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백 년 만에 로그인해서 천년 만에 글쓰기 버튼을 누르는 것 같네요.

  우리집 고양이는 여전히 잘 지내고, 나날이 그 미모를 경신 및 갱신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꾀와 앙탈도 배가 되니 저는 이 녀석의 이쁨을 견디지 못하고 갈비뼈가 으스러지기 직전까지 안아주고 싶어 안달이 나서 매번 술래잡기 놀이를 합니다. 물론, 비싼 것들이 다 그렇듯 쉽게 잡혀주지 않고, 인심 써서 한 번 잡혀주면 접촉시간 1분 이상을 허용하지 않는 도도함을 시전해 주시죠. 녀석 나이 2개월 조금 넘었을 때 모셔와 올해로 동거 5년 차인데, 고양이 나이로 치면 30살인가요. 애기냥 때 같은 우다다다 시기도 지나고 연느님에 비견할 만한 1.5미터 이상 뛰어오르던 점프도 잘 안 보여주고, 사춘기 소년처럼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모습도 많이 보이지만, 퇴근 후 귀가하면 품에 자꾸 파고드는 걸 보니 애기냥일 때가 제일 좋았어요를 알기는 아는 듯. 지난 여름휴가 때 다니는 동물병원에서 운영하는 고양이 호텔에 며칠 맡겼는데, 간호사랑 의사들이 어련히 돌봐줬겠지만 며칠 새 살이 쑥 빠지고 털에 윤기가 사라진 채 꼬질꼬질, 정서불안을 보이며 집에 내려놓기도 전에 뛰쳐 내려가 온 집구석에 부비부비질을 해대더군요. 돈은 돈 대로 들이고 마음은 마음대로 안 좋았던 터라, 나중에 또 집을 비워야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싶습니다...

 

  고양이는 고양이고, 사람인 나는 작년 늦여름 이후 직장을 그만두고 연말 지나 올 봄까지 쉬다가 지난 6월부터 다시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새로운 회사에 더 높은 직급과 연봉으로요. 이렇게 오래 쉰 적은 처음인데... 사실 쉬는 동안 면접 제의가 은근 숱하게 들어오는 걸 제가 여과해 가며 다녔어요. 집에서 너무 오래 쉬어서 사회적 얼굴이 다 없어지고 윤곽마저 흐릿해져 간다 싶어 화장을 좀 제대로 해줘야 할 것 같을 때, 간만에 칼정장에 힐을 좀 신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한 번씩요. 그리고 나가는 면접마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내 자기소개서를 펄럭이며 너무 감명 깊게 읽었노라고, 이렇게 완벽한 자소서를 쓴 사람이 너무 궁금해서라도 면접을 보자 했다며 광속으로 저를 스캔하던 사장들. 걔중 나랑 나이차이도 별반 나지 않던 그들과 통상 1시간 반에서 2시간에 가까운 심층 면접이 이뤄지고, 그들은 나에게서 궁금한 것은 터럭 하나까지 다 물어보고야 직성이 풀린다는 듯 굴었다가 이내는 자신들의 살아온 인생을 읊어대고 자기 직원들 흉을 보는 것으로 시간을 끌더군요. 처음 한두 번은 내가 어린 나이도 아니고 연륜도 있어 보이니 그런가 싶다가, 나중엔 그런 얘기는 어디 상담소 가서 하든지 나한테 돈을 내고 하든가 라는 생각에 짜증이 나서, 두서없는 오너들의 얘기를 중단시킨 내 멘트는 한 마디였습니다. 그래서, 제 연봉 얼마로 생각하세요?

