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기독교인들에게는 영화(*주: <밀양>입니다)에 나오는 기독교인들의 행태가 그저 이상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눈에 안 보이는 신이 있다고 믿고, 그 신에게 기도하며, 심지어 신의 음성을 들었다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이상한 일입니다. 사실 귀에서 초현실적인 소리가 자꾸 들리기 시작하면 바로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 합니다. 정신분열의 초기증세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기독교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이 전혀 이상한 표현이 아닙니다. 저도 가끔 그런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확실히 정상이 아닙니다. 과학, 근대, 합리성의 눈으로 볼 때 종교는 정상일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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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의 눈으로 종교를 바라보면 언제나 이상하고 비정상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종교인들 스스로도 그 사실을 망각할 때가 많습니다. 자신은 언제나 정상이고 주류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다른 사람을 억압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일부 기독교인의 행태가 그런 망각의 좋은 예입니다. 시청 앞에서 기독교 현수막을 걸어놓고 여러 집회를 여는 사람들 중에 특히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하는 소수종파 기독교인들에게 마음 놓고 돌을 던지는 기독교인들도 비슷한 부류입니다. 처음 출발 당시 소수자였고 늘 오해 속에서 박해받았으며 그래서 약자에 대한 이해를 넓혀갔던 초기 기독교와는 너무 멀어진 행태입니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자신이 얼마나 이상한지 깨닫고 나면, 기독교인들은 다른 소수자들을 훨씬 더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여러 기본권 중에서 종교의 자유가 특별히 더 중요한 이유도 바로 이 '비정상성'에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는 외형적으로 가장 이상해 보이는 사람들의 자유를 보장한 것입니다. 보면 볼수록 이상한 사람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기로 한 것이 근대헌법의 가장 위대한 결단입니다. 물론 이런 결단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는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유럽의 '똘레랑스'(tolerance)라는 것도 유럽인의 타고난 특성이라기보다는, 16~17세기에 종교를 이유로 하도 많이 죽이다보니 더 죽이다가는 사람 씨가 마르겠다 싶어서 어쩔 수 없이 서로를 관용하기에 이른 것뿐입니다. 그 정신이 반영된 것이 바로 프랑스와 미국의 헌법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국가와 교회 사이의 갈등과 충돌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법들이 연구되었습니다. 서로 죽이지 않고도 가치의 충돌을 해결하는 길을 찾아온 것이지요.

 

 

 

-김두식, <불편해도 괜찮아> 중 '1년에 600명의 청년들이 교도소에 가는 나라'에서 발췌. pp. 208~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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