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동하지맙시다라고라

2020.06.04 12:51

Sonny 조회 수:1164

시위와 폭동이라는 해묵은 논쟁을 보니 제가 인생 최초로 시위에 참여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2016년이었나요. 그 때 근혜팍한테 너무 짜증이 나서 뭣도 모르고 그냥 대뜸 나갔습니다. 그런데 시위를 해본 적이 없어서 뭘 어떻게 해야할지 아예 모르겠는겁니다. 시위 현장에 그냥 혼자 나갔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삼삼오오 있거나 단체에 소속되어있고... 현장에서 막상 소리를 지르려니까 말이 잘 안나오더군요. 인터넷에서는 그렇게 욕을 하고 화딱지가 나서 죽을 것 같았는데 이런 가벼운 마음으로는 감히 구호를 못외치겠다는 마음만 드는 겁니다. 그래도 이왕 나왔으니 머릿수라도 보태고 있자면서 우두커니 서있었어요. 그러니까 어떤 분이 저를 미심쩍은 눈빛으로 보더니 물어보는 겁니다. 죄송한데 어디 분이시냐고. 저는 그냥 시민이에요... 라는 대답만 했습니다. 아마 그 분은 제가 사복경찰이라고 의심하셨던 모양이에요. 그도 그럴 것이 시위현장에서 아무 말도 안하고 서있기만 했으니까요. 뭔가 펑펑 발사되는 소리가 나고 연기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좀 겁에 질려서 집에 돌아왔죠.


그해 촛불집회가 시작되었고 저는 어설펐던 입문자 과정을 다 마친지라 안전하고 평화로운 시위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보니 제가 참여했던 민중총궐기는 꽤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떠난 직후 경찰들이 물대포를 쏘고 시민들을 사진찍어서 나중에 고소를 하고 그랬죠. 촛불집회의 이미지 때문에 좀 흐려진 기억이 있는데, 이 전까지 한국에서 평화시위라든가 아름다운 시위는 거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경찰에서 군중을 자극하고 폭력적으로 대응을 하거든요.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찰이 물대포를 사람을 조준해서 쏜 겁니다. 살수는 기본적으로 하늘을 향해서 해야해요. 그런데 그걸 의도적으로 사람을 향해서 '죽든말든' 하고 쏜 겁니다. 이후 근혜팍과 최순실의 관계가 JTBC에 의해 보도되고 촛불집회가 퍼져나가는 가운데 "평화시위"라는 이미지가 사람들한테 강박적으로 작용했던 거지 그게 어떤 시위의 기준이나 모범은 아닙니다. 촛불집회 당시 경찰들과 지방단체들이 대단히 협조적이었던 것도 무시할 수 없어요. 


촛불집회가 시작되자 경찰의 가이드라인이 일민미술관 사거리에서 경복궁까지 차근차근 쫙 밀렸습니다. 제가 촛불집회 첫 주에 나갔을 때 가장 놀랐던 게, 이 집회가 이제 사거리 넘어서까지 모일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한 3주차였나? 그쯤 되니까 광화문 광장을 집회측이 온전히 사용할 수 있게 되었구요. 이건 시민들이 알아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절대적으로 정부와 경찰 측의 재량이죠. 제가 장담하는데, 만일 경찰측에서 이전과 똑같이 촛불집회에 대응했다면 사람 여러명 죽었을 겁니다. 촛불집회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일련의 통제가 가능했던 시위였던 거지 기본적으로 시위는 아수라장이고 공권력은 절대 시민의 안전을 챙기지 않습니다. 적극적인 가해자로 돌변합니다. 


