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루

2010.06.04 23:28

Mk-2 조회 수:3775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저는 사실 몇 달 전 부터 요리학원에서 아주머니들 틈에 끼어(...) 한식 조리사 자격증 과정을 배우고 있습니다.
문득 뭔가 아무거나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인터넷 여기저기를 뒤적여 한식 조리사라는 자격증 종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시작하게 된 것인데요.
처음 시작할 때는...
 
"조리사 그 까이거 뭐 대충 고기하고 야채 같은 놈들 냄비 같은데 한데 쏟아붓고는 물 받아서 주걱 같은 걸로 휘휘 섞어서 다시다나 왕창 뿌려서 끓이다가 맛이 지대로 안 나면 라면 스프 넣어서 끓이고서는 마지막에 한 숟가락 떠 먹고 "이 맛이야~" 한 마디 하면 되는 까이거 아녀~"

...라고 만만히 생각하며 달려 들었다가 아주 그냥 혼쭐이 났네요 ㅎㅎ
조리라는 것이... 특히 자격증 취득용 조리 교육이라는 것이 생각 외로 굉장히 어렵더라구요.
이게 그냥 맛있게 만들어 즐겁게 먹는 그런 일반적인 의미의 요리가 아니라-그런 일반 생활 요리도 제게는 무지하게 어렵지만- 오로지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만드는 음식인지라... 뭐 간장 한 방울 무 한 조각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고 간장 몇 큰 술, 무 몇 센티, 물 몇 컵 식의 정확히 주어진 조건으로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정말 어렵더군요.
덩치는 산 만한 게 조그마한 무 조각 들고 조리사 용 부엌칼에 새겨진 눈금자로 사이즈 맞춘다고 낑낑대는 모습이란;;;
거기다 시험 과제도 마흔 아홉가지나 되는 조리 과제 중에서 두 가지가 무작위로 출제되기 때문에 그 마흔 아홉 과제의 레시피를 모조리 숙지해야 하고 또 머리 속으로 숙지된 그 레시피를 따라 제 두 손으로 능숙하게, 또 주어진 시간을 1초도 초과하지 않고 작품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이건 뭐 장금이가 왜 천재인지 확실히 알겠더라능;;
같이 배우는 주부분들처럼 부엌일에 익숙하기라도 하면 또 모를까, 부엌일에 익숙한 그 주부분들도 처음에는 무진장 헤매는 그런 일을 장남이랍시고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넙죽넙죽 받아 먹을줄만 알았던 제가 배우려니 이게 참... ㅎㅎ
뭐 지금은 그래도 몇 달 배웠다고 좀 낫긴 합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어렵습니다.
실기 시험에 떨어진 것만 해도 벌써 세번째;;; 그나마 필기는 한 번에 붙은 게 다행일 지경이랄까;;
이제는 완전 독으로 오기로 도전하고 있는데(도대체 그 놈의 한식 조리사 자격증이 내 인생에 있어 뭐 중요한 거라고;;;) 어제가 바로 세번째 떨어진 시험날이었습니다.
물론 합격자 발표는 시험 그 다음 주 목요일에 발표지만 이번 시험에는 아예 제 시간에 완성도 못해 제출 자체를 못 했거든요;;;
제출을 못 했으니 당연히 탈락인데 이건 뭐, 이번에는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탈락인 것을 바로 알게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하더군요;;
그나마 좀 쉬운 과제들이 주로 출제된다는 아침 여덟시 반 시험을 일부러 골라 응시했는데...
출제된 과제가 매작과에 표고전이더라능;; 아놔;;


