를 알 수 있죠. 예를들어 제 모친은 평소 '전라도 사람이 뒷통수 잘친다는 이야길 하더라', '여자가 저렇게 나서니 집안이 어지럽다'같은 이야기들을 합니다. 이런 주장을 평소에 강력하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느냐?  천만에요. 대화를 하다가, 무슨 일이 돌아가는 상황을 보다가, 뉴스를 보다가 언듯언듯 이런 이야기들을 합니다. 

 

다수의 편견들은 이런식으로 형성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쉬쉬하며 은근히 돌고, 합리성을 빙자하여 이야기되고, 누적되죠.

 

또다른 예시를 들어볼까요? 제 친구들끼리 모인 자리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무실에 여자들이 있는데, 수다떨고 네이트온 채팅하고 일 안하더라. 다른 친구들도 그에 동의하며 직장에서 수다떨고 일안하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 친구들이 무슨 극단적인 남존여비사상을 가지고 여자친구를 학대하는 쓰레기들일까요?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있는 전 어떨까요? 뭐 절 포함하여 그런 쓰레기가 될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이 친구들은 '사실'을 이야기할 뿐이고,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이야기할 뿐이죠. 이 친구들이 일하는 회사에 '여성'이라는 성을 가진 어떤 직원들이 일하지 않고 농땡이를 피우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얘기할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사회적, 조직적으로 돌면 어떤 이야기들이 완성될까요? 그 모습은 우리가 흔히아는 남존여비;여자는 능력이 떨어진다, 여자는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나 낳아야 한다와 같은 이야기들로 완성됩니다. 멀쩡하게 일하고 잘사는 직장여성들도 도매급으로 취급되죠. 그녀들이 이 부당함을 이야기해봐야 짐짓 합리적인 척하는 대꾸들

 

"왜들그래, 우린 사실을 이야기할 뿐이야, 그건 분명하고 실제적인 문제 아니겠어?"

 

라는 이야기만 돌아올 뿐입니다.

 

이렇게 형성된 편견들을 잘 무너지지 않습니다. 대악당들의 극단적인 차별이나 편견은 법, 제도적으로 고칠 수 있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형성된 이런식의 편견은 쉽사리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강력하게 비난받지 않기때문이죠. 누구나 경험하고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미명아래 이런 편견들이나 분위기들은 공격받지 않거나, 심지어 이런 의견들을 비판하는 이야기; '공격적이다', '지나치다'식의 빈정거림이나 평가를 듣게됩니다. 다양성을 추구하고 더불어 살아야하는 사회에서 공격성과 지나침은 지양되어야 하는 가치이니, 비판은 줄어들고 이런식의 편견들은 더욱 강화되게 됩니다. 역설적이게도, 지나치고 공격적인 비판들이 사라지면서 지나치고 공격적인 편견은 강화됩니다.

 

 

* 몇몇분들이 아래 절비롯한 몇몇분들이 단 리플이 지나치다라고 지적하는데, 전 오히려 거꾸로 묻고싶습니다. 그럼 비판이 어때야하나요? 모든 비판은 공격성을 띄고 있습니다. 그 사안이 무엇이냐에따라, 비판은 날카로운 칼 같을 수도 있고, 부드러운 깃털같을 수도 있지만 말이죠.  

 

 어떤분이 쓰신 글에 단어 몇개를 바꿔서 리플을 달았습니다. 그걸 '패러디'라고 표현하신 분이 계신데, 뭐 패러디일지도 모르죠. 전 패러디라기보단 제가 한국사회에서 살면서 보고 들었던, 그리고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된 익숙한 이야기들을 썼을 뿐입니다. '공교롭게도' 맞아떨어졌을뿐이죠. 전라도 사람의 얍삽함에 피해를 본 이야기는 (경상도사람이 대부분인)제 친척들 사이에서 무척이나 흔한 이야기입니다. 어떤분은 군대 선임이 전라도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많이 맞았다고 합니다. 덕분에 지금도 전라도 사람이라면 이를 북북 갈죠. 전라도민의 인구수가 몇명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분에게 전라도 사람은 그 폭력을 휘두른 군대선임, 단 한명이었을테니까요.  

 

범죄는 사람을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있습니다. 환경적 요소는 물론 중요한 것이고, 범죄의 요인을 분석하는 좋은 도구죠. 하지만 그 앞에 '외국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필요가 있을까요? 해외국적의 범죄자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잡히지 않는 시스템은 개선되어야겠죠. 하지만, '조선족' 아줌마가 술을 마시고 시비를 걸었다는 이야기와 범죄검거 시스템의 개선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함께 할 필요도 없고요. 이는 높은 범죄율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전라도 사람이게 사기당한 이야기, 충청도 사람에게 칼부림당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과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 비판이 엉뚱하게 사용되는 사회는 퇴보합니다. 정당한 지적이나 의미있는 비판에 대한 역비판이나 잘못된 현실에 대한 침묵은 결국 사회를 좀먹으며, 잘못된 관념들이 사람들을 핍박하게 만들죠. 무엇이 정당한 지적인지,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전 오늘 제가 리플을 달았던 글이 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p.s : 제가 피해를 안봐서 이런 이야길 할까요. 몇번 얘기했지만 전 조선족과 동남아시아쪽 외국인 노동자가 거주민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안산시 원곡동에서 약14년간 거주했습니다. 맨날 그 얘기하는데 그게 무슨 벼슬이냐... 이게 무슨 벼슬이라는게 아니에요. '외국인 노동자의 위협'을 보고들었던,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떤 구조인지는 적어도 우범지대이자 외국인이 많은 지역에 살았던 경험을 통해 어느정도는 알고 있다는 이야기죠. 

고3때던가 언젠가......밖에서 일을하고 밤늦게 귀가하시던 엄마가 어느날인가 머리에 피를 철철흘리며 들어오시더군요. 말로만 듣던 퍽치기 였습니다. 안산역에서부터 따라왔다나요. 그렇게 다치시고 몇달인가 몇년뒤 같은 동네에서 교통사고를 당해서 다시 머리를 다치신 적이 있는데, 그때문인지 지금도 날이 흐리면 왼쪽손목이 저리다고 손을 꼭꼭 주무르십니다. 그 모습을 볼때마다 (지금도)범인인지 뭔지 잡으면 법이고 나발이고 죽이고 싶습니다. 그게 중국인이건 한국인이건 파키스탄인이건 뭐건 말입니다. 당시 지역상황을 고려한다면 외국인일수도 있고 인근의 어린 양아치들일수도 있습니다. 

 

엄마가 당한 퍽치기의 범인이 중국인이었다면 제 의견이 바뀔까요. 아니면 제 증오와 혐오의 대상이 바뀔까요. 그 범인이 내국인이었다면 전 한국사람에 대한 이야길 해야할까요. 아뇨. 고쳐야할것이 있다면 우범지대 범죄예방을 제대로 하지 않은 당국과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외국인'이 문제가 되진 않아요. 혹시라도 다른 중국인의 '술주정'을 보다라도 (외국인이 범인일 '가능성이 있는')그 사건이 떠오르지 않고, 떠올라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엄마는 쓰레기같은 놈에게 범죄를 당한 것 뿐입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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