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리어왕 


안소니 홉킨스가 주연을 맡은 '리어왕' 영화 보셨나요? 아마존 프라임에서 볼 수 있는데 연기가 대단합니다. 처음엔 이 안소니 홉킨스가 그 안소니 홉킨스인가 알아보질 못했어요. 제 기억속에서 안소니 홉킨스는 색스럽기까지 한 (상대적으로) 젊은 한니발 박사였는데, '리어왕'에서 안소니 홉킨스는 모든 것을 잃고 자식으로부터 사랑받기만을 원하는 어리석은 늙은 아버지입니다. 늙은 인간이 죽어가는 걸 지켜보는 게 고통스러워서 중간 중간에 영상을 끊어야 했어요. 나이가 드니까 주변 사람을 잃는다는 게 어떻게 고통스러운지 알 것 같습니다. 특히 자식으로부터 버림받는 아픔을요. 총기를 잃어서 자기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주는 과정 역시 이해할 것 같아요.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안소니 홉킨스의 부르짖음은 정말 꼭 들어야해요. 꼭 가이세키 요리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로 준비한 일품처럼 관객의 폐부를 찌릅니다. 나는 이런 인간이 아니었는데. 한 나라의 모든 권력이 나에게 있었는데. 나는 사랑받는 인간이었는데. 나는 한 때 젊은 인간이었는데.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닌 채로 한 발 한 발 운명을 향해서 리어왕은 전진하죠. 


안소니 홉킨스가 너무 늙어서 연기 그만 하려나 싶었고, 또 '웨스트 월드'에서 다소 식상하게 나왔길래 이젠 더 볼 거 없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그게 전혀 아니네요. 드라마 '웨스트 월드'에서 유치하게 보인 건 각본 탓인 듯 하고, 역시 영국 배우 답게 셰익스피어를 연기하니 박진감이 넘치네요. 예전에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지금은 햄릿을 연기하기에 꼭 좋은 나이'라고 했는데, 안소니 홉킨스의 지금은 '리어왕'을 연기하기에 꼭 좋은 나이로군요. 


2. 생산성 


이 게시판에 예전에 글을 썼던 김동조씨가 여성신문에 기고를 하고 계시더군요. 세번째 기고문을 보면 이런 부분이 나옵니다. 


폴 크루그먼 (미국의 경제학자.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은 “한 나라를 가난하게 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한 나라를 부유하게 하는 것은 생산성 향상이 유일하다”고 말했습니다.


요즘 생산성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곰곰히 궁리하고 있습니다. 작게는 Todoist 같은 앱을 쓸까 하는 고민부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울까, 살림을 대거 외주 줄까, 작업을 어떻게 쪼개서 자동화/기계화할까, 이런 생각을 해요. 주변에 생산성 높이는 방법을 물어보기도 하는데, 이런저런 팁을 받아도 제 몸에 익은 문화 때문에 선뜻 태도를 못고치고 있어요. 그 중의 하나가 오래 일하는 습관이예요. 집중해서 잠깐 동안에 일을 끝내는 게 아니라 그냥 일을 붙들고 있는 거죠.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예전에는 3당4락이란 게 있어서 세시간 자면 붙고 네시간 자면 대학에 떨어진다고 했어요. 그로 인해서 책상에 오래 앉아있는 걸 미덕으로 보는 습관이 붙은 거죠. 결과적으로 몸은 지치고 지쳐서 그만 자고 싶다 싶을 무렵에 막판에 일을 처리하고 자요. 일찍 일을 끝내면 죄책감이 들어서 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일이 끊기질 않으니 빨리 일을 끝내야할 인센티브가 없죠. 


이 게시판에서도 여러번 이야기한 것 같은데 박승 한국은행 전 총재가 한국은 input driven society라고, output driven society로 바꿔야한다고 인터뷰하신 적이 있어요. (정확한 쿠오트는 아닙니다만)그러려면 생산성을 높여야하고 노동시간을 줄여야하는데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개인적인 수준에서 노동시간을 줄이려고 해도 이미 습관이 질질 끄는 걸로 들어있기 때문에 어려운데, 조직 전체가 노동시간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려면 얼마나 어렵겠어요. 국가 단위는 더 어려울테구요. 아마 단시간에는 어렵겠죠. 