매작과는 밀가루를 생강즙으로 반죽하여 잠시 반죽을 숙성 시킨 다음, 밀대로 그 반죽을 밀어 납작하게 편 후 가로 5 센티 세로 2 센티의 직사각형 모양으로 성형하고 거기에 칼집을 내어 꽈배기 모양으로 만든 다음 적정한 온도로 가열한 식용유에 바삭하게 튀겨내어 설탕을 녹인 투명한 시럽에 버무려 마지막에 잣가루를 뿌려내는 전통 한과이고, 표고전은 물에 불린 표고 버섯을 기둥을 제거하고 속을 파서 두부와 함께 다져서 양념한 소고기를 채워넣은 후 은은한 온도로 가열한 프라이팬에 타지않게 구워내는 음식인데 둘 다 참 맛있습니다.
맛있는데... 문제는 두 놈 다 조리 과정 자체가 잔손질이 많은데다가 불을 많이 써서 시간을 많이 잡아 먹는 다는 거죠;;
쉬운 거 나오라고 일부러 아침 첫 타임 거 응시 했는데ㅠ,.ㅠ
식용유가 일인당 반통 씩이나 지급되는 걸 보고 과제 중 하나가 매작과임을 눈치채고는 긴장했지만 그래도 나름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해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매작과의 밀가루 반죽 숙성과 설탕 시럽 만드는 과정을 가장 먼저 하고 그 사이에 바로 표고전에 들어가 바삐 손을 놀려 표고전을 완성한 후 바로 숙성된 반죽으로 매작과 성형하고 튀겨 내면 그래도 승산이 있다고 마음을 다잡고 자신있게 조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머리속으로 정한 순서에 따라 표고전을 완성하고 매작과의 반죽을 성형하는 순간, "시간 다 됐다능~ 지금 이 시간 부터는 제출하셔도 안 받겠다능~"하는 시험관의 목소리가;;
그 말 직후에 제출한 사람의 작품도 칼 같이 안 받던데 이건 뭐... 저는 반죽을 성형하던 자세 그대로 과제와 재료들을 쓰레기 봉투에 버리고 대충 정리한 후 그대로 나와버렸습니다;


뭐 실기 시험 떨어진 게 처음도 아니었건만, 그래도 화가 나더군요.
특히 이번에는 아예 제출도 못 했다는 것에 화가 많이 났습니다.
그렇게 화가 났지만 뭐 누구 잘못도 아닌 제 능력부족 탓인데 어디다 마땅히 화를 풀데도 없어서 시험장 복도에서 혼자 굳은 얼굴로 조리사 위생모와 위생복, 또 앞치마를 벗어 정리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아이고 막투씨, 시험 잘 봤능교?"

돌아보니 저와 같이 수업을 듣고 있는 아주머니였는데 제 고향인 대구 사람이었습니다.
같은 동향 출신에 같은 수업을 듣고 있는 아주머니이니 반가운 게 인지상정이건만, 전혀 반갑지가 않았습니다.
일단 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인데다가 제가 몇가지 이유로 고향인 대구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 아주머니가 평소 무지하게... 진상, 밉상, 싸가지, 민폐, 무개념 뭐 이런 성격의 소유자인지라;;;
안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은데 별로 말을 섞고 싶지 않은 사람이 말을 걸어오니 더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무뚝뚝하게나마 받아주었습니다.

"예 뭐... 누님은 시험 잘 보셨슈?"
"아이고 내사 마, 정신이 한 개도 엄드라. 아직 안 배운 게 나와갖꼬~ 그래도 마 아예 못냈는 사람들도 반틈 넘든데 내는 내기는 냈다 오호호호"

-_-;;;

"...아 예, 뭐 그래도 냈다니까 잘 하셨네요. 나는 아예 내지도 못했슈"
"(오바하며)와? 우예됐동 내기는 냈어야지~ 막투씨는 내 보다 더 일찍 배운 사람인데 우예 내지도 못했을꽁? 오호호호"

-_-+

".........그러게 말유~ 아하하하하!!"
"오호호호호!!"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는 화를 간신히 억누르면서 억지 웃음을 짓던 저는 더 얘기하고 싶지 않아 대충 말을 맺고 집으로 가야겠다고 마음 먹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막투씨, 학원으로 갈끼제?"

이 아주머니가 갑자기 은근한 목소리로 이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뭐 보나마나 학원까지 비싼 택시 타고 가기 싫어 제 차를 좀 얻어타고 가고 싶다는 얘기였는데, 전혀 어려울 것 없는 부탁이었지만 싫은 사람이, 그것도 그냥 자연스럽게 부탁하는 것도 아니고 아부를 하듯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은근하게 묻는 것이 딱 질색이었습니다.
거기다 기분도 별로고 해서 그냥 바로 집으로 가고 싶었던 제가 그냥 집으로 갈 것이라고 말 하려는 순간, 짜증이나 화가 나면 관리가 잘 안되는 단점이 있는 제 표정을 읽었는지 이 아주머니가

