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가뜩이나 인기 없는 주제인 게임 이야기에다가 무려 콘솔 게임 이야깁니다. 으하하.

 

1. 건담 캡슐 파이터 같은 게임으로 먹고 사는 요즘의 소프트 맥스는 둘째치고라도, 사실 옛날 옛적의 소프트 맥스도 따지고 보면 그렇게까지 대단한 결과물들을 내놓았던 제작사는 아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요즘에서야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전 1, 2와 같은 그들의 리즈 시절 게임들도 '열악한 환경과 쥐꼬리만한 제작비'를 감안했을 때 놀랍고 대단한 거였지 각각 게임의 완성도가 정말 일본제 비슷한 장르의 작품들을 발라버릴 정도였다거나 했던 건 아니었죠. 기술적인 면에서도 그랬고(버그나 깔았다! ...게다가 이런 버그들은 무려 이 회사의 전통이었죠;), 극찬 일색이었던 스토리도 한글로 즐길 수 있었기 때문에 좀 더 좋게 평가 받았던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일본의 유명 RPG들과 비교했을 때 얘깁니다. 지금 볼 때 손색이 없다 싶은 부분은 일러스트 정도?

 

그래도 어쨌거나 '그런 형편'에서 그 정도 퀄리티의 게임을 만들어냈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고. 한국 패키지 게임 시장이 불법 복제로 몰락해 버리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일본식 RPG의 본토인 바다 건너에서도 어느 정도 먹히는 게임을 만들어 내는 괜찮은 회사로 발전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쉽죠. 그래도 버그나 깔았다는 용서가 불가능하지만요. 하지만 뭐 그런 가정은 어디까지나 바람일 뿐이고 현실은 현실이니까. 창세기전 온라인이라니... 혼자 노는 패키지 게임 팬으로서는 그냥 에혀. 일 뿐입니다.

 

 

2.

암튼 그러한 소프트맥스가 4년간의 제작기간 끝에 작년에 야심차게(?) 발매했던 '마그나카르타2'를 클리어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재밌었어요.

실시간 액션 전투 시스템이라길래 좀 회의적으로 예상했었는데. 예상과 다르게 전투 시스템은 꽤 괜찮았습니다.

쓸 데 없는 노가다도 별로 없으면서 플레잉 타임도 적절했고. 스토리는 뭐... 테일즈 오브 베스페리아의 기둥 줄거리에다가 파판10의 연애담을 섞어 놓은 듯한 이야기여서 별다른 감동이나 신선함은 없었지만 그래도 막장이라고 욕 먹을 부분 없이 무난, 깔끔한 편이었으니 선방했다 치구요. 장비 업그레이드나 스킬 트리, 시스템도 무난하고 적절했다는 느낌. 어떤 면에서는 본가 대표 RPG인 파판13보다 낫다고 할만한 부분도 있어요. 이 정도면 칭찬할만한 작품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 게임엔 아주 큰 문제점이 하나 있었으니...

 

'정말 없어 보인다' 라는 점입니다. -_-;;

 

(참고로 이 영상은 게임 중엔 얼마 나오지도 않는 컷씬들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가장 멋진 장면들만 모아서 만들어졌습니다.)

 

일단 캐릭터 모델링이 참 구립니다. 말 그대로 모델링의 퀄리티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주연급을 제외하곤 그냥 다 구리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심지어 최종 보스님도 저화질 텍스쳐에 엉성하게 그려진 수염과 팔, 다리 때문에 빈곤해 보일 지경. 그에 비해 주연급은 꽤나 준수한 퀄리티를 보여주긴 하는데... 뭐라고 해야 하나, 이 분들은 기술적인 퀄리티 면에선 봐줄만한 대신에 디자인 자체가 구립니다. 특히나 어이 없게도 주인공의 얼굴이 참 이상하게 생겨서 게임 내내 눈에 거슬리죠. 주인공인데. -_-;;

기본적인 캐릭터 디자인은 김형태가 잡았는데, 별로 닮지 않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더 욕을 먹기도 했죠. 전 김형태의 그림은 별로지만 게임에서 돌아다니는 캐릭터들의 생김새를 보고 있노라면 김형태의 일러스트마저 그리워지는 느낌이라서;

 

  (이 분과)

 

  (상단 우측의 남자분을 비교해 보면 대략 어떤 느낌인지...;)

 

 배경 그래픽도 비슷합니다. 캐릭터 모델링보단 낫지만 결코 훌륭하다고는 봐 줄 수가 없는 수준. 게다가 전체적으로 색감이 칙칙하고 조금만 멀리 떨어져 있는 배경도 죄다 흐리멍텅하게 표현해 버려서 이 게임의 빈곤함(혹은 제작진의 기술력 부족)을 웅변해주고 있죠. 가끔은 꽤 그럴싸하게 표현된 곳들도 있긴 한데, 캐릭터 이동시 기본 시점이 낮게 설정되어 있어서 일부러 시점을 변환해가며 움직이지 않으면 그 배경을 제대로 구경하기도 힘이 듭니다. 무슨 땅그지도 아닌데 길바닥에 떨어진 동전 찾는 사람들 마냥. -_-

 

