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편집자와 만났어요. 최근에 동남아 쪽 웹툰시장을 뚫기 위해 출장을 다녀왔다는 그가 그쪽의 분위기를 말해줬어요.


 '그쪽 사람들과 얘기해봤는데 그러더군요. 한국 웹툰...뭐 '보려면 볼 수는 있다'라고요. 그러나 한국 웹툰을 보라고 누군가 던져준다면? '이걸 굳이 왜 봐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이죠.


 나는 편집자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어요. 왜냐면 당연한 거잖아요? 이미 이 세상엔 원피스, 나루토, 헌터헌터 같은 만화들이 존재하고 있어요. 작화력, 스토리, 기획력...이 모든 점에서 우위를 점하는 만화. 해당 장르에서 극도로 발전되고 극도로 첨예한 경쟁 안에서 만들어지는 만화 상품들 말이죠. 나라고 해도 한국 웹툰은 안 봐요. '얼마나 못 만들었는지 보기 위해'가끔 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론 안 보죠. 왜냐면 같은 카테고리 내에서 더 뛰어난 문화 상품이 존재하니까요. 


 그리고 그 차이는 다른 국가간의 전쟁도 아닌, 마치 외계인과 지구인이 싸우는 것과도 같은거예요. 그 정도의 기술 격차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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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가끔 사람들에게 말하곤 해요. 옷이나 신발 같은 걸 팔 때는 B급도 C급도, A급이 존재하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라고요. 왜냐면 이 세상엔 A급이라는 이유로 수백만원에 파는 옷가지들이 있으니까요. 그러니 가격을 낮춘 옷을 팔거나, 디자인을 도용한 옷을 팔거나, 아주 튼튼한 옷을 팔거나, 한 시즌 입고 가볍게 버릴 옷을 팔거나...하는 식으로 생존을 모색할 수 있죠. 


 그러나 만화나 영화는 아니거든요. 기본적으로 그것들의 가격은 거의 비슷하니까요. 에르메스급 영화라고 해서 수백만원을 내고 보는 것도 아니고 동대문 보세급 영화라고 해서 천원을 내고 보는 것도 아니죠. 게다가 더 문제는, 식당이나 옷가지 같은 건 목적이 다를 수 있지만 영화나 만화 같은 문화 상품은 기본적으로 목적이 같단 말이예요. A급 영화를 보든, B급 영화를 보든, C급 영화를 보든...기대감이 좀 다를 수는 있지만 얻으려 하는 건 기본적으로 같아요.



 2.이게 내 생각일 뿐일지는 모르겠지만 박찬욱이나 또는 김지운 같은 사람들은 꽤나 행운아죠. 어떤 점에서냐면, 그들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점에서요. 생각해 보세요. 그들이 최고 수준의 경쟁을 치르는 시장에서 데뷔했다면 지금과 같은 A급 행세를 할 수 있었을까요? 뭐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생각은 아니올시다예요. 그들이 최고 수준의 시장에서 감독에 도전했다면 지금과 같은 감독 놀음은 불가능해요. 그들 정도의 수준의 감독에게 그 정도로 예산을 쉽게 따게 해주고 그 정도로 촬영에 제작자가 간섭 안하고 그 정도로 편집권을 인정해 줄 수는 없는거예요. 한국 같은 레벨이 낮은 곳이 아니라면 말이죠.


