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는 없습니다.


1. 사다코 대 가야코

모르시는 분은 없겠지만 20세기 말 일본 호러 영화판의 투 탑 링과 주온의 히로인들이죠. (토시오 미안;;)
만우절 농담으로 둘이 붙는다는 내용의 떡밥을 날렸다가 호응이 좋아서 걍 만들어 버렸다고 주장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무려 '사다코 대 가야코 제작 위원회'라는 거창한 이름의 제작팀(?)이 만들었습니다.

뭐 듀나님 리뷰가 너무나도 적절해서 사실 제가 덧붙일 얘기가 없다시피 한데.
영화의 2/3는 어설프고 가볍고 재미 없는 링 단편과 주온 단편의 결합입니다. 그러다 한참 뒤에야 이런저런 이유로 둘이 엮이게 되고 제목대로 대결까지 벌이는 거죠.

가장 큰 단점이라면 대결의 판을 깔아주는 역할의 전반부가 정말로 하나도 안 무섭고 재미도 없다는 겁니다. 진짜 그냥 밑밥 깔기 의무 방어전 느낌. 그리고 둘이 엮이기 시작하면 살짝 코믹해지면서 영화가 볼만해지는데... 그게 20분으로 끝나요; 20분 적당히 즐겁자고 한 시간 20분을 희생해야 하는 영화 입니다. 쩝.

게다가 (설마 사다코랑 가야코&토시오가 싸우는 영화가 무서울 거란 기대는 안 하실 테니) 마지막 20분의 코믹함과 흥겨움도 많이 모자라요. 일단 앞부분 이야기가 워낙 싱거워서 두 캐릭터 모두 원본이 아닌 원본의 패러디 같은 느낌이라 무게감도 떨어지구요. 만든 사람들이 마지막에 웃길까 무섭게 할까 고민하다 결국 어중간하게 주저 앉은 느낌. 여러모로 남에게 추천할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나름의 미덕이자 제가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이 있는데. 뭐냐면 영화가 의외로 되게 논리적이라는 겁니다. 네, 논리적이요. 사다코랑 가야코가 머리채 휘어 잡고 배틀을 벌이는 영화인데 논리적입니다. ㅋㅋ 농담이 아니에요. 정말 둘이 붙어야 할 이유가 생기고 그래서 실제로 붙는데 그게 다 납득이 됩니다. 심지어 결말까지두요.

그래서 막판 20분은 계속 "우왕 진짜 바보 같은데 말이 되네 ㅋㅋㅋㅋㅋㅋㅋ" 이러면서 즐겁게 봐 버려서 최종 인상은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이젠 단물 다 빠지고 재활용도 불가능할 왕년의 스타 캐릭터들인데 이런 깜짝 출연 한 번도 괜찮지 뭐... 라는 느낌. 재밌는 영환 아니지만 크게 시간이 아깝진 않았어요. 애초에 기대가 전혀 없기도 했구요.


덤으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둘이 붙는 설정이 일본에선 그리 기발한 게 아니었겠더라구요. 왠지 익숙하단 느낌이 있었는데 괴수 특촬물들에서 예전에 분명 봤던 설정의 재활용이었어요. 그래서 마지막 대결에선 괴수물 느낌도 물씬 났던 것 같고.
덧붙여서 일본 영화답게 여배우들이 쓸 데 없이 예쁘고... 그나마 비중 있는 남자 캐릭터는 딱 한 명인데 이 분이 안도 마사노부. 이 분에게 뭔 일 있었나요(...)



2. 브이아이피

요즘 전 듀나님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는 영화들을 찾아 보며 쏠쏠한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ㅋㅋ 맨데이트, 리얼에 이어 이번엔 작년에 리얼급 평가를 받았으나 너무나도 큰 후광에 가려 잊혀진 영화 브이아이피를 보았죠.

혹시 존재 자체를 까먹어 버린 분들이 계실까봐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종석이 북한에서 귀순한 사이코 살인마, 장동건이 귀순에 책임이 있는 국정원 직원, 박휘순은 이종석 잡으러 온 북한 사람에 김명민이 이종석 잡는 경찰로 나오는 스릴러 영홥니다. '악마를 보았다' 각본을 썼던 양반이 각본 쓰고 감독을 했죠.