 

  그 말 한마디면 신세한탄도 뒷담화도 다 쑥 들어가고, 급정색이 되어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는 상황을 수십 번 겪으니, 흐이구 이게 뭔가 싶었고요. 대개의 사장이란 사람들이 얼마나 셈이 빠르고 영악한지, 직장생활 동안 내 주업은 주업대로 하면서 웬만한 사무직의 업무 중 안 해본 일이 없이 잔뼈가 굵은 제 경력에 대한 호감이 노골적인 회사일수록, 이 회사는 아니라고 나는 마음속에 가위표를 치게 되더라구요. 나이가 (이제는 회사를 하나 차려도 되는ㅜ)나이인 만큼 여타의 중소기업에서 탐낼만한 팀장격의 경력인 것도 사실이지만, 여러 사람 인건비 다 갈아치우고  나 하나로 대체하고 싶은 그 속내를 볼 때마다 노노노노 도리질. 그러다가 고르고 골라 들어온 회사는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내가 볼 때, 그냥 적합한 곳. 하지만 좋은 곳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가장 큰 장점이라면 집에서 전철로 4정거장이면 되는 출퇴근거리. 이를테면 현관의 시계가 오전 835분을 가리키는 걸 보고 나서면 사무실의 시계는 856분임을  보는 것. 여기서 또 얼마나 어떻게 지내며 버틸지 모르겠지만, 예전 직장을 그만두면서 마음의 병을 얻어가면서까지 회사를 다니지는 말자는 생각이었는데 ... 어느새 나는 정도 이상의 파이팅을 올리면서, 회사 걱정 매출 걱정을 하고 있네요..., 최상급의 노예가 여기 있습니다.

 

  운동이야 인생 끝까지 가져갈 생활인 거고, 어느 시점부터 그냥 운동보다는 뭔가 좀 더 고급(?)스럽고 꾸준한 취미 하나를 더 갖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재작년부터 발레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요즘 그 흔한 성인취미발레. 어렸을 적에 '쫌' 하다 피치 못하게 중단한 이후 이게 몇십 년 만인지, 그때 이후 관객으로만 살면서 무슨 애증인지 전공생 수준의 정통 발레가 아니면 성인취미발레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건방을 떨던 내가요. 몇 년 전부터 급속히 불기 시작한 성인발레 열풍을 냉소적으로 지켜보며 몸도 다 굳은 어른들이 무슨 발레야 라고 코웃음 치던 내가요. 우연히 무료로 하는 오픈 클래스에 나가 다 늙어서 다시 BAR를 잡게 될 줄은 몰랐고, 음악이 흘러나오는 순간 울 뻔했어요. 나에게 발레는 정말 너무 아름답고 이렇게 좋은 거였는데 너무 오래 등 돌리고 애써 잊고 살았구나 싶어서 후회했죠. 이럴 거였으면 한 살이라도 더 어렸을 때 시작할 걸.

 

  어쨌든 학생 신분에 비해 경제적으로 더 여유로운 성인 취미발레생을 상대로 하는 발레 관련 사업은 불황이 없고, 수행 기간 상관없이 콩쿨이나 그 밖의 각종 뽐뿌가 많다지만 스스로 만족할 만한 수준이 되기 전까지는 섣불리 나갈 생각이 없고, 몸 안 다치면서 조용히 이 취미생활을 오래 영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발레 시작한 이후로 그렇게 좋아하던 옷, 가방, 구두 쇼핑이 자동 중단되어 이제 정신 좀 차리나 했는데... 온갖 브랜드, 온갖 디자인의 레오타드와 스커트, 연습용 튜튜, 토슈즈, 타이즈, 워머, 의상 등등을 구입하느라 장비병 말기 수준인 건 함정.

 

  나라는 인간이 워낙 부지런하지 못하여, 듀게 말고는 온라인 이곳저곳에 다양하게 적을 두고 글을 쓰거나 사람들을 만나 소통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그나마 듀게도 개인적인 생업과 컨디션과 여러 가지 정황들로 인하여 구독조차 하지 않게 된 지 벌써 오래됐네요. 다만, 듀게에서 그동안 내가 어떻게 글을 쓰고 어떤 댓글을 달았건, 온라인상의 내 이미지를 구축하거나 그것을 의식하고 글을 쓴 적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 정체성과 실체에 대한 가상의 이미지 정립 따위는 내 글쓰기의 목표나 목적이었던 적이 없었고, 설사 타의적으로 형성되거나 해석된 그 무엇이 있었다 해도 그것은 내 영역 밖이라는 것을 이제 와 말하게 되네요. 어쨌든 뭐, 그렇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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