 특히 김지운은 꽤나 놀라워요. 그는 마치 대학교의 학부생처럼 아직도 본인이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잖아요. '이번 학기 과제작품으로 이런 걸 찍어보고 다음 학기 과제작품으론 저런 걸 찍어봐야지. 난 아직 학생이니까.'라고 룰루랄라하는 영화학도처럼, 레퍼런스로 삼기에 좋은 영화들이 이미 즐비한 장르에 매번 도전하며 어디선가 본 듯한 영화를 찍는 나날을 보내고 있죠. 놀랍게도, 그러라고 돈을 주는 투자자들도 있고요. 누군가가 내게 '박찬욱은 어떤 감독이지?'라고 묻는다면 '그 자는 자신이 좀 특별한 변태로 보여지길 바라는 평범한 감독이지. 가엾게도 말이야.'라고 대답할 수 있어요. 하지만 누군가가 내게 '김지운은 어떤 감독이지?'라고 묻는다면 대답할 말이 없어요. 그 자가 습작 기간을 끝내면 뭘 잘 찍게 될지, 본인이 뭘 찍고 싶어하게 될지 모르겠으니까요. 


 하하하, 이쯤되면 누군가는 이러겠죠. '넌 얼마나 잘났길래 한국의 거장들을 그렇게 조롱하는 거냐?'라고요. 그래요...뭐 나에 대해서도 써 보죠.



 3.몇번 쓴 것 같지만 만화나 소설 연재에 별 미련이 없어요. 왜냐면 가끔 화가 나거든요. 생각해 보면 여러분도 잘 알거예요. 우리나라에서 만화를 그리며 먹고 사는 사람들이 일본에 있었다면 그들 중 몇명이나 굶어죽지 않을까...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요. 글쎄요. 19금만화가 아닌 만화들 중에서 고른다면 5명? 많이 꼽으면 5명쯤 되겠네요. 우리나라에서 만화를 그리는 대부분의 작가는 이곳이 한국이기 때문에 만화를 그리며 살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가끔 그들을 볼 때마다 이상해요. 나라면 그 정도 실력으로 만화를 그리며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에 매일 감사할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들은 꽤나 불만투성이란 말이죠.


 그래요...종종 내가 화가 나는 이유는 그거예요. 실력으로 만화를 그려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연민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거죠. 가엾은 한국 만화가들에 대한 독자들과, 포털의 연민 말이죠. 말 그대로 이건 국가적 규모로 이루어지는 인큐베이터 시스템이잖아요? 한국 만화계가 다른 나라에 비해 뒤떨어져 있으니, 생계비를 지급하며 먹여살리는 모양새인 거죠.


 물론 나도 그래요. 당연히...일본이나 미국에 가면 만화가 따윈 무리죠. 내가 만화가 행세를 얼마간이라도 할 수 있는 이유는 딱 하나거든요. 이곳이 한국...가장 문화 상품 레벨이 낮은 시장이라는 이유인 거죠. 



 4.휴.



 5.가끔 만화가 지망생을 만나면 이런 얘기를 해요. 구조에 대해서 말이죠.


 '이봐, 만화 연재는 빨리 잡는 편이 좋다고. 왜냐면 생각해봐. 한국은 좆같아. 웹툰 작가와 비슷한 돈을 받는 한국의 일자리들은 꽤나 좆같다고. 누구나...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싶어한단 말이지. 그렇기 때문에 작가 시장은 경쟁률이 쩐단 말야. 1년 지나면 한국의 미대, 디자인과, 문창과, 영화과, 그외 온갖 분야에서 웹툰에 도전하려는 대학 졸업생들이 수백 수천명 쏟아지지. 그리고 또 1년 지나면 비슷한 대학 졸업생들이 또다시 수천명 쏟아져. 이게 매년 반복되고 있는데 우리 나라의 웹툰 연재처는 한정되어 있단 말야. 한정된 연재 자리에 경쟁자는 매년 수천명씩 늘어나고 있다고. 그러니까...1초라도 빨리 무언가를 메이드시키는 게 좋을걸. 너의 경쟁자 수천 명이 또다시 쏟아져나오기 전에 말이야.'


 이렇게 말하면 마치 우리나라에서 만화가가 되는 게 어려울 것 같겠죠. 하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아요. 세계에서 통하는 만화 수준에 얼마간 근접한 수준만 되면, 한국에선 쉽게 연재를 딸 수 있죠. 다른 나라에서는 편집자에게 쿠사리나 먹을 원고를 들고 가도 연재를 딸 수 있단 말이예요. 경쟁자가 아무리 많아봐야 거의 무의미한 수준...경쟁을 논할 수 없는 놈들이 대부분이죠.



