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호텔의 용도)

2020.03.14 03:50

안유미 조회 수:817


 1.오래전 베이츠모텔이 방영할 때 인상깊은 장면이 있었어요. 노마의 남편이 노마의 영수증을 보고 '이 여편네가 또 어딜 갔다 온 거야!'라고 윽박지르자 노마가 '기분이 좆같아서 호텔 한번 갔다왔어.'라고 말하는 부분이요. 뉘앙스상 혼자 갔다 왔다는 게 분명했고요.


 이 장면에서 '대체 왜 호텔을 혼자 갔다 오는 거야?'라는 의문이 들었거든요. 전에 썼듯이 호텔이란 곳은 누군가와 같이 가지 않으면 모텔만도 못해요. 방안에 pc나 랩탑도 구비가 안 되어 있으니까요. 호텔을 쉬다 오는 곳이 아니라 파티룸 대용으로 쓰는 내게는 잘 이해가 안 갔어요. 호텔의 부대시설을 이용하는 재미가 있더라도 밤이 되면 꼼짝없이 혼자 보내야 하니까요. 


 하지만 최근엔 아주 가끔씩은 호텔에 혼자 갔다오곤 해요. 그야 여기서 혼자라는 건 체크인하는 시점에 혼자라는 뜻이예요. 완전히 혼자는 별로니까 낮에 누굴 불러서 라운지에 가거나 운동을 하곤 해요. 밤에는 누굴 불러내지 못하면 나가서 놀다가 새벽에 돌아와서 자고 아침을 먹거나 하죠. 나는 구두쇠이기 때문에 호텔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더라도, 어지간하면 조식 시간엔 다시 돌아와서 조식을 먹어요. 


 

 2.각자의 성향과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호텔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건 동선이예요. 전에 썼듯이 투숙할 호텔을 고르는 단계에서는 그 호텔이 얼마나 좋은가를 눈여겨보지만 몇 개 정도 추려진 후에는 동선이 중요하죠. 나는 이리 뛰었다 저리 뛰었다 하는 걸 싫어하거든요. 


 물론 호텔 자체가 큰 건 좋아해요. 하지만 호텔 자체가 큰 것과 동선이 꼬여 있는 건 별개예요. 콘래드나 동리엇이나 머큐어처럼 같은 층 안에서 피트니스와 수영장과 라운지와 스파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걸 좋아하죠. 옛 고터메리엇이나 소공동 롯데처럼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하는 건 별로예요. 나는 호텔에 가도 방안에 잘 있지 않거든요. 늘 룸이 아닌 어딘가에 있곤 해요. 사람들을 모을 때가 아니면요. 그러니까 호캉스를 할 용도의 호텔은 동선이 가장 중요하다...인 거예요.



 3.그리고 사람들을 모으려고 호텔을 잡을 때는 다른 요소를 봐요. 파티나 모임용으로는 콘래드나 동대문메리어트 같은 곳이 좋아요. 왜냐면 아무리 큰 스위트룸을 잡아도 역시 사람이 여러명씩 올라가는 걸 매니저가 너무 봐버리면 창피하거든요. 조식까지 먹을 사람들은 숙박 인원에 넣어서 3~5인 정도 채우긴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걸 매니저에게 보여지면 왠지 쪽팔리니까요.


 그래서 파티나 모임을 하는데 사람이 6명 이상 모이면 로비 자체가 엄청 커서 누가 드나드는지 신경쓸 수 없는 호텔로 골라요. 한 5명 정도까지는 괜찮겠지만 그 이상으로 사람들이 모이면 눈치가 좀 보이거든요. 나는 드래곤시티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랜드머큐어는 로비에서 누가 들어가고 나오는지 계속 감시당하는 기분이라 숙박인원보다 더 많은 사람이 오면 좀 쫄려요.