"아니 막투씨~ 생각을 해봐봐 좀비씨나 내나 비싼 돈 주고 학원 다니는 거 아이가 그라믄 요리 한 개라도 더 배와야 되는 거 아이가 하루에 요리 두 개씩 배운다 아이가 하루 빠지봐라 얼매나 손해겠노? 학원 빠지면 안된다이~ 학원 가야된다이~ 막투씨 시험 또 떨어졌제? 담에는 붙어야제 맞제 그랄라면은 학원을 빼무면 안되제~ 어떻노 내 말이~ 맞제? 맞제? 오호호호"
  
라고, 무슨 타이거 J.K  랩하는 거 마냥 순식간에 말을... 라임까지 맞춰가며 쏟아내더군요;;
분명히 제가 싫어하는 기색을 읽었음에도 택시비 좀 아껴보겠다고 아부와 설교와 설득을 거침없이 오가는 화술을 구사하는 이 진상 아주머니가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어째 그 모습이 좀 측은하기도 한 마음이 든 저는 알았다며 학원으로 갈 거라며 각종 조리기구들이 가득 든 커다란 가방을 들고 주차장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걸으며 옆을 흘끗 보니 이 아주머니 목적을 달성해 낸... 더 없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따라오더군요.
그 모습을 보니 슬몃 웃음이 나면서 왠지 마음이 좀 누그러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뭐 사실 그냥 제가 짜증이 나 있었을 뿐 아주머니는 제게 잘못한 일도 없었는데 너무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내비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차장으로 나와 제 차로 다가가며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려는 순간... 제 차 오른쪽 뒷 타이어가 펑크가 나 바람이 다 빠져 있는 것을 보고 말았습니다;;;
아놔, 이 건 또 갑자기 왜 이래;;;;;


오늘 무슨 날인지, 시험도 망쳤는데 타이어까지 펑크 나다니;;;
다시금 밀려오는 짜증을 억누르며 일단 가지고 온 짐을 제 미니밴의 중간 좌석 문을 열어 중간 좌석에 밀어넣고 타이어를 살펴 보려는데 진상 아주머니가 갑자기 언성을 높히며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막투씨~ 짐을 여다 이래 넣으면 내는 어데로 타란 말이고? 짐을 여다 넣으면 우야노? 어? 타라는 기가 말라는 기가? 어?"

이건 뭐 마치 우아하게 뒷 좌석에 앉으려던 싸모가 뒷 좌석에 못 앉게 되자 화를 내며 자기 운전기사 나무라는 격이었습니다;;
가뜩이나 짜증이 해운대 앞 바다를 덮친 메가 쓰나미 마냥 몰려오고 있는데 이 눈치없는 진상 아주머니의 진상질 공격이 더해지자 저는 더 이상 참을 수없어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아 앞에 타요 앞에! 아니면 이 자리 옆 자리에 타던가! 아나 진짜! 내 차가 9인승인데 자리가 적어요? 자리가 없어? 왜 문도 열어 드릴까!" 
"아니 내 말은... 왜 화를 내고..."
"지금 열 안 받게 생겼어요? 이거 안 보이냐고요 차가 빵꾸가 났잖아요 아~"
"아... 빵꾸가 났구나..."

아 뭐 이런;;
간신히 화를 누른 저는 후방 램프 도어를 열고 타이어를 교체할 공구를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보험을 부를까도 생각했지만, 조용히 시험을 보는 시험장이 소란스러울 거 같아 그냥 제가 조용히 교체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공구를 꺼내고, 차량 밑 바닥에 수납되어 있는 스페어 타이어를 꺼내기 위해 볼트를 풀기 시작하는데 다시 진상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 막투씨, 우리 학원 안 가나?"

...볼트를 풀며 이 아주머니가 미친 건지, 아님 저를 놀리는 건지 심사숙고 하며 곰곰히 생각하고 있는데 재차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학원 끝나겠데이~ 빨리 가야 안하나~"
"...저 지금 뭐하고 있는데요?"
"아니~ 빵꾸 난 건 알겠는데~ 그래도 빨리 가야 안 하겠나~"
"빵꾸가 났는데 우예 빨리 가니껴?"
"오매야, 와 남의 말투를 따라하노~ 빵꾸가 났지만서도 지금은 학원에 가야 되니까... 빵꾸 난 거는 집에서 하고 일단은 그냥 학원 가면 안되겠나?"

...저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아주머니는 미친 아주머니였습니다.
아무리 차에 대해서 잘 몰라도, 타이어가 펑크 난 차가 움직일 수 없다는 것쯤은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이쯤되니 더 화를 내고 싶지도 않더군요.

