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2018.07.05 11:55

sweetrevenge 조회 수:1624

소액을 몇 곳의 단체에 기부하고 있어요.

딱히 신념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떤 슬픔들은 그냥 외면하기에는 제 스스로 많이 힘이 들어서요.

유엔난민기구도 그 중 하나인데 연초에  우연히  본, 신발도 없이 어딘가로 뛰어가는 아이의 사진이 너무 안쓰럽더군요. 

평소에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도 마음에 퍽 걸려서 후원을 시작했어요.

어쨌든, 후원을 하더라도 전화를 받거나 그런 건 좋아하지 않는데 오늘 유엔난민기구에서 온 전화를 받게 되었어요.

내용은 후원에 감사하다는 것이었지만 속 뜻은 요즘 시끄러운 예멘난민건으로 인한 단속(?) 차원이겠지요.

덤덤하게 전화를 받고, 우편소식지를 이메일로 바꿔달라는 이야기만 하고 끊었어요. 

혹시 싶어 유엔난민기구를 검색해보니, 후원취소라는 자동 검색어가 떴어요. 


며칠 전에는 

제주도로 도망온 예멘난민이 쓴 장문의 글을 보았어요.

그의 글은 온갖 흉흉한 소문이 난무한, 난폭한 무슬림의 것은 아니었어요. 잘 교육받은 이의 수려한 글이었고, 

한 편으로는 안네의 일기 중 한 대목을 읽는 듯한 기분도 들었고요.

결코 자비를 구걸하지 않고 담담한 어조로 선의를 바라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직원의 목소리는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초조했고 간절했어요.

예멘의 한 항공사에서 근무했다는 이의 글은 처연했지만 품위가 있었어요. 

길을 걷다가도 갑자기 그런 대목 몇 군데가 떠오르는 바람에 눈물이 나요. 내가 만약 그런 처지가 된다면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무슨 일이 있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제대로 대답하기는 어려워요.

 비웃음이 돌아올 것 같아서요. 네 어려운 처지나 생각하라는 그런 영리한 충고들 말이죠. 


약소하지만, 후원금을 좀 올려볼까 해요.

물론 이 모든 행동이 신이 이미 실패한 이 세상에서 별 소용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4821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379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1728
124966 메이슨 그린우드의 헤타페 셔츠 판매량이 daviddain 2023.12.10 131
124965 고인돌 음악 [1] 돌도끼 2023.12.10 124
124964 [디즈니플러스] 오랜만이야 닥터!! ‘닥터 후 60주년 스페셜’ [4] 쏘맥 2023.12.10 263
124963 오타니 쇼헤이 LA 다저스 행(연봉 10년 계약 7억달러), 첫 경기는(아마도) 2024년 서울 상수 2023.12.10 201
124962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2023 외국영화 베스트 10(10위권에 들지 못해 아쉬운 영화들 추가) [2] 상수 2023.12.10 528
124961 [왓챠바낭] 변태도 이런 변태가 없군요. '뉴욕 리퍼' 잡담입니다 [2] 로이배티 2023.12.09 399
124960 싱글 인 서울을 보고(스포 있음) [1] 상수 2023.12.09 333
124959 한 장의 사진 같은 일본 아동문학 총천연색 삽화 [11] 김전일 2023.12.09 492
124958 마르틴 베크 시리즈가 완결되었어요. [테러리스트] [7] thoma 2023.12.09 308
124957 이런저런 잡담...(육아, 행복과 불행) 여은성 2023.12.09 304
124956 신들 음악 [2] 돌도끼 2023.12.09 111
124955 전단지 잡담이예요 [1] 돌도끼 2023.12.09 131
124954 축구 ㅡ 산투스 강등 [6] daviddain 2023.12.09 100
124953 프레임드 #638 [2] Lunagazer 2023.12.09 52
124952 Ryan O'Neal 1941 - 2023 R.I.P. [2] 조성용 2023.12.09 192
124951 [넷플릭스바낭] '미스터 로봇'을 좋아하셨다면...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 [8] 로이배티 2023.12.09 468
124950 [일상바낭] 잊지 못할 2023년 12월입니다 [6] 쏘맥 2023.12.08 383
124949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2024년 1월 17일 한국 극장 정식 개봉(본문의 표현수위 높음) [3] 상수 2023.12.08 384
124948 프레임드 #637 [3] Lunagazer 2023.12.08 62
124947 드니 빌뇌브 내한 기념 용아맥 무대인사와 듄 파트 2 프롤로그 상영 후기(파트 2 프롤로그 스포 아주 약간) [2] 상수 2023.12.08 288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