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의 손 로댕展

전시일자 : 2010 04.30 ~ 2010.08.22

장소 : 서울 시립미술관 2층 3층 

 

로댕전은 2008년 부르델전에 이어서 2년만에 시립미술관에서 기획된 대형 조각 회고전입니다. 미술의 美자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더불어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지만 너무나 당연해서 고루하게 느껴지는 이 작품이 의외로 일반인들에게는 '지옥문'의   팀파늄 부분을 장식하기 위한 70cm 조각품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적습니다. 로댕의 삶 또한 까미유와의 연인관계에만 집중되어 있을 뿐 이 둘의 사랑이 로뎅의 작품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 적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의 명성이 가지는 완벽함에 가리워져 아이러니하게도 로댕의 작품이 가지는 진취성과 혁신성을 깨닫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르기도 합니다. 본 회고전은 이러한 로댕의 작품세계를 세심하면서도 풍성하게 되짚어 보는 전시회입니다.

 

본 전시회는 조각 113점과 드로잉 42점, 사진 25점으로 총 180여점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인 회고전이 50-70점 내외이고 클림트전이 기껏해야 30여점만의 유화만이 소개된 것을 감안한다면 본 전시회의 양적 풍성함은 샤갈전 이후에 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브루델전이 70여점에 유명 작품이 '베토벤'과 '활을 쏘는 헤라클래스' 정도로 국한된 것에 반해 본 로댕전은 질적인 측면에서 '청동시대', '지옥문', '키스', '깔레의 시민' 등의 대표작과 최초로 해외공개되는 '신의 손' 등이 망라되어 로댕의 주요작품을 부족함이 없이 관람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풍성한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구분된 주제별 세션 또한 무려 9개로 2층에서는 제 1부 <청동시대>,  제 2부 <지옥문 >,  제3부 <깔레의 시민>,  제4부 <사랑으로 빚은 조각> 이 전시되어 있고 3층에서는 제5부 <로댕 작업실 엿보기>, 제6부<까미유 끌로델>, 제7부<춤, 생동하는 인체>, 제8부<1900년 로댕, 알마관 개인전>,  제9부<공공기념상 - 발자크와 빅토르 위고>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2층의 전시회 입구에 들어서면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의 서두처럼 본 전시회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안겨주는 작품 중 하나인 '신의 손' 이 프롤로그로 가장 먼저 소개되어 있습니다. 본 전시회의 부제인 '신의 손'과 동일한 이 작품은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대리석 위에 매끈하게 드러난 거대한 손이 또하나의 불완전한 결정체를 쥐고 있는데 마치 자궁처럼 한명의 여성이 그 결정체에 웅크린 채 붙어 있습니다. 매끈함과 투박함이 위태로운 조화를 이룬 이 작품은 브루델의 지난 전시회가 다소 부조의 느낌이 나는 정면을 응시했을 때 가장 빼어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면 본 작품은 360도 다른 각도에서 보더라도 다른 감흥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기묘한 매력을 주는 작품입니다. 이런 로댕의 비현실적인 조각작품 하나만으로도 로댕이 장인이라는 조각가의 틀을 넘어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한 유별한 예술가의 경지에 올라와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신의 손'의 여흥이 사라지지기도 전에 본 전시회에서 가장 완벽한 조형미를 드러내는 '청동시대'가 그 아름다운 신체의 위용을 드러냅니다. 