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보기

2010.10.22 17:25

가끔영화 조회 수:1537

몇년전꺼도 관심 가지신 분들은 다 기억하시겠죠.

가끔 들러서 보면 그들 언어의 유희가 부럽기만 합니다.

응모하는 시 3편 다 잘써야 가능할거 같군요 하나만 아주 뛰어나도 되겠지만요.

소라여인숙은 여행하던 떄 느낌이 물씬나네요 흥겹지 않은 여행이었어도 그립죠.

비행기가 안와는 나도 할 수 있겠다 란 생각이 얼른

딱따구리 동네 이야기 참 머리 좋군요.




강원일보] “소라여인숙” / 김영식

 어린물떼새 발자국 안테나처럼 찍힌
 해변가 모퉁이 외딴 집 한 채
 대문 푸른 그 집의 적막을 떠밀자 능소화
 꽃잎마다 출렁! 노을이 밀려든다
 「자는 방 잇섬」 걸어놓고 주인은
 종일 갯바위 너머 일 갔는지
 마당엔 젖은 파도소리만 무성하다
 집이 그리운 집게처럼 나는
 풍랑주의보 내린 어로(漁撈)를 정박시키고
 소금기 반짝이는 그 집 빈방에 들어
 하룻밤 묵고 가기로 한다
 바람소리 켜켜이 비닐장판처럼 깔린
 방바닥에 지긋이 손을 넣으면
 오래 흘러온 것들이 제 상처를 들여다보는 시간
 공중을 내려놓은 갈매기들이
 깃 속에 낮의 시린 부리를 묻는다
 등 굽은 주인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모서리 둥글게 닳은 물결무늬 숙박계
 세상에 없는 주소 꾹꾹 눌러 적으면
 누군가의 등을 안아주던 흰 바람벽
 위로 참방참방 헤엄쳐오는 숭어 떼
 방파제 끝에서 인부 몇 돌아오고 나는
 옆으로 누워 밤을 견디는 긴발가락집게처럼
 온 몸이 녹아드는 아랫목에 누워
 홑이불 같은 수평선 한 자락 당겨 덮는다.


[심사평] 김영기, 최승호

 본심에서 마지막까지 논의된 작품은 김영식의 `소라여인숙' 외 4편과 박창호의 `오십견'외 4편이었다. 박창호의 시는 일정한 작품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문체가 담백하고 과장된 진술이 없다.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씌어진듯한 그의 시들은 죽음이라는 주제를 형상화한다. 상실감과 회한과 생의 덧없음, 차분한 어조는 시의 내용을 실감나게 하면서 독자를 숙연하게 하는 조용한 힘이 된다. 이런 미덕에도 불구하고 감상성은 그의 시의 큰 흠이라고 할 수 있다. “여문 마늘을 먹으면/ 아버지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같은 진술이 그렇다. 감상을 절제할 수 있는 냉정한 가슴, 객관의 자리에서 세계를 응시하는 차가운 눈이 필요하다고 본다.
 당선작 김영식의 `소라 여인숙'은 선이 굵고 힘이 있는 작품이다. 새로운 표현에 대한 열정이 있고 사물들과 자신의 심리에 대한 섬세한 관찰이 돋보인다. “대문 푸른 그 집의 적막을 떠밀자 능소화/ 꽃잎마다 출렁! 노을이 밀려든다”와 “모서리 둥글게 닳은 물결무늬 숙박계” 같은 묘사도 빼어나지만 “누군가의 등을 안아주던 흰 바람벽/ 위로 참방참방 헤엄쳐오는 숭어 떼” 같은 표현은 탁월하면서도 참신한 맛과 멋이 있다. 신인에게는, 그리고 문학에는 독자를 설레게 하고 놀라게 하는 이런 새로움이 있어야 한다. `소라여인숙'은 표현에 공을 들이고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언어의 선택과 배치에 무척 신경을 쓴 작품이다. 그러나 함께 응모한 다른 시들은 `소라여인숙'과 다소 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와 썩은 생선들과 고래냄새, 그리고 범죄와 죽음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이 신인의 독특한 시 시계를 우리는 주목할 것이다.

    


[2010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른다고 하였다/ 권지현


우루무치행 비행기가 연착되었다
북경공항 로비에서 삼백삼십 명의 여행자들은
여섯 시간째 발이 묶인 채 삼삼오오 몰려다녔다
현지여행객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행가방에 다리를 올리고 앉아
떠들어대거나 서로 담배를 권했다
담배를 피워올리건 말건
나는 도시락으로 식사를 했다

비행기는 언제 올지 오지 않을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다
연착한다는 안내표시등 한 줄 뜨지 않았다
사람들은 연신 줄담배를 피우고
나는 로비를 몇 바퀴나 돌고
하릴없이 아이스크림을 핥다가
마침내는 쪼그리고 앉아 지루하게 졸았다
항의하는 나를 마주한 공항여직원
가슴께에 걸린 얼굴사진이 흐릿하게 지워져 있어
내가 가야할 길마저 희미해 보였다