"빵꾸가 났는데 어떻게 그냥 가요.  타이어를 갈아야 차가 움직이죠... 그냥 가면 차 부서지고 사고나요.  후... 이거 혼자 가는데 몇 십분 걸릴 건데 기다리실 거예요? 급하면 먼저 가시구요"

제 말이 끝나자마자였습니다.

"아~ 그라믄 진작 그래 얘기 했어야 되는 거 아이가? 괜히 시간만 잡아묵고 뭐고 이기?  와~~ 내, 진작에 택시타고 갈껄~ 내는 그냥 택시타고 갈란다 택시이이이이이~~"

라고 쏟아내더니 마침 지나가는 택시를 향해 간드러진 목소리로 외치며 달려가더군요.
그 순간 후다닥 쫓아가서 세배 빠른 샤아 킥으로 옆구리를 걷어 차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 정말이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습니다;;
마치 나 때문에 학원도 못 가고 있었다는 말 같잖습니까;;
진상 아주머니가 드디어 사라지는 꼴을 본 저는 다시 한숨을 푹 쉬며 풀다 만 스페어 타이어 거치대의 볼트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잘 풀리던 볼트가 갑자기 빡빡해지는 느낌이 들면서 풀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또 왜 이래...
몇 번을 돌려 보려 낑낑대던 저는 차를 구입할 때 같이 받은 이 짧은 렌치로는 풀기가 힘들다 싶었습니다.
쇠 파이프 같은 게 있으면 좋으련만...
산업인력관리공단 주차장에 그런 게 있을리가 만무한터라 저는 낙담하며 그냥 보험을 부를까 하는 생각을 다시 했습니다.
그러다 관리공단 옆에 자리잡은 고물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고물상이라면 쇠 파이프가 얼마든지 있을 터.
저는 공구를 다시 차에 넣은 후 락을 걸고 고물상으로 향했습니다.
갖가지 고철이 잔뜩 쌓여있는 고물상의 고철더미들을 살펴보니 과연 그냥 보기에도 공구로 쓰기 딱 좋은 쇠 파이프가 영롱한 빛을 발산하며 박혀 있었습니다.
그 놈을 쑥 뽑아 살펴 보고 있는데 고물상의 주인인듯한 아저씨 한 분이 다가 오시더군요.

"무슨 일이유?"
"아 예, 실례합니다. 저기 저는 저 옆에 자격증 시험 보러 온 사람인데요"
"근디유?"
"아 예 근데 시험을 치고 나와 보니까 타이어가 빵꾸가 나 있더라구요"
"다이아가 빵꾸 났는데 쇠 파이프는 왜유?"
"아 예, 저 지금 타이어를 갈고 있는데 제가 쓰는 공구가 너무 짧아서요 힘을 못 받아서 볼트하고 너트를 풀기가 힘들어서 그러는데... 이 파이프 좀 잠깐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금방 쓰고 갖다 드리겠습니다"
"..."
"예?"
"..."
"..."
"..."
"...파시는 건 어떨까요?"
"...오백원만 줘유~"

-,.-
뭐 하긴 고물상을 업으로 하시는 분이니...

"근데 제가 지금 지갑을 차에 놓고 와서 그런데 타이어 갈고 나서 이따가 돈 드리면 안 될까요?"
"..."
"..."
"...그래유 그람"

간신히 외상으로 사온 파이프를 들고 다시 주차장으로 온 저는 렌치에 파이프를 끼우고 힘껏 돌렸습니다.
그런데...
돌리자마자 쿵 소리가 나며 스페어 타이어가 거치대와 함께 떨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볼트를 다 풀어도 이렇게 급하게 떨어지지는 않는데... 이상한 생각이 든 저는 스페어 타이어 거치대를 살펴 보았습니다.
차량 바닥과 거치대를 연결해주는 볼트가 부러져 있었습니다;;
차가 오래되어 볼트와 결합부가 삭아 버렸는데 제가 무리하게 힘을 주자 그만 부러져 버린 것 같았습니다;;
아... 썅 오늘 찐짜;;;
이 상태로는 타이어를 갈아도 교체한 타이어를 거치대에 수납할 수 없고, 교체한 타이어는 후방 램프 도어 트렁크에 싣고 다닌다해도 거치대 고정 볼트가 부러진 이상 풀려 버린 거치대가 아스팔트 위로 질질 끌려 다니며 요란하게 불꽃을 일으킬 것이 뻔했습니다.
이 와중에도 신세기 사이버 포뮬러에서 불꽃을 화악 일으키며 달려가는 아스라다를 생각하던;;; 저는 일단 임시방편이나마 거치대를 묶어 고정시킬 끈 같은 것을 찾아 주차장을 헤매다가... 결국 아까의 고물상으로 다시 향했습니다;;;