실제 사람모델에서 주물을 뜬 것이 아닌가 하는 헤프닝을 불러 일으켰다는 로댕의 초기작품은 사실주의 화풍의 그림보다 더 사실적으로 사람의 신체와 근육이 가지는 양감을 가감없이 재현하고 있는데 청동이 가지는 독특한 질감과 맞물려서 시간을 정지한 듯한 영구한 신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 주변에는 이 작품의 다른 버전들이 사진으로 소개되어 있어 이 작품의 사료적 가치를 더욱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옆에는 '세례자 요한' 같은 신체의 완결성을 표현한 작품들이 제 1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기역자의 구획을 지나게 되면 본 전시회의 메인테마라고 할 수 있는 '지옥문'의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유일한 아쉬움으로 남아 있는 것은 '지옥의 문'의 완성본 판본이  소개되지 않았던 점인데 국내에 7번째 에디션으로 소장하고 있는 로댕 갤러리의 작품이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 이동의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한 번쯤 전시를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진으로 지옥문의 전체 모습과 이를 장식하는 조각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본 전시회에서는 20여개의 조각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본 전시회의 하일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생각하는 사람'은 국내에 소개된 작품 중 가장 큰 모형으로 185*107*150 의 크기로 채색 석고 기념상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작은 작품이나 사진으로 보는 '생각하는 사람'이 내적 고뇌의 딜레마를 표현한 듯한 느낌을 가졌다면 거대하게 확장된 이 작품을 보다보면 '시인'이라는 원제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긋하게 응시하는 듯한 두 눈동자가 인간과 외부 세계에 대한 성찰을 표현하는 의미로 더 가깝게 다가옵니다. 균일하지 못한 채색의 흔적은 본 작품의 근육이 가지는 역동성을 더욱 강하게 강조하여 정적일거라 여겼던 이 작품을 역동적인 감흥으로 받아 들이게 합니다. 더군다나 이 작품의 전시 위치 또한 매우 절묘하여 3부와 4부와 일직선으로 오픈된 중앙자리 구석에 위치하여 제 4부에서 모든 조각작품들을 조망할 때 가운데에 의치하여 구도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이런 작품들의 세심한 배치는 기존 대형 회고전에서도 간과하기 쉬운 것으로 본 전시회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에 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다른 지옥문의 조각들이 다양한 크기와 버전별로 존재하며 본 전시회에서 가장 묵직한 감흥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제 3부 <깔레의 시민> 또한 로댕갤러리에서 일찍이 소개되고 있는 작품으로  본 전시회에서는  메인작품인 깔레의 시민을 가운데에 놓고 주변을 둘러쌓듯이 이를 위한 습작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 테마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봐야 할 부분은 사람의 표정이며 영웅으로 묘사해야 할 여섯명의 사람들을 마치 지옥문의 인간처럼 절망과 체념, 그리고 두려움으로 가득한 표정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모여 있으나 각기 다른 곳을 바라보는 시선은 독립된 개체로의 강조와 더불어 깨어진 통일성 사이로 본원적 고독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본 메인 작품 주위에 있는 누드 및 두상, 손과 같은 작품들은 본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로댕의 다양한 컨셉을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완성을 향한 습작이 아닌 그 자체만으로도 미묘한 감정동요를 일으키는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제 4부 <사랑으로 빚은 조각> 본 전시회의 에로스적인 테마를 담당하고 있는데 본 전시회의 소개와 달리 퇴폐적이이나 음란함의 가벼움 보다 조금은 침잔된 고뇌와 족쇄처럼 얽혀 있는 자세에서 사랑이라는 속박이 가지는 무게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본 테마의 메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키스'는 원전의 의미가 가지는 비극성과 관계없이 매우 애틋하고 자연스러운 연인으로 사랑스러움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가지는 유연함은 다른 로뎅의 작품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까미유 끌로델이 이 작품의 기안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가 쉽게 떠오를 수 있게 합니다. 상대적으로 빠른 크로키 작품들은 에로스라는 테마를 위한 구색을 맞추기 위해 전시한 느낌으로 자잘한 장식적 소품이라는 기능외에 본 전시회에서 특별한 감흥을 불러 일으키지 않습니다.