없어 보임의 절정은 게임 내 이벤트 씬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보통은 CG 무비를 끼워 넣거나, 아니면 게임 내 캐릭터와 배경을 활용하여 연출해서 집어 넣는 이벤트 씬들을 이 게임은... 그냥 배경에 흐릿한 그림 한 장 깔아 놓고 화면 왼쪽, 오른쪽에 거대한 캐릭터를 하나씩 띄워놓고 번갈아가며 말 하는 방식으로 때워 버립니다;;; 그러니까 창세기전 1, 2 시절 대화 화면에서 일러스트만 3D로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죠. 그 아무리 중요한 이벤트씬이든 관계 없습니다. 연출된 컷씬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기껏해야 중요한 동작 하나 정도만 몇 초 보여준 후 바로 쌍쌍 대화 모드. orz

 

 

(대략 이런 느낌... 이 아니라; 바로 이게 이벤트 씬입니다.)

 

한 마디로 돈이 없었던 겁니다. ;ㅁ; CG 무비도 돈이고 모션 캡쳐도 돈이죠. 캐릭터 3D 모델링도 그렇고 요즘 게임에서 비주얼과 관련된 부분들은 대부분 (물론 기본적으로 미술이 받쳐 줘야 하겠지만) 제작비로 직결이 됩니다. 그리고 그 쪽으로 투자를 많이 할 여유가 없었던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엔딩 스탭롤을 보니 유독 CG 모델링 관련 작업들을 중국 쪽에 외주를 많이 줬던데, 그것도 역시 제작비 때문이 아니었나 싶구요.

그래서 참 안타깝습니다. 많지 않은 몇몇 버그(누가 소프트 맥스 아니랄까봐-_-) 와 비주얼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참 잘 만든 게임이었거든요. 그나마 이거라도 많이 팔렸어야 돈 더 들여서 후속작을 낼 수 있을 텐데. 일본에서 5만장 내외, 한국에서 1만장 내외(추정), 그 외의 다른 지역에선 아예 챠트에 들지도 못할 정도의 판매량으로 그쳤으니 가망이 없다고 봐야겠죠. 창세기전 온라인 제작 같은 행보를 볼 때 결국 앞으로의 활동은 온라인 게임 쪽으로 집중이 될 것 같구요. 결과적으로 이제 콘솔 패키지 게임을 제작하는 한국 제작사는 킹덤 언더 파이어(도대체 언제까지 만들 셈인가!!) 시리즈의 판타그램 밖엔 남지 않은 듯 합니다.

 

물론 제작사의 역량이 여기까지였다... 라는 부분도 분명히 있겠습니다만. 불법 다운로드 덕에 망해 버린 국내 게임 시장이 더 원망스러워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3. 그렇게 아쉬움을 안고 마그나 카르타2를 끝낸 후 올해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레드 데드 리뎀션'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영상의 장면들은 모두 게임 플레이 화면이거나, 플레이 화면도 동일한 퀄리티의 컷씬입니다)

 

이건 뭐... 분명 같은 게임기로 돌리는 게임인데 말입니다. -_-;;;

 

물론 일단 제작사 기술력의 차이가 안드로메다급으로 멀고도 크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이긴 하겠습니다만. 이 정도 퀄리티의 그래픽으로 이 정도의 스케일의 게임을 만들어 내려면... 뭐 일단 돈이죠. 역시.

 

이런 건 특히 컴퓨터 내지는 게임기의 성능이 향상되면 될 수록 커지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 성능이 높아진다 -> 소비자들이 예전보다 높은 퀄리티의 비주얼을 요구한다 -> 돈이 없어 부실한 비주얼의 게임을 만든다 -> 안 팔림.

                                                                                                                                         -> 막대한 제작비 투자 -> 팔림 -> 본전 뽑기 위해 비슷비슷한 게임 양산.

                                                                                                                                                                                 -> 망함 -> 비슷한 류의 게임은 이제 끝.

 

어찌보면 블럭버스터에 집착하던 요 몇년간 영화계의 모습과 비슷하기도 합니다만. 게임 쪽이 이런 문제는 훨씬 큽니다. 영화야 최소한 제작비가 부족하다고 해서 사람 얼굴이 각이 져 보인다거나 화면 속 세상이 후줄근해 보인다거나, 상영 중에 영상이 갑자기 느려진다거나 하진 않으니까요(...)

 

그래서 자본력이 딸리는 회사들은 거의 휴대용 게임 시장에 전념하거나, 아예 사업을 접어버리거나 하고 있고. 덕택에 플삼, 엑박 같은 HD급 게임기들에는 발매되는 게임들의 다양성이 부족해지고 있구요. 참, 콘솔 게임 유저로서는 이래저래 난감합니다.

 

5. 그냥 오랜만에 전설의 게임 영상 하나 올려 봅니다.

 

(2분 30초부터 보시면 됩니다.)

 

 돈 받고 팔았던 물건 한정으로 역사상 최악의 게임으로 칭송받는 "Big rigs" 이라는 게임입니다. 영상을 볼 때 마다 도대체 이 영상을 찍은 사람은 왜 이 게임을 구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들어 판다고 내놓은 사람들의 마음은, 알고 싶지 않아요. 급히 갚아야 할 사채라도 있었나 보죠.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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