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정신없는 날들이었다. 정신을 차린다는 게 이상해보일 정도였다. 그런 날들을 지나 장광삼은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 온갖 강과 바다를 돌아다니며 낚시로 보낸 1년이었다. 장광삼을 창밖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선거용 현수막을 해체하고 있었다. 장광삼은 중얼거렸다. 뭐 내가 찍는 사람은 당선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법이지. 원래 그렇게 예정된 것처럼. 항상 자기가 뽑는 사람이 당선되는 걸 보는 기분은 어떨까? 세상엔 그런 종류의 사람들도 존재할거야. 모든 선거에 투표를 하고 모든 선거에서 자신이 표를 던진 사람이 이긴다는 것. 이를테면, 자기 자신의 주문과 항상 다를 바 없는 싸구려 음료수를 내오는 커피숖에 앉아있는 그런 기분이 들까? 싸구려 주문을 넣었으니 싸구려 음료수가 나오는 것에 대해서 별다른 불만을 가지지도 않겠지. 뭐 그냥 그렇구나,라는 기분? 장광삼은 창가 옆의 자판기에 삼백원을 밀어 넣고 일반커피를 뽑았다. 나무랄 데 없는 자판기 커피의 정말 '일반'적인 맛. 장광삼은 생각했다. 천국에 간 사람들의 모든 배설물이 흘러드는 정화조에서는 이런 향과 맛이 나지 않을까?

 

장광삼은 커피를 한잔 마시고 한손으로 자판기를 어루만지면서 얼굴에 뿌듯한 웃음이 올라오는 걸 억지로 참았다. 누가 보는 것만 같아 부끄러웠다. 장광삼은 다시 사무실을 열기로 마음 먹으면서 제일 먼저 커다란 중고 자판기 한 대를 사무실에 들여 놨다. 커다란 자판기여야만 했다. 식당마다 비치된 작은 자판기에서는 어쩐지 자판기 커피 같은 맛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광삼은 종이컵을 입에 물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았다. '장미'. 6월이니까 '장미'를 피워야 한다. 5월에는 '라일락'을 피웠다. 장광삼은, 에, 그러니까,  음, 로, 로맨티스트였다. 자판기를 설치 한 후에는 심부름센터라는 간판을 탐정사무소로 바꾸어 달았다. 적어도 자신이 맡은 사건이 신문에 나오지 않았던가? 이제 탐정이라는 말이 소설 뿐 아니라 실제로도 정착되어야 한다고 장광삼은 생각했다. 똑똑똑.

 

여기... 탐정 사무소 아닌가요? 

생애 두번째 의뢰인이 문을 반쯤 열고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미녀였다.

맞습니다만?

설마했어요.

설마하다뇨?

심부름센터인 줄 알았거든요.

네. 거기까지. 우선 들어오시죠. 커피 한잔 하시겠습니까?

여자는 자판기를 한번 쳐다보고 고개를 저었다. 사양할게요. 방금 마시고 왔거든요. 그녀는 더이상 둘러볼 데도 없는 네 평짜리 사무실을 계속 둘러보았다. 이때 한 생각이 장광삼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바로 지금 내가 갖고있는 특별한 직관력을 발휘해서 이 여자가 처해있는 상황을 어느 정도 알겠다는 제스쳐를 취해야만 한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이런 종류의 강박은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장광삼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든 다 알겠다는 표정으로.

결혼은 하셨겠고, 애는 둘. 요즘 남편이 바람이 심하군요?

여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럼 그렇지.

저 결혼 안했거든요? 보면 모르나요? 보세요. 결혼 반지도 없잖아요.

장광삼은 괜히 화가 나 크게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왜 사람들은 결혼 반지 같은 걸 끼나 몰라! 그건 일종의 구속의 표시 아닌가?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대체 결혼 제도가 지금 시대에 맞다고 봐요? 엊그제 신문 봤어요? 이혼율이 얼마나 높은지 상상도 못할 정도라고요. 결혼이라는 제도가 얼마나 쓸모없는 건지 증명하는 거라고!

 

저기요.

여자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런 표정. 장광삼은 그런 표정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죄송해요, 라고 말할 때라는 것.

죄송합니다, 그만, 제가 또 성격을 못 이겨서... 하하하. 그래도 저 나쁜 사람은 아녜요! 제 표정을 보세요. 나쁜 사람 아니잖아요? 아 근데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아 이건 대체 무슨 얼척 없는 희극이람, 하고 여자는 생각하는 듯 했다.

여자는 고개를 한 바퀴 천천히 돌리고, 한숨을 폭 내쉰 다음 얘기를 시작했다.