비행기는 오지 않고
결리는 허리뼈를 아주 잊을 때까지 오지 않고
우루무치행 비행기는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다

심사평

담담하고 소박하면서 서정성·균형감 가져

좋은 작품이 여러 편 눈에 띄었다. 권지현의 ‘모른다고 하였다’는 담담하고 소박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담담하고 소박하다고 해서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공항 여직원/ 가슴께에 걸린 얼굴 사진이 흐릿하게 지워져 있어/ 내가 갈 길마저 희미해 보였다”처럼 평이한 일상 속에서 삶의 결을 찾아내는 눈은 결코 예사로운 것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시는 시를 가지고 무슨 엄청난 것을 해보겠 다는 허영심이 억지와 무리로 이어지면서 읽기 어려운 시가 범람하는 우리 시단을 향하여 던지는 새로운 질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낡지 않은 서정성과 균형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 시의 미덕이라 할 수 있다. 지나치게 평범하다는 비판이 따를 수도 있겠지만, 주말부부의 쓸쓸한 삶의 단면을 그린 ‘냉동실’이며 박물관을 통하여 과거와 오늘을 대비시킨 ‘플래시’도 이 작자의 저력이 탄탄함을 말 해준다.

고민교의 ‘어느 결혼이민자를 향한 노래’는 아주 재미있고 따뜻하면서, 시의에 맞는 주제이기도 하다. 쉽게 융합할 수 없는 둘 사이를 가래추자에 비유한 것도 적절하고, 간절한 마지막 구절도 강한 울림을 준다. 이 시를 읽으면서 시는 역시 시의 특성을 버릴 수 없으며, 시가 산문의 상태를 그리워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된다.

신은유의 시 가운데서는 ‘고딕식 첨탑’이 가장 좋았다. 좀더 난삽한 ‘바닥만 보면서 걷는 것은 내 오랜 습관이다’도 마찬가지이지만, 깊은 사유와 고뇌의 흔적이 아로새겨져 있어서, 읽으면서 무엇인가 생각하게 만드는 시다. 하지만 너무 말이 많고 어지럽다. 말을 고르고 빼는 보다 엄격한 과정을 거친다면 참으로 좋은 시를 쓸 사람으로 생각된다.

이상 세 사람의 시를 놓고 토의한 끝에 선자들은 권지현의 ‘모른다고 하였다’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유종호, 신경림)

'2007년 영남일보 문학상 당선작

---떡갈나무 약국 / 임수련 (본명 임외자)


밤새 앓고 난 후엔
딱따구리구리 마요네즈 케챱은 맛있어
인도사이다 인도사이다,
콧노랠 흥얼대며 떡갈나무약국을 찾아가죠
솜털 가운을 걸친 새들
자잘한 열매 알약들과 이슬 드링크 들고
분주하고요 떡갈잎 의자에 앉아 깔깔대는 노란 햇살들
눈꼽 씻은 바람이 흔드는 나뭇가지 소파
꼬마전구 도토리알 켜져있는 조제실 구석에선
약봉지 바스락대는 사슴벌레랑
무당벌레의 그루잠도 훔쳐볼 수 있어요

당신도 어디 아프신가요?
딱따구리구리 마요네즈 인도사이다,
콧노랠 흥얼거리며 향과 색과 소리들이 화답하는
떡갈나무 약국을 찾아가 보시죠
어린 살결처럼 싱싱한 푸른그늘 대기실에 앉아
깨알같이 쓰여진 마음의 처방전 읽고 있으면
어떤 상처도 아물게 한다는
까만 눈속에 당신을 태운 다람쥐 한 마리
지구보다 더 너른 나무의 세계로 안내해 드리고요
떡갈나무약국의 주인장 오색딱따구리와
구름트럭 끌고 약배달 온 빗방울의 경쾌한 대화도 들을 수 있죠

가끔 늦은 시간에 찾아가면 밤의 이마에 새겨진
따갑고 노란 눈동자들 등을 파고 들고
약국 처마의 기둥들이 굵어지는 걸 볼 수도 있는 곳
참 그곳엔 그 기둥들도 혼신으로 즙을 짜낸다는군요
마음이 푸석하게 부어올 땐, 딱따구리구리 마요네즈
케챱은 맛있어 인도사이다 인도사이다,
콧노랠 흥얼대며 떡갈나무약국을 찾아가봐요


'떡갈나무 약국'은 시어의 경쾌한 흐름과 발랄한 상상력이 시를 읽는 마음을 견인하는 힘이 있다. 이야기시와 노래시의 양면을 함께 지니며 비약적인 어휘와 에그조틱한 상상의 모험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아마도 가볍지 않은 감각적 훈련을 쌓은 듯하다.

당선자와 그 밖의 모든 응모자에게 문운 있기를 바란다.

◇심시위원=이기철(시인·영남대 교수), 최동호(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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