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요전에 썼듯이, 만화가~만화가 지망생들 모임에 가보곤 하게 됐어요. 다시 만화가로 슬슬 돌아올 조짐이 보여서요.



 2.만화가 모임에 가보니 다양한 군상들이 모이는 보통의 사교 모임과는 굉장히 달랐어요. 뭐랄까...거기 모인 모든 사람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고 해야 하나요? 일단 다들 만화를 좋아하며, 만화를 그리는 걸 좋아한다는 공통점만으로도 대화의 낭비가 없었어요. 말이 헛돌거나, 누구 혼자 이상한 소리로 튀려고 하거나, 이성의 폰번을 따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거나...하는 일이 없었더랬죠. 그야 이건 모임 자체의 특성도 있겠지만 모인 사람들의 인격도 작용했겠죠.



 3.하지만 이런 일체감을 느끼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중에 대학교에 다시 다니게 되면 이런 종류의 과를 골라서 가지는 말아야겠다고요.


 왜냐면, 만화가든 소설가든 감독이든 뭐든...'무언가를 너무 확실히' 지망하고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분명하거든요. 그야 자신이 그걸 잘 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불안해하긴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무얼 하고 싶은지 고민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너무나 분명한' 사람이 되어 버린단 말이죠.


 대학의 사람들에게서 느낀 좋은 느낌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유동적인 부분이었거든요. 아직 자신이 뭘할 수 있는지 모르고, 뭐가 되고 싶은지도 잘 모르는 사람들 말이죠. 그래서 나중에 대학에 간다면 시각디자인과 같은, 폭넓은 분야를 아우르는 과에 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너무나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그 방향을 보며 똑바로 나아가는 사람들과 있는 건 좋긴 해요. 하지만 몇 년을 같이 있을 사람들을 정하라면, 방황하는 사람들과 있고 싶어요. 몇 달 몇년이나 바뀌지 않는 사람들과 몇년동안 함께 있으면 재미가 없을 것 같거든요.



 4.휴.



 5.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너무 방황하는 건 보기 싫고...적당한 수준의 방향성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문창과를 가야하는 걸까요? 흠...문창과가 개설된 학교들 중 그나마 괜찮은 학교가 중앙대던데. 글쎄요...중앙대라. 나는 마포구에 있는 학교를 다니고 싶은데 말이죠. 홍대-연대-이화여대 중 하나 말이죠.


 역시 미술쪽 학교를 가야하나...하지만 솔직이 과제로서의 그림은 정말 그리기 싫어요. 낙서하는 건 좋아하지만 누가 그리라고 해서 그리는 건 정말...좀; 미술쪽 학교를 간다면 아예 생소한 곳인 서양화과 같은 곳을 갈것같아요.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건 그림도 글도 아닌 '이야기'예요.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 말이예요. '이야기'에 관한 학과는 뭐가 있을까요? 그런 학과에 가면 과제 삼아서 이야기를 만들고, 다시 그 이야기를 웹툰이나 웹소설 연재에 써먹는 선순환 구조가 가능할 것 같은데.


 

 6.위에는 '그런 학과에 가면 과제 삼아서 이야기를 만들고, 다시 그 이야기를 웹툰이나 웹소설 연재에 써먹는 선순환 구조가 가능할 것 같은데.'라고 썼지만 정말 저렇게 될까요?


 내가 대학교에 갔다면 그땐 돈이 많아졌다...라기보다 어쨌든 경제 활동은 거의 안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거든요. 놀기 위해 대학교에 가는 건데 거기서 또 일할 궁리를 하고 있지는 않겠죠. 뭐 그때가 되면 또 모르지만. 만화도 한동안 안 그리고 있으면 그리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리기도 하거든요.



 7.만약 학교에 또 가면 그때는 밤에 학우들과 뭘하게 될까요? 아마도 대학 근처의 부대찌개집이나 닭도리탕집에서 소주를 한잔 하면서 그들의 꿈을 들으며 보낼 것 같아요. 나야 뭐...이제 와서 꿈이 뭐냐고 물어봤자 어제보다 더 부자가 되는 것뿐이니까요.


 정확히는 사람들의 꿈을 듣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예요. 어차피 젊고, 젊은만큼 치기어린 놈들의 꿈 따윈 매번 바뀌니까요. 하지만 한가지는 진짜거든요. 그들이 자신의 꿈에 대해 말할 때 짓는 그들의 표정이요. 그걸 보고 싶은거예요. 나는 더이상 나를 잘 믿지 않게 됐지만, 걔네들은 스스로를 믿을 나이니까요. 그리고 스스로를 믿는 사람들이 그들의 꿈에 대해 말할 때 그들이 짓는 표정...여러분은 그걸 본 적 있나요? 그 표정에는 행복감이 넘쳐흐르는 법이죠. 


 그러니까 나는 뱀파이어가 되고 싶어서 대학에 가는 건지도 모르죠 어쩌면요. 젊은이들의 피를 빨아먹는 건 아니지만 그들이 뿜어내는 생기와 희망...오오라를 느끼고 들이마시고 싶어하는 거니까요.



 8.하지만 '너무나 분명한' 젊은이들에게선 그걸 빨아먹기가 힘든 거예요. 왜냐면 그들은 바라보는 곳이 정해진 만큼 이 업계의 경쟁이나 현실적인 페이, 최종가능성을 어느정도 점칠 수 있거든요. 


 목표가 확고한 사람들은 자신의 가능성을 점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그들에게서 보고 싶은 표정을 지을 수 없게 돼요. 내가 보고, 들이마시고 싶을 정도의 표정을 짓는 사람은 현실을 아직 잘 모르는 사람뿐인 거예요. 


 ...아니면 진짜 천재이거나요. 하지만 그런 사람을 어디선가 만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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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부터 대학에 언젠가 다시 갈거라는 일기를 썼죠. 하지만 그걸 쓰면서도 스스로 왜 가고 싶은지는 잘 몰랐어요.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아요. 


 자신을 믿는 사람을 보러 가기 위해 대학을 가고 싶어한다는 걸 말이죠. 나는 이제 자신을 믿는 게 아니라 현실을 믿게 됐거든요. 그리고 한번 현실을 믿게 되어버리면, 다시는 자신을 믿는 사람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거예요. 왜냐면 낙관은 무지에서부터 오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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