518 항쟁과 폭력적인 공권력의 기록을 가진 나라에서, 왜 아직도 사람들이 평화시위를 이야기하고 폭동을 걱정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의 많은 시위들이 폴리스라인을 따라서 모였다 행진하고 흩어지는 안전한 모양새를 띄고 있습니다만 시위는 기본적으로 혼란과 소요입니다. 아무런 일없이 평화롭게 돌아가는 세상에 뭔가 시끄러운 소동을 일으키는 겁니다. 그 소동을 일으키는 쪽이 최대한 안전하게 집합과 해산을 해서, 소동에 참가하지 않는 쪽도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분란주최자 - 정부 - 분란미참가시민 들이 최대한 법적으로 타협을 한 결과죠. 엄밀히 따지면 아무리 경찰측에 신고를 하고 집회를 한다해도 그게 일상파괴입니다. 의미를 떼놓고 보면 어떤 무리가 고성방가를 하고 도로를 점거해서 교통방해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조차도 일종의 폭동이라면 폭동입니다. 폭동이란 단어가 폭력적인 움직임을 뜻하는데, 그 폭력을 경찰측에서 너무 심하게 번지지 않도록 통제를 하고 주최측도 이 정도까지만 하겠다고 미약하게 폭력을 저지르는 거죠. 시위가 따로 있고 폭동이 따로 있고, 그렇지 않습니다. 시민혁명의 대표적 사례인 프랑스 혁명은 어떻습니까. 폭력의 정도만 놓고 판단하면 그렇게 완벽한 폭동이 또 없습니다. "폭동", "폭력시위" 이 단어들이 함정같은 단어들입니다. 저것은 시위일까 폭동일까 판가름하면서 아주 쉽게 무관심하게 되거나 시위의 의미를 퇴색시키는거죠.


시위는 기본적으로 현 사회의 법과 다른 시스템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생기는 현상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시위를 이야기할 때 왜 저렇게 난폭하고 시끄럽지 하고 시위의 양상만을 판단하는 것은 너무 한가로운 관망입니다. 시위가 일어나는 사회에는 반드시 그 시위의 원인이 있습니다. 시위를 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어떤 분노가 있습니다. 시위는 쉽고 편한 게 아닙니다. 되게 어렵고 어떤 의지가 단체로 뭉칠만큼의 문제가 발생하는 겁니다. 그 문제를 논하지 않으면서 시위의 과정만을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이를테면 누가 놀림당한다고 했을 때 "그만 놀리세요, 당신은 무례합니다"라고 정색하면서 모든 상황을 해결할 수가 없잖아요. 그 놀림이 심해지면 누구는 욱해서 소리를 지를 것이고 누구는 쌍욕을 할 것입니다. 심하면 어떤 경우에는 신체적 폭력까지 휘두를 거구요. 이때 우리는 질문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대체 어쩌다가 그렇게까지 한거야? 누구한테 무슨 소리를 들은거야?" 일반적인 상식과 체재로는 풀 수가 없는 부조리가 있을 때, 사회적으로 알러지처럼 반응이 일어나는 게 시위입니다. 그 부조리에 대해서 질문을 해야죠.


무저항 상태의 어떤 시민이 경찰에게 목을 짓눌려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건이 흑인 시민에게만, 백인 경찰에 의해 계속 일어납니다. 역사적으로 계속 반복되어왔습니다. 미국의 흑인들은 조지 플로이드 한 명 때문에 그런 게 아닙니다. 저는 미국에 안살고 흑인 인권에 아주 큰 관심은 없는데요. 어쩌다가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훈남배우로 유명한 마이클 B 조던이 주연한 영화이고, 좀 사고뭉치인 흑인 청년의 삶이 어떤지를 보여주는 영화죠.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에 보면 닉 퓨리가 백인 경찰들(사실 하이드라)에게 "면허증 보여줘요?"하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2018년 앨라바마 쇼핑몰에서 어떤 흑인 청년이 백인 경찰의 오해에 의해 총격을 맞아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2020년 6월에는 조지 플로이드라는 시민이 사망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보면서 "또?"라고 반응했습니다. 인종차별을 개념으로만 알지 사건들은 일일이 알 수가 없는 저조차도, 이런 사건이 너무 자주 일어난다고 느낍니다. 찾아보니 blacklivesmatter는 2013년에 시작된 해시태그네요. 이 운동이 시작된 게 벌써 7년입니다. 그 전에는 얼마나 많은 흑인들이 백인 경찰들에게 오해받고 죽었을까요. 아주 오래전부터 인종차별을 꼬집는 풍자가 돌아다녔습니다. "너는 왜 백인 경찰관님 앞에서 공손하게 말을 하지 않았니? 아무리 죄가 없어도 백인 경찰관님에게 불만을 표시한 것 자체가 이미 중죄야!" 이제 웃다 못해 해탈한 지경에 이르른 흑인들의 분노를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종차별의 역사가 몇년입니까. 그리고 그것이 이제는 정교해진 공권력으로 다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떤 시위 영상에서 30대 남성이 울부짖더군요. 이 짓거리를 몇년간이나 하고 있는데, 흑인 누가 죽을 때마다 길에 나와서 난리를 피우고 있는데 도대체 바뀌는 게 없다고. 