 

2층의 풍성한 작품들로 인해 3층은 소소한 소품들이 단촐하게 소개될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다섯번째 테마를 담당하는 <로댕 작업실 엿보기>는 가장 많은 작품들이 선보여지는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원형의 탁자 위에 악마의 손이 전시되어 있고 이를 둘러 쌓듯 로댕의 소품들이 전시된 파트입니다. 이외에도 반복, 해체, 아상블라주라고 명명된 부제처럼 본 작품들은 기묘한 결합처럼 느껴지는 아상블라주라고 명명된 기법을 적용한 작품들과 강조되는 특성을 위해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자위적으로 떼어낸 토로소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런 과단성과 추상성을 드러낸 작품들을 통해 로댕이 단순한 근대 조각미술가가 아닌 20세기 현대미술의 단초를 제공하게 된 선구자의 위치 또한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고 있습니다. 본 테마의 메인 작품인 '악마의 손'은 프롤로그인 '신의 손'의 흥미로운 카운트 파트이지만 다소 작은 크기와 주변에 다른 작품들로 방해되어 온전히 이 작품을 즐기기에는 약간의 제약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섯번째 테마 까미유 클로델은 잠시 쉬어가는 테마로 로댕과 까미유의 연인관계를 설명하면서 로댕과 까미유의 두상 및 까미유의 작품을 간명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중후반기의 로댕의 작품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진 동반자로서의 까미유의 모습이 그렇게 조망되지 못한 아쉬움은 남아 있습니다. 본 전시회에서는 로댕의 작품세계에 대해서 표준적인 해석을 뒤따르고 있는데 그로 인해 의외성이 가지는 즐거움을 가지기에는 다소간의 부족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회복' 이라는 작품이 가지는 아스라한 아름다움은 본 전시작품들이 가지는 명쾌함에서 한 발 벗어난 것으로 애틋한 감흥으로 다가오는 본 전시회의 의외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댕의 작품세계는 어느덧 막바지에 다다릅니다. 까미유 클로델 전시가 끝나면 다시 복도를 통해서 다른 전시회장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여기서는 로댕의 마지막 전시테마인 제7부<춤, 생동하는 인체>, 제8부<1900년 로댕, 알마관 개인전>,  제9부<공공기념상 - 발자크와 빅토르 위고>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 7부 테마인 춤을 소재로 인체의 역동성을 확인하는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다른 작품들에 비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데 본 작품들이 가지는 자유로움이 다른 작품들이 가지는 고뇌와 속박이 가지는 무게감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해체와 결합의 의미가 상대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제 7부의 의아함을 뒤로 하고 제 8부는 본 전시회의 세심한 기획을 확인할 수 있는 독특한 테마인  <1900년 로댕, 알마관 개인전>이 이어집니다. 로댕 최초의 개인전의 일부분을 재현해 낸 이 테마는 20세기 초반의 미술관인 듯 창 인테리어로 구성된 방안에 로댕의 작품들이 오밀조밀하게 배치되어 마치 '살아있는 미술관' 테마 파크에 온 듯한 착각 마저 불러 일으킵니다. 작품 배치에 대해서 로댕의 작품배치에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소개처럼 악보의 음표처럼 작품들을 높낮이에 변화를 주며 전시를 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서도 '우골리노'가 가지는 비극성과 거대한 기둥위에 배치되어 숭고함을 표현하는 '걷는 사람'의 대비가 흥미롭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마지막 전시 테마는 발자크와 빅토르 위고의 기념상으로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편인 3층의 전시회장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듯 큼지막한 '빅토르 위고'의 기념상이 놓여 있고  발자크의 습작들이 본 전시회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본 작품들의 예술적 가치와 별도로 기념상이 가지는 상징성이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제작당시 많은 비판을 받았다고 하던데 이를 통해 로댕이 고집스런 예술적 시선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발자크 기념상의 경우 습작들만이 전시되어 다소간의 아쉬움을 주지만서도  클로징을 담당하는  '빅토르 위고 기념상'의 거대한 위용은 본 전시회의 포만감의 마지막 한 숟갈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전반적인 공연관람 시간을 1시간 40분을 예정했음에도 시간이 빠듯하여 주요작품을 재관람하지 못하고 미술관을 나와야만 했던 아쉬움이 있었는데 대체적으로 2시간 이상을 공연관람시간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로댕의 경우 로댕갤러리에서 상시 전시를 하고 있으며 다른 로댕의 작품들도 내한 전시를 통해서 여러번 소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본 전시회는 그 충실함으로 인해 로댕의 작품세계를 빠듯하게 정립하여 인식하는 것에 대해서 상당한 만족을 주고 있습니다.  아니 최근 십년 간의 회고전 중에 가장 만족스러운 회고전 중 하나로 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멋진 전시회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난해하지도 고루하지도 않은 전시구성이기에 초심자에부터 일반 미술 애호가까지 만족스러울 거라고 여겨집니다. 작품이 많다 보니 다소 오디오가이드나 도슨트의 설명이 개괄적으로 넘어가는 듯한 느낌이 있고 대도록이 너무 비싸고 소도록은 부실하다는 흠도 있지만 컨셉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작품배치적인 측면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고려한 흔적이 있어서 매우 기꺼운 관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평일 오후에는 아직 사람이 많지 않아서 여유로운 관람이 가능하니 가능하면 주말보다 평일 오후에 관람하는 것을 권해 드리고 이제 곧 방학이므로 그들이 몰려오기 전에 서둘러 관람을 하는 것이 보다 더 쾌적한 관람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름값에 어울리는 전시회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명제지만 이것을 충족한 회고전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신의 손 로댕전은 그러기에 꼭 다녀오라고 권하고 싶은 전시회입니다.

 

PS : 이 전시회의 감흥을 기억하는데 가장 큰 제약 사항은 두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월드컵으로 인해 해롱해롱한 정신과 전시회 관람객 중에 미인이 너무 많다는 사실입니다. 작품을 보기 위해 빙글빙글 돌고 있는데 미인이 앞에서 작품을 보고 있으면 어찌 온전히 작품에만 관심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PS2: 글제목이 <지옥에 가더라도 키스를 하고 싶은 사랑이 있나요?>인 이유는 본 전시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테마가 지옥문이고 키스라는 작품이 파울로와 프란체스카의 비극적 사랑을 담고 있기에 로댕과 까미유의 사랑이 연상되어 제목으로 삼은 것 뿐이에요. 별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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