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관련 이야기는 쉬지도 않는 떡밥이 되어 게시판을 주기적으로 후끈 달구곤 하죠.  다른 분들이 말씀하셨듯 혐연자들이 흡연자들을 증오하는 것도 이해가 되고, 당하는 흡연자 입장에서는 나름 타인을 신경쓰는 흡연자인데 개념없는 흡연자들이 먹어야 할 욕까지 한꺼번에 먹어가며 매도되는 게 억울하기도 하고..  머.. 그런 것 같습니다.

 

흡연자 입장에서 나름 변호를 하자면 '워낙 옛날이 호시절이었기 때문에 최근 십여년 동안의 갑작스런 변화에 적응이 안되어서 억울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정도의 말을 할 수 있겠네요. 사람은 누구나 이전에 누리던 권리를 빼앗기면, (당연스럽게 할 수 있었던 행위가 금지되면) 격렬히 저항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것이 정당한가 아닌가는 (그들에게는 ) 중요하지 않죠.

 

흡연자의 권리를 줄이고 혐연자를 더 보호해야 한다는 명제가 사회구성원 대다수의 동의를 얻음에 따라 최근 일이십년동안 공적으로 사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인식도 많이 바뀌었고요. 이제 이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되면 변화가 정체될 것이고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면 앞으로도 변화가 쭉 이어지겠죠. 다만 필요한 것은 시간입니다.

 

최근 삼십년간 흡연의 양태가 어떻게 바뀌었나를 살펴보면 흡연자들이 느끼는 억울함과, 혐연자들의 투쟁이 얼마나 치열했나를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덧붙여 유의해야 할 것은 흡연 문제가 남녀차별 문제와 상당히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옛날은 흡연자들에게 호시절이었지만 여성흡연자들에게는 아니었던 것이  지금보다도 훨씬 더 많은 사회적 제약이 따랐죠. 호시절은 호시절이되 대략 25세 이상의 남성과 60세 이상의 여성들에게만 호시절이었전 것이죠. 

어쨌거나 아주 예전은 모르겠고 제가 어렴풋이라도 기억하는 시절부터 떠올려 보겠습니다.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 이 아니고 버스에서 담배피우던 시절이 되겠군요.;

 

- 80년대 초반만 해도 시외버스에 재떨이가 달려 있었다. 좌석번호 1번~20번까지는 금연석이었고 그 이후는 흡연석이었음.  한번은 뒷자리에서 날아오는 담배연기에 금연석 손님이 안내양을 통해 항의하자 뒷자석 중년의 남자손님 왈 "여기는 흡연석이고 일부러 앞자리 안앉고 뒷자리 앉았는데 왜 내가 참아야 하나? 흡연석 손님은 흡연 권리가 있음" 이런식으로 이야기해서 말싸움이 났던 기억.

 

- 1981년에 김수용이 리메이크한 영화 "만추"에는 주인공 정동환이 4인이 마주앉아 가는  열차 안에서  아주 맛있게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코앞에서 연기를 맡는 여성을 포함한 다른 손님들은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임. (개인적으로 옛날 일본영화 "설국"에서 주인공 남자가 담배피우는 장면과 함께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속 흡연장면이었음)

 

- 아버지들은 애가 옆에 있거나 말거나 안방에서 담배 피우는 것이 당연했음. 지금도 어머니들이 분노에 떠는 에피소드는 안방에서 TV보면서 누워있던 남편이 부엌에서 일하는 아내에게 소리질러서 '저기 있는 재떨이좀 일루 가져와'라고 시키는 것.

 

- 모래시계 드라마에 나왔던 장면 - 남자선배가 담배피우는 여자후배의 담배를 빼앗아 땅에 버리고 따귀를 올려붙이자 옆에 있던 고현정이 용기있게 항의함. 아마도 당시로서는 젊은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은 술집 작부나 창녀들에게만 용인되는 분위기였을 것.

 

- 그러나 여성 노인 들의 흡연율은 현재보다 훨씬 높았음. 할머니들 두엇이 둘러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장면은 전혀 낯설지 않았음.