미국에서는 어디나 알콜 손 소독제를 두고 germ이라면 진저리를 친다는 소리를 여러번 들었는데 그것도 생산성 관리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아요. 한 매니저 말을 들으니 아프면 일터에 오지말고 쉬라는 거예요. 아픈 채로 질질 일하면서 병균 뿌리면 다른 사람들의 생산성까지 낮춘다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손 잘 씻는 것도 생산성을 높이는 길이다 싶어서 신경쓰고 있어요.


3. 백종원씨 


백종원씨가 국정감사장에 나와서 국내 외식업계의 문제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면서요? 이에 대해서 캔자스 대학 김창환 교수가 코멘트를 했더군요. 


김창환 교수가 말한 것 중에 가장 눈길을 끄는 건 1) 자영업을 흡수할 일자리를 어디서 만들지 2) 음식의 맛 뿐만 아니라 식당 운영도 생산성의 요소임 이 두 가지인데...특히 두번째는 백종원씨의 이전 비디오 클립을 보면 이해하기 쉬워요. 유튜브에 '백종원의 장사 이야기'란 게 2013년에 올라와 있는데, 저는 이 비디오 보면서 여러번 감탄했어요. 물류 관리 부분이 특히 그랬답니다. 중앙일보에 서 작성한 '백종원 "자영업 포화..죄송하지만 도태될 분은 돼야"'란 기사를 보니까, 악플이 꽤 달려있더군요. 백종원씨 얼굴 못생겼다고 뭐라 하는 부류의 인신공격성 악플은 무시하면 되는데, 인구당 매장수가 과도하니까 당신부터 프렌차이즈 하지 말라는 댓글은 어이가 없습니다. 요는 생산성이 낮은 식당이 도태될 거라는 거지 efficient frontier는 장사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죠.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뛰어들면 자기 자본이 없어지기 때문에 요식사업에 들어오는 분들 본인들에게 더 나쁜 거잖아요. '골목의 전쟁'을 펴낸 김영준씨도 비슷한 내용을 페이스북에 포스팅했더군요. 


4. 미래의 인간


IMF/World Bank 총회에서 미래생산성 예측을 발표했습니다. 오늘 태어나는 아이들이 '18세까지 얻게 될 인적자본의 총량을 측정한 지수'라고 하네요. 이 지수로 보면 한국이 전 세계 2위, 싱가폴이 전 세계 1위라고 합니다. 아주 고무적인 내용이죠. 3위가 일본, 4위가 홍콩입니다. 학업 성취도, 성인 생존율, 발달 장애비율등을 반영한 결과라고 합니다. 한국 여자아이의 인적 자본지수가 0.85, 남자 아이가 0.81이라고 하네요. 왜 여자아이의 인적 자본지수가 더 높은지 잘 모르겠는데, 아마 학업 성취도와 성인 생존율 때문이 아닐까 하고 추측합니다. 2015년을 기준으로 PISA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보면, 읽기, 수학, 과학 등 전 영역에서 한국에서는 여학생이 남학생의 성적을 뛰어넘었습니다. 특히 기술의 토대가 되는 수학, 과학 성적이 남학생을 뛰어넘은 건 괄목할 만 하네요.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10/11/0200000000AKR20181011050800002.HTML


5. '터무니 없는 스킬로...'


요즘 이세계 물을 읽고 있는데, 일본인이 고생하는 이세계 물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어요. 보통 일본인이 고생하는 이세계 물에는 제도 (institution)가 좋지 않아요. 계약의 개념이 약하고, 신기술을 싫어하고, 미신과 강간, 도둑질이 난무합니다. 일본인이 이세계에 가서 쭉쭉 뻗어나가는 내용이면 보통 계약의 개념이 확실해요. 예를 들어서 '터무니 없는 스킬로 이세계 방랑 밥'을 보면, 펜리르 (이름: 페르)가 사냥을 해올 때마다 마석 같은 비싼 판매물이 나오는데, 길드에서 현금으로 바로바로 결제해주고 바가지 씌우지 않아요. 주인공 무코다가 바가지를 쓴 건 단 한 번인데, 은화 한 냥짜리 지도값을 여섯냥을 줬나 그래요. 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으니 미래의 인간이 고생할 필요가 없어요. 


오늘 태어나는 대한민국의 아이가 30년뒤 한국을 이끌 미래의 인간이라면, 한국은 미래의 인간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을까요? Michael Porter의 Executive summary: competitiveness and stages of economic development를 읽어보면, 한국의 국가 경쟁력 지표가 나와요. technology index는 9위로 높은 편이지만, public institution index가 44로 낮은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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