 

그녀의 이름은 김일선. 하지만 모두 샤론이라 부른다. 나이는 서른, 어릴 때부터 죽는다는 것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곤 했다. 현재는 애인이 없다. 직업은 요가 강사. 하지만 직업 없이도 나라가 망할 때까지 대를 이어 살아갈 수 있는 부를 이룬 집안의 자제라고 한다. 종교는 없다. 외계인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스톤이라는 시츄를 한 마리 기르고 있고, 일란성 쌍둥이 언니가 있다. 5년 전부터 꿈을 꾸지 않는다. 그리고 꿈이 없어진 시점부터 죽임을 당하고 있다. 그것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건 명백한 사실이에요. 그때부터 전 살해당하고 있어요. 열흘에 한 번, 빠를 때는 삼일에 한번. 꿈이라고 혹은 정신 착란이라고 생각해봤어요. 하지만 아녜요. 그건 틀림 없어요. 그 점을 믿지 않는다면, 조사를 하실 필요는 없어요. 전 이미 정신과 상담도 받고 있고 제가 죽었다가 살아나는 사실에 대해서 종교 전문가, 생물학 전문가들과 논의를 하고 있으니까요.(장광삼은 아니 요즘 시대에 전문가를 믿나요?라고 빈정거렸지만, 이내 죄송하다고 말해야 했다) 살인 당할 때 얼마나 끔찍한지 당신 같은 사람은 모르겠죠. 산 채로 불에 태워지기도 하고, 땅에 매장되기도 해요. 그 느낌을 잊을 수 없어요. 반복하지만 전 부활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그런 것따위. 그저 누가 나를 계속 죽이고 있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있고 그것을 조사해달라고 이 하수구 같은 곳에 찾아온 겁니다. 매스컴을 타는 일을 원하지 않아요. 죄송한 말이지만, 이런 데서 저에 대한 말들이 나와봐야 그저 한낱 루저들이 뱉어내는 열폭에 지나지 않는다고들 생각하겠죠. 그래서 여기에 오게 된 거예요. 전 정말 더이상 죽고 싶지 않아요. 아니면 반대로 차라리 제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꼼짝할 수 없게 묶여있는 상태에서 당신의 그 볼록한 배에 오십차례나 송곳이 들어왔다 나가는 기분이 상상이 가나요? 아 이제는 정말 죽어버리겠구나...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을 잃게 되죠. 눈을 뜨면 커피숖에 있을 때도 있고, 응급실에 있을 때도 있어요. 그저 나는 기절하거나, 꿈을 꾼 것으로 '처리'되는 것 같아요. 몸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건 분명한 사실이라고요! 그리고는 그 삼일 뒤에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지금 나는 떨어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왜냐하면 나는 낙하산이 없는 채로 땅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거든요. 언젠가부터 나는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도 생겼죠. 저 위에는 나를 던져놓고 도망가는 듯한 비행기의 꽁무니가 보이고, 어디인지 모를 도시가 저 아래에서 밤불빛들을 밝히고 있는거죠. 그리고 나는 한없이 추락하는 겁니다. 정말 생생하게 기억해요. 땅바닥에 처박히기 전에 눈이 마주친 한 아이가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까지.

 

정말 끔찍하군요. 장광삼은 자신의 명함을 샤론에게 건네주며 말을 이었다.

제 이름이 무슨 뜻인줄 아시겠습니까?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세 개의 빛?

틀렸습니다. 가끔 어떤 현상에는 도무지 눈치채기 어려운 다른 의미가 있는 법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는, 알고 있는 잣대로 대충 의미를 재단하곤 하죠.

샤론의 얼굴에 가벼운 미소가 번졌다.

장광삼은 '장미'를 입에 물고 자판기의 버튼을 눌렀다. 카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창밖을 내다보니, 검을 옷을 입고 썬그라스를 낀 사람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기랄, 저 자식... 상투적이잖아. 하지만 조금은 다른 의미가 숨어 있겠지. 장광삼의 콧구멍이 벌름거렸다. 장광삼은 샤론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 더 얘기해 보시죠. 1) 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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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

1) 이 소설의 최종 분량은 7인분입니다. 7인분 소설. 7명이 쓰면 이 소설은 끝납니다. 마지막 주자는 산으로 향하는 스토리를 잘 매듭지어주시던지, 확실히 산으로 보내버리셔야만 합니다.

2) 참여 방법 : "찜"을 외치신 후(찜이라는 리플을 단 후), 예상하는 작성 완료시간을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찜"은 선착순입니다.

3) 불필요한 문자어와 외계어는 지양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앞에 쓴 사람과 시제와 시점을 맞추시면 더 깔끔한 소설을 함께 만들어내는 즐거움이 있다는 착각을 누려볼 수 있습니다.

4) 모든 게 각자의 몫이지만 그래도 나침반은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제목을 제가 설정했습니다. 그리고 소설 머리보다는 작성한 소설의 문단의 끝에 '1) 셜록'  '2)홈즈' 식으로 코멘트하기로 통일하는 편이 깔끔한 것 같아요.

5) 게시물의 제목 : 게시물의 제목은 제가 쓴 "[이어쓰기 소설1~7] <돌아온 탐정 장광삼-1>"을 참조해주세요. 그리고 이 규칙을 소설 끝에 달아주시면 다음 작성자들이 참고하기 쉬울 듯 합니다.

6) 아래에 '주)'를 마련했습니다. 참고사항은 아래 '주)'에 연결해주세요.

7) 연재는 메인 게시판에서 진행하고 마무리 지어진 글은 창작 게시판으로 옮기는 게 어떤가 생각합니다.

10) 명백한 오타나 오문 같은 경우는 후발 주자가 수정하셔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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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오랜만의 이어쓰기 소설이네요. 잘 돼야 할텐데. - 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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