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국개들'은 사라졌을까...

2010.06.05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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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 지방선거가 끝난 후 "국민의 승리다", "우리 국민들은 역시 위대하다"라는 평이 나왔습니다. 2년 전에 치러진 18대 총선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죠.

그때는 시퍼렇게 물든 지도를 앞에 두고 '국개론'이나 '생각없는 20대론'이 횡행했습니다. 불과 2년 만에 '국개들'은 '위대한 국민'이 되었습니다. 다소 낯

간지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죠.


 이번 선거의 결과가 진보진영에게 고무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국민들의 진보성이 발현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선거 결과가

진보진영 정책에 대한 적극적 동의라기보다는 막나가는 이명박 정부의 행태에 대한 염증과 반발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지도를 녹색으로

물들인 서울에서의 결과를 놓고 보면 얼핏 민주당이 대승을 거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시장 당선자가 한명숙이 아니라 오세훈이라는 것은 표심의 총합에서 

결국 한나라당이 승리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녹색으로 물든 서울시 지도는 이번 선거의 실제 양상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오세훈을 '강남특별구청장'  

이라 비꼬며 놀리는 것은 나름 재미있는 일이지만, 실제 오세훈은 강남권 이외의 다른 대부분의 구에서도 상당한 득표를 했습니다. 내용 면으로 보면 이번

선거는 '대승'이 아니라 진땀나는 '신승'이 맞습니다. 신승을 대승으로 착각하는 것은 앞으로를 대비함에 있어 좋을 것이 없습니다.

 

  지난 2년 반 동안 이명박의 패악질이 그렇게 심했는데도, 여전히 국민들은 40% 가량의 표를 한나라당에 몰아 주고 있습니다.  대다수 국민들이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나 권리 문제에 대해 생각 이상으로 둔감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이들에게 거의 미치기 직전까지 갈만큼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 다수 국민들에겐 '그래도 저건 

약간 심한 것 같긴 하네' 정도의 자극밖에 못 준다는 것이죠. 이명박 정부가 워낙 노골적이고 지저분하게 권력을 농단했기에 이 정도 반발이라도 나온 것이지,

절차나 형식 면에서 조금만 영리하게 굴었다면, 한나라당이 무난하게 선거에서 승리했을 수도 있습니다.


    

2.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특히 두드러진 논의 대상이 된 것은 야권 단일화의 문제입니다. 혹자는 이참에 선거 연합이 아니라 미국과 같은 

양당제로의 이행을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 이번 선거를 포함해 근 몇 년간의 선거 양태를 보면 실질적으로 선거가 양당제와 비슷한 형태로

흐르고 있음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양당제 구조의 가장 주목할 점은 한나라당에게 '불사성'을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노무현 탄핵 후폭풍으로 열린우리당에게 표심이 쏠렸던

지지난 총선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후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실망과 반감은 곧바로 한나라당의 선거 대승으로 이어졌고, 이명박 정권의 실정은 재차 민주당

에 대한 지지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다시금 유권자들에게 실망을 줄 경우 그 표는 어디로 갈까요. 두말할 나위 없이 한나라당입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이 두 개의 거대한 우파 정당이 주도하는 선거구도를 깨지 않는 한 이같은 선거 양태는 끝없이 되풀이 될 뿐입니다.

  

   좌파든 우파든 일정한 상식과 균형감을 가진 이들이 기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이상은 상식적인 우파 정당과 상식적인 좌파 정당이 상호 견제와 

협력을 통해 경쟁하는 정치구도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이들은 그러기 위해 몰상식한 우파 정당인 한나라당의 몰락이 전제되

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살펴보았듯 지금의 정치구도로는 한나라당이 결코 몰락할 수 없습니다. 한번의 선거에서 민주당이

대승을 거두더라도, 이후 민주당이 인기를 잃을 경우 그들에게서 떠난 표가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 같은 좌파 정당이 아니라 보수 우파 정당인 한나라당

으로 고스란히 흡수되어 부활의 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주요한 이유는 사표론입니다. 사표론은 진보진영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민주당을 상대할 수 있는 규모와 실력을 갖춘 정당이 한나라당 뿐이라고 인식되는 한 '사표가 될 것이 뻔한'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으로의 투표는 심리적 저항감을 유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순환 구조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이 투표할만한 가치가 있는 규모와 실력을 갖춘 정당으로 성장하고,

또 다수 국민들에게도 그렇게 인식되어 실정을 한 민주당에서 이탈한 표가 한나라당이 아닌 좌파 정당으로 전환되는 구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민주당은

앞으로 결코 실정을 하지 않을 것이고, 민주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언제나 우상향의 그래프를 그릴 것이라 보는 것은 전적으로 오만이며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그리고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 같은 좌파 정당조차 예외 없이 언젠가는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고 표로

문책받는 경험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눈 앞에 닥친 선거의 승부에 연연하여 좌파 정당들의 성장을 좌절시키는 묻지마 단일화 압박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각각의 선거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한 전략적 단일화는 당연히 모색되어야 하겠지만, 아직 자생력이 약한 좌파 정당의 생존을 

위협하는 강압적 단일화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오로지 민주당만이 정의이고 민주당의 승리만이 제일의 목표라고 생각한다면 모를까, 한국정치의 

근본적인 질적 도약을 원한다면, 좌파 정당의 생존과 성장은 항시 배려되어야 하고 단일화 협상 또한 이를 전제로 진행되는 것이 옳겠습니다. 현실정치

에서의 좌파 정당의 성장은 한나라당의 극우성을 부각시키고 우편향된 국민들의 정치감각을 완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터무니없는 

좌편향 이미지로 공격당하고 있는 진보 우파 정당에게도 결과적으로 이익이 됩니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정치구도의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한

한나라당은 언제까지나 부활에 성공할 것이고, '국개론'은 몇 년 터울로 되풀이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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