 6.전에 썼듯이 나는 한국 웹툰 작가들은 싫어해요. 뭐...거의 다 말이죠. 왜냐면 위에 썼듯이 우리 나라는 작가 되기에 참 좋은 나라거든요. 문화 시장의 레벨은 매우 낮은데 나름 자본은 있는 나라고, 이 나라의 독자들은 연민과 인내심을 가지고 작가 지망생이 한 명의 오롯한 작가가 되길 기다려 줘요.


 뭐 그건 이해해요. 위에 썼듯이 뛰어난 문화 상품은 한 명의 천재에 의해 뚝딱 나오는 건 아니니까요. 소설같은 게 아닌, 영화나 만화처럼 '기획력'이 매우 중요한 분야라면 더욱 그래요. 열악한 환경과 시스템을 개선해나갈 투자가 우선되어야 발전할 수 있죠. 


 그러니까 위에 내가 말한 '국가 규모의 인큐베이트 시스템'이 돌아가는 거고요. 매우 레벨 낮은 만화를 포털 메인에 매주 올리면서 돈을 받고, 착한 독자들은 선플을 달거나 심지어 돈까지 써가며 작가를 응원하죠. 그게 벌써 몇 년이나 계속되고 있어요.


 한데 말이죠, 월 200만원 가량의 돈은 장난이 아니예요. 거의 50%에 달하는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이 200만원 이하의 월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어요. 그런데 숙련되지도 않은 노동자에게 월 200만원 가량의 장려금을 지급한다...? 이건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관대함이죠.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 안에서, 대체 어디 가서 이 정도의 관대함을 볼 수 있겠어요? 



 7.뭐...나의 주 수입원은 창작 활동은 아니예요. 한데 내가 위에 쓴 '그런 작가들'의 입장이라면, 절대 나대지 않을거예요. 왜냐면 마음에 늘 미안함이 가득할 거니까요. 나와 비슷한 월급을 받는 '진짜 노동자'들에 대한 미안함...나를 '작가님'이라고 불러주는 독자들에 대한 미안함...돈이 되지 않는 컨텐츠를 만들어서 제출하면 돈을 주는 포털(또는 사이트)에 대한 미안함 말이죠. 미안한 마음에 하루라도 빨리 그 돈에 부끄럽지 않을 작가가 되기 위해 존나게 노력하겠죠.


 한데 사람이란 게 그렇지가 않잖아요? 그냥 대충 미니멈 개런티를 챙기며 갈수록 원고의 퀄리티는 낮아지고, 권리만 주장하며 sns에서 나대는 놈들이 매우 많죠. 인간이란 생물은 뭐...간사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가도 가끔 보면 어이가 없어요.


 하하, 그야 나도 뭐 '주 수입원이 창작 활동은 아니다...'같은 말로 넘어갈 수는 없겠지만요. 돈을 받는 이상 그 돈만큼은 재밌는 만화를 만들고 싶죠. 그건 내가 판단하는 건 아니고 독자가 판단하는 거니 어떨련지. 한데 목격자 같은 영화가 2백만명 넘는 관객을 동원하는 나라니까, 조금은 당당해져도 되죠? 그냥 한국 소비자분들은 너무 착한 게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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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보니 한국이 베트남을 이겼네요. 다행이예요. 왜냐면 한국이 결승전에 갈 거라고 예상하고 축구보며 파티하려고 토요일에 꽤 비싼 곳-일반인과 놀기엔-을 잡아놨거든요. 그렇게 잡아놓은 곳에서 3-4위전따위나 보고 앉아 있으면 김빠지니까요. 그런데 와서 같이 놀 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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