누군가의 울분을 제거하고 그저 행동에서만 의미를 찾으려 한다면 저는 그것이 또다른 차별이자 무지에 의한 폭력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그렇게 어려운 문제도 아닙니다. 길가다 뺨을 맞았는데도 웃으면서 당신이 왜 뺨을 쳤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시겠습니까? 라고 반문하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코난의 유튜브에 나온 반 존스 정치평론가가 그러더군요.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흑인들이 들고 일어설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아무리 부당하고 억울해도 흑인들은 그간의 의심과 차별을 다 견디면서 백인경찰에게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고 정말 애를 썼다, 조지 플로이드는 억울한 상황에서도 경찰이 시키는 대로 저항하지 않았고 얌전히 심문에 응했다, 그런데도 죽었다.... 법이 아무리 부당해도 그걸 따르려 애썼는데도 흑인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흑인들의 시위가 얌전하고 평화로울 수 있겠습니까. 저는 미국 전역이 다 불타고 트럼프가 난사당해도 전혀 폭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흑인들이 받아온 차별을 생각하면 오히려 지금의 울분은 한참 모자라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다른 흑인들에게 폐를 끼치고 이 운동이 오해받을까봐 분노를 억누르고 최대한 평화롭게 움직이고 있다고 봐야할 거에요.


지금 별의별 뉴스가 다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일부로 보도블럭을 깨던 사람의 복면을 벗겨보니 백인이든가, 마스크를 쓰고 시위대 뒤에서 가게를 약탈한 걸 잡고 보니 백인이라든가, 시위대 속에 있던 미국 상원의원인 젤노르 마이에 에게 페퍼 스프레이를 뿌리고 수갑을 채웠다든가(당연히 흑인입니다), 경찰이 일부러 벽돌을 쌓아놓고 이 쪽으로 가라, 저 벽돌을 던져라! 하면서 시위대를 유도했다든가 하는 거짓말 같은데 진짜인 뉴스들 말입니다. 자극적인 영상만 보고 시위의 의미나 진행을 섣부르게 판단하기 전에, 아주 많이 공통적으로 올라오는 뉴스들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blacklivesmatter를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그 분노를 제대로 이해조차 못할 겁니다. 

 

https://twitter.com/dontcri/status/1267107579735339010?s=20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3892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2306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0686
124828 오 나의 귀신님을 보다가 [4] catgotmy 2023.11.25 193
124827 이런저런 잡담...(대상화) [1] 여은성 2023.11.25 291
124826 2023 청룡영화상 수상 결과(씨네21 트위터발) [4] 상수 2023.11.25 550
124825 [왓챠바낭] 듣보 호러의 턴이 돌아왔습니다. 지수원 안 나오는 '배니싱 트윈' 잡담 [2] 로이배티 2023.11.25 226
124824 프레임드 #623 [4] Lunagazer 2023.11.24 72
124823 블랙핑크 영국 MBE 수여 상수 2023.11.24 191
124822 김강민 한화 행 [1] daviddain 2023.11.24 159
124821 로이베티님 글 받아서/ 사서 고생 [4] 김전일 2023.11.24 305
124820 발 마사지 후기 [4] catgotmy 2023.11.24 250
124819 김고은과 신승호, 엘리자베스 테일러 catgotmy 2023.11.24 226
124818 [핵바낭] 사서 고생, 인생의 진리 [17] 로이배티 2023.11.24 566
124817 프레임드 #622 [4] Lunagazer 2023.11.23 72
124816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크래시]를 보고 [2] Sonny 2023.11.23 1640
124815 다크나이트 용산 아이맥스 재상영. 상수 2023.11.23 189
124814 넷플릭스 요금제 catgotmy 2023.11.23 238
124813 홀로코스트 관련 영화들 보는 중, 이-팔 갈등 단상 [4] 산호초2010 2023.11.23 246
124812 새해준비(플래너, 일력, 피트니스 짐은 1월 전에 예약하는 게 좋다) 상수 2023.11.23 142
124811 #서울의봄 호 후기 [3] 라인하르트012 2023.11.22 761
124810 [넷플릭스바낭] 아주 건전하고, 아주 아트한(?) 영화네요. '아틀랜틱스' 잡담입니다 [10] 로이배티 2023.11.22 393
124809 프레임드 #621 [4] Lunagazer 2023.11.22 6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