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 vs 시골말

2010.06.05 12:46

therefore 조회 수:4656

전 원래 부산에서 나고 자랐어요. 그렇지만 부모님은 전주/서울 출신이시고 엄마의 경우에도 대학부터 서울에 있으셔서 외갓집에 가기 전에는 거의 전북쪽 억양을 찾아볼수가 없죠. 그동네는 남도보다 사투리가 부드럽기도 하구요. 아버지도 이제 부산에서 산 세월이 더 길어지려 하시는데도 마치 아나운서같은 서울말을 하시는데다가 부산말을 조금이라도 하면 증말..어색합니다.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이런 연유로 저는 부산 사람이지만 어릴때 집에서는 늘 서울말을 썼습니다. 학교들어가고부터는 전학왔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여자니 그런 걸로 놀림당하지는 않았지만  중학교 즈음부터는 친구들과는 늘 부산말을 했어요. 그래도 집에서는 서울말을 하는 편이었고 원래 말투가 다소 특이해서 사람들이 지방을 잘 짚어내지 못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은 일이 없어서인지 별로 사투리에 대한 생각자체를 안했지만 연애를 하면서부터 달라졌어요. 그러고보니 거의 서울사람들을 만났는데, 부산출신이라는 걸 알게되면 예외없이 사투리 애교, 정확히는 "오빠야~"를 원합니다. (오빠는 커녕 동생인 애들까지..)


저 이십년동안 한번도 오빠야, 라고 해본적 없는 사람이거든요-_-

오빠!라고 뒷쪽에 강세를 줘서 화낼듯 얘기하긴 해도, 오빠 니 당장!! 이런 말을 하긴 해도 오빠야 따위 몇몇 여성의 것이며 그 오빠야도 대부분은 이 남자들이 아는 "오빠야"와는 전혀 다르단 말입니다. 왠지 시니그피앙의 세계로 들어갈 것 같군요-_- 어쨌든 경상도 출신 여자 연예인들의 버라이어티 쇼의 오빠야로 경상도 여자의 애교를 측정하는 건 경상도 출신 연예인들의 외모로 경상도사람들의 얼굴을 상상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구요. 거기다가 같이 상대할 사람이 없으면 사투리가 쉽게 나오는 것도 아닌걸요.


그래서 저는 그 요청들을 모조리 무시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남자친구는 유달리 집착이 심합니다. 유이양이 티비에서 한번 해주신 모양이더군요. 뜸하다 싶으면 오빠야 한번 해보라고 해서 그건 스킵하고 친오빠와 통화하는 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만둘줄 알았어요. 실제의 건조하고 좀 성질난 듯 들리는 짤막한 부산말을 싫어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사투리를 해보라고 하길래 친구들과 얘기하듯 "니는 지겹지도 않나" 한번 날리면 그게 아니래요. 그건 시골말이고, 자긴 "사투리"를 원한답니다.


이 시골말은 의미를 확대하여 자신이 싫어하는 모든 말투를 지칭하게 되었습니다. "자네" "총각" "그러게나" "그러도록 하시오" 등등 본인 마음에 안들고 제가 재밌어하는 모든 말투가 시골말이 되었죠. 그럴수록 저는 집요하게 반복합니다. 만만치 않게 피곤한 성질머리입니다.


이런 시골말/사투리 체제에서 몇가지가 보여요. 매체나 일부 경우를 통해서 무슨 귀여움이나 유머의 상징이 되버린 사투리라면 몰라도 현실에서의 사투리 자체는 사전적인 정의처럼 주류가 아닌 말입니다. 주류가 아니라서 독특한것도 아니고 동등하게 공존하는 것도 아니에요. 부산은 엄연히 시골이 아닌데, 이 사람의 생각에서 부산말투는 "시골말"이고 듣기 안좋은 말입니다. 결국 사투리는 부정적인 거에요. 거기다가 사투리가 여성, 그것도 젊고 귀여운 연하의 여성이 말하는 "오빠야"일때만 긍정된다는 것도 그냥 봐넘길 수 없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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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잔하면서 쓰는 글치고는 이상합니다.


새로 바뀐 듀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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