일단 이게 여성 혐오 논란이 있었던 영환데 뭐 그건 거의 빼도 박도 못 할 수준입니다. 이쪽 방면으로는 '리얼'도 꽤 탁월하지만 쨉도 안 될 수준. 이름 있는 여자가 한 명도 없고 등장하는 모든 여자가 시체 아니면 살인 미수 대상이라는 게 문자 그대로 사실이니 말 다 했죠.

근데 사실 전 인간이 정의롭지 못해서 영화만 재밌으면 다 용서해 줄 수있는 사람입니다만. 당연히도(?) 이 영화는 용서가 불가능했습니다.

참 희한한 영화이고 희한한 각본입니다. 이런 류의 영화에서 사람들이 당연히 기대하게 되는 범죄자와 주인공들의 두뇌 대결이 존재하지 않아요. 약한 게 아니라 그냥 없습니다. 심지어 두뇌는 둘째 치고 그냥 대결 구도 같은 것도 없어요.
왜 이 모양이냐면, 이종석 캐릭터의 문제 때문입니다.

얘는 영화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걍 머리를 안 써요.
나는 무슨 짓을 해도 남한 정보 기관에서 덮어줄 수 밖에 없는 사람이다! 라는 걸 믿고 범죄는 막 저지르되 그 범죄에 머리는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계속 이렇게 반복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사고 침 -> 싱겁게 잡힘 -> 근데 풀려남 -> 또 사고 침 -> 또 바보 같이 잡힘 -> 또 풀려남 -> 또 사고...

이러니 잡으려는 애들도, 잡히는 애도 머리를 쓸 필요가 없고 각본가도 머리를 쓸 필요가 없고... 뭐 그럴 수밖에요.
이런 류의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 치곤 경찰이나 국정원 직원이 그렇게 무능하게 묘사되지 않는 편인데. 얘들이 유능하게 나와서가 아니라 정말 이종석이 시종일관 단세포적인 사고만 치기 때문입니다. 능력을 발휘할 상황이 없으니 능력을 보여줄 수 없고 그러니 유능한지 무능한지 알 수도 없고.

그럼 도대체 감독은 이렇게 실종된 추리와 논리 대신에 뭘 채워 넣었는가... 하면.
나름 한국과 중국, 미국의 정치 관계를 보여주...려다 말고 80년대 NL 스타일 민족주의 세계관을 펼쳐 줍니다. ㅋㅋ

세상 모든 게 다 미 제국주의자들 때문이고 한국은 그 안에서 허수아비처럼 조종당하며 아무리 부당, 황당한 일을 당해도 찍 소리도 못 하는 나라이며 그 와중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미국을 배척하고 우리 민족끼리 뭉쳐야 한다... 라는 식으로 흘러 가는데 이 영화 속에서 이종석이 치고 다니는 사고들은 아무리 한국이 미국 종속적이라고 해도 영화 속의 이야기처럼 묻고 갈 수 있는 것이 저얼대로 아니거든요. 그런데 태연하게 시치미를 떼고 '그렇다!' 라고 우기고 있으니 보면서 기가 찹니다. 게다가 그렇게 오버해가며 펼쳐가는 이야기가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니 말 다 했죠.


그리고 뭐...

이종석 캐릭터의 사악함을 보여주기 위해 매우 안 좋은 상황에서 해맑게 웃는 씬을 반복해서 집어 넣는데.
볼 때마다 그냥 이 양반 옛날 별명이 생각나서 웃겼습니다. 또치요. 정말 어쩜 사람이 저렇게 또치처럼 웃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계속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참 싫어하는 한국 영화의 클리셰가 여지없이 등장했지요.
돌발적인 상황에서 전력 질주하며 추격전을 벌이는 자동차를 저어~ 멀리에서 숨어 있다가 전속력으로 달려와서 옆으로 들이 받아버리는 거요.
아니 무슨 초능력자도 아니고, 그 거리와 속도와 타이밍은 어떻게 맞추고 또 추격전의 진행 루트는 어떻게 미리 알고. ㅋㅋㅋ
참고로 제가 이걸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바로 '리얼'이었습니다. 2017년의 라이벌일만 했다는 느낌적인 느낌.


3. 사족으로.
듀나님을 고통스럽게 만든 영화 잡담을 적을 게 하나 남았는데,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입니다.

전 이 게시판 소감 글들을 둘러 보고 격하게 당황할 정도로 재미 없게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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