"저 죄송한데 철사도 어떻게 좀..."
"..."
"..."
"..."
"저기..."
"...오백원"

그렇게 좀 전에 외상으로 산 파이프 값과 철사 값까지 천원을 지불한 후 주차장으로 돌아온 저는 철사... 라고 사오긴 했지만 사실은 좀 굵은 황동 전선을 이용해 거치대를 묶어 고정한 후 나사 식 잭키를 낑낑거리며 돌려 교체할 타이어를 들어 올리고 렌치와 파이프를 이용해 너트를 풀고 펑크는 타이어를 빼내고 스페어를 삽입한 다음 너트를 조이기 시작했는데 이 때 온 몸의 체중을 렌치에 실어 너트를 단단히 조였습니다.
군대에서 배운 장갑차 보기륜 너트 조이는 방법을 참 요긴하게 잘 써먹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군 생활을 한 경험이 사회 생활에 도움이 돠는 유일한 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씩 웃는 순간... 바지 쪽에서 뿌지직~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헉, 너트 조인다고 다리를 너무 벌리며 체중을 실었더니 바지가 터진건가;; 스판재질 등산복 입고 와서 그럴리가 없는데;;;
서둘러 엉덩이 부분을 만져 봤더니 다행히 바지는 터지지 않았는데 소리가 난 것으로 보아 아마도 땀에 젖은 트렁크 팬티가 터진 것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아무튼 교체한 펑크난 타이어를 트렁크에 싣고나니 땀이 온 몸을 적시고 있었고, 초여름의 시작을 알리듯 태양은 작렬하고 있었습니다.
심한 갈증을 느낀 저는 가방에서 백원짜리 동전 다섯 개를 꺼내어 조금 떨어져 있는 시험장 입구에 마련된 자판기로 걸어갔습니다.
그 자판기는 시원한 캔커피를 오백원에 팔고 있었지요.
자판기 앞에 서서 백원 짜리를 차례로 넣었는데 이상하게 자판기가 동전을 도로 토해놓는 것이었습니다.
몇 번을 시도해 봤지만 자판기는 백원짜리를 먹지 않았고, 투덜거린 저는 차에 둔 지갑 속 지폐를 가지러 다시 차로 터덜터덜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차에 두었으리라 생각했던 지갑은 차에 없었습니다.
아까 두번째로 고물상에 들렀을 때 지갑을 바지 뒷 주머니에 넣었었는데 그 것을 깜빡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아까 지폐를 가지러 가야겠다고 투덜거릴 때 이미 지폐를 가지고 있었고 도로 차로 올 필요가 없었다능... 아놔;;;
다시 투덜거리며 자판기로 걸어가 자판기 앞에 선 저는 천원 짜리를 꺼내기 위해 지갑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천원 짜리가 한 장도 없더군요;;;;;
만원 짜리 몇 장과 오천원 짜리 한 장만 있었습니다.
아오 썅~ 짜증;;;
결국 저는 음료수도 마시지 못하고 그냥 차로 돌아와 출발할 수 밖에 없었는데, 한 번 운전을 시작하자 중간에 차를 세워 편의점에 들른다던지 하는 일이 너무 피곤하고 귀찮아 그냥 목마름을 참고 집까지 와 버렸습니다.
아 이 무슨 운수대통한 날인지;;
왠지 집에 도착하면 제 방의 건프라들을 붙들고...

"이 놈의 눈깔! 이 놈의 눈깔! 설렁탕을 사 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를 외쳐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무리 저라도 그런 짓은 차마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에서 바지를 벗는데, 아니나 다를까 팬티가 무슨 모세가 홍해 바다 가르듯 반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허허 나 이 것 참...
저는 잠시 이 팬티를 버리지 말고 벽에다 걸어놓고 액운을 막아주는 부적으로 쓰면 어떨까 고민했지만 그런 짓 역시 차마 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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