 

- '여자는 지붕이 없는 곳에서 담배를 피우면 경범죄에 걸린다. 그러나 아이를 셋 이상 낳은 여자는 예외'라는 법조항이 있다는 소문이 있었음. 근거없는 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예전에는 정말 그런 법조항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 80년대 말 또는 90년 쯤.. 친구가 대학생 선배에게 들었다는 이야기. 숙대 앞에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가 담배를 피우고 싶은데 불이 없어서 지나가는 (담배를 피울 것 같이 생긴) 여대생에게 불좀 빌려달라고 하자 여대생이 선배의 뺨을 때렸음. 이에 분노한 선배는 여대생의 가방을 빼앗아 쏟아부었고 그 안에서 담배와 라이터가 나왔음. 선배는 의기양양하게 여대생의 뺨을 때렸고 그녀는 울면서 아무말도 못했다는.. 지금 생각하면 병림픽 같은 이야기.

(아마도 이 이야기는 실제 겪었던 이야기라기 보다는 당시의 도시전설 같은 게 아니었나 싶음.)

 

- 90년대 초.  남자 대학생들의 흡연율은 80%가 넘었지만 적어도 같은 과 여학생들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본 적이 없음. 다만 운동권 동아리에 속해있는 여학생들은 동아리방에서 공개적으로 피우기도 했었음.

 

- 95년경. 복도와 캠퍼스내 야외에서 담배를 피우는 여학우를 처음으로 볼 수 있었음. 그전에 커피숍이나 동아리방에서 여학우들과 같이 담배를 피웠던 일은 꽤 있었지만 야외에서 흡연하는 모습을 처음 보고는 의지와 상관없이 꽤 놀랐음.

 

- 일반 회사의 사무실에는 테이블마다 재떨이가 놓여 있었고, 말단 여직원의 임무는 커피 심부름 뿐만 아니라 재떨이 청소하기도 있었음. 사무실내 금연이 일반적으로 자리잡은 것은 90년대 후반 이후.

 

- 90년대 중반~2000년 경까지의 5~6년은 여성들의 흡연권이 비약적으로 신장된 기간이었음. 전공에 따라 다르지만 대학에서 여학우와 남학우 흡연비율이 모두 70~80% 정도로 비슷한 경우도 있었음. 개인적으로는 여자들이랑 같이 있을 때도 눈치안보고 담배 피울 수 있어서 편했음.

 

- 술자리에서는 대부분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섞여서 마시는 경우가 많은데 비흡연자가 더 많다 하더라도 '이 테이블에서는 담배 피우지 말고 나가서 펴'라는 분위기였던 적은 거의 없었음. 물론 비흡연 여성들의 경우 "담배 연기 내쪽으로 뿜지 마!"라는 항의를 자주 했지만 그다지 먹히지는 않았음.

 

- 커피숍이나 술집에서 담배를 주문하면 종업원이 갖다주었음. 90년대의 커피숍은 밍밍한 아메리카노 커피, 수북한 재떨이, 테이블마다 놓여있는 전화기(삐삐 응답용) 등으로 추억됨. 담배를 못피우는 커피숍이란 아직도 왜그리 낯선지.

 

- 술집, 고기집, 식당 등에서 테이블내 비흡연자가 있거나 옆자리 손님이 가까이 있을 경우 흡연을 자제하는 분위기는 불과 최근 몇년 사이에 생겨난 것임.

 

 

뭐 이정도인데요. 특히나 최근 몇년간 금연구역이 확대되고, 술집이나 식당에서도 담배를 좀 자제하는 분위기로 변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더 변해야 한다는 명제에 반론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흡연자들의 심정을 이해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한번 적어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20대 시절보다 담배를 많이 줄였고 슬슬 끊어볼까 하는 생각에 니코틴껌도 씹어보고 했습니다만 아직 담배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군요. 꽤 오랫동안 사흘에 한 갑 꼴로 피웠고 최근에는 2~3개피 정도까지 줄여 본 적이 있습니다만 스트레스를 받으니 다시  7~10개피 정도로 늘어나더군요. 언제쯤 완전히 끊을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뭐랄까요. 좁은 좌석에 부대끼며 앉아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열내며 주고받았던 예전의 그  담배연기 자욱한 술자리의 분위기가 그립습니다. 오래된 친구 두세명이 앉았을 경우를 제외하곤 회식자리든 동호회 술자리든 테이블에 앉아 담배를 꺼내는 것은 금기가 되었죠.

그래서 듀게에서 흡연자 번개를 한번 쳐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담배연기 자욱했던 90년대식 술자리가 좀 그리워서요. 호응해 주시는 분이 몇분 계시다면 조만간 한번 추진해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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