 어쨌든 그 다음 보는 건 룸의 크기예요. 앙투아네트 공주라면 '스위트룸이 작으면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을 잡으면 될 텐데'라고 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부자가 아니니까요. 가성비를 신경써야 하죠. 동급 사이즈의 스위트룸인데도 어떤 호텔은 20평으로 된 곳도 있고 어떤 호텔은 30평정도 되는 곳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모임용으로 신라나 소공동롯데나 시그니엘이나 포시즌스는 아웃. 프레지덴셜 바로 아래의 룸을 잡으면 30평+@정도 되는 동리엇이나 반얀트리, 콘래드가 좋죠. 


 파티나 모임 용도일 때는 지하에 마트나 다양한 포장음식점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면 좀더 좋아요. IFC몰로 이어지는 콘래드나 삼성 오크우드처럼요. 뭔가 모자란다 싶으면 내려가서 사오면 되니까요. 


 위에 쓴 것들을 모두 충족시키는 호텔이라면 콘래드이긴 한데...거기에는 무언가 신경쓰이는 게 하나 있어요. 그 이유 때문에 역시 1픽은 아니예요.



 4.휴.



 5.그리고 여자랑 갈 때는 글쎄요. 호텔에 같이 가는 여자라면 둘 중 하나겠죠. 앞으로 친해지고 싶은 여자이거나 이미 친해진 여자예요. 그리고 여자와 놀러간다면 어디를 갈지는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 여자가 가고 싶어하는 곳을 가는 법이겠죠. 한가지 신기한 건, 여자들의 인식 속에서는 반얀트리가 마치 최고의 호텔인 것처럼 정해져 있나봐요. 아니 뭐 그랬던 적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시그니엘에 포시즌스에 파라다이스시티 등등...입지조건만 빼면 훨씬 좋은 호텔들이 많이 생겼죠. 


 전에 호텔 얘기에서 썼듯이 나는 호텔은 때깔과 하드웨어가 중요하다고 여기거든요. 리모델링을 했든 관리를 잘 했든 아무리 유명한 브랜드든간에, 완전히 갈아엎지 않은 이상 낡은 호텔은 낡은 호텔일 뿐이예요. 그리고 그건 반얀트리도 그렇고요. 반얀트리를 가자고 하는 여자들에게 '이봐 그런데 반얀트리에 마지막으로 언제 가봤어?'라고 물으면 '가본 적 없어.'라거나 바에만 가봤다는 대답이 많이 돌아오곤 해요. 


 가보지도 않은 호텔을 어떻게 좋다고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곤 하지만 뭐 일본인들도 파리에 가기 전까지는 파리가 멋진 도시라고 믿곤 하니까요. 아무래도 반얀트리가 좋다는 건, 오래되고 과장된 소문이 몇몇 사람들의 뇌리에 아직도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 같아요. 이제는 2020년이죠. 허세를 빼면 드래곤시티가 훨씬 나아요. 때깔과 하드웨어가 좋으면 그 안에 채워지는 소프트웨어는 자연스럽게 좋은 수준으로 맞춰지죠.



 6.최근에 호텔에 많이 다닌다는 사람들의 블로그 글을 보니 의외로 플라자호텔과 르메르디앙 호텔의 평이 좋더군요. 플라자호텔은 허세가 모자란 것 같아서 안 가봤고 르메르디앙은 그렇게 좋다는 건 못느꼈거든요.


 그야 위에는 '허세를 빼면'같은 말을 쓰긴 했지만 호텔은 원래 허세로 가는 곳이니까요. 아니면 가성비를 보고 가거나요. 플라자호텔은 허세로 가기엔 허세가 부족하고 가성비를 보고 가기엔 가성비도 별로인 것 같아서 안 갔었어요. 한데 호텔 블로그에서 극찬을 하는 걸 보고 뭐가 있나 싶어서 한번 가볼 예정이예요. 전염병 사태가 좀 끝나면요.


 르메르디앙은 글쎄요. 가보긴 했지만 블로그에서 칭찬하는 요소들에 대해 나는 깐깐히 보지 않거든요. 직원의 응대라던가 뭐 그런 부분이요. 호텔 직원이 뭐 월급 수천만원 받는 사람도 아닌데 친절함 이상의 친절함을 요구하는 건 좀 이상하잖아요. 그들의 월급만큼만 친절하면 된다고 나는 생각해요. 하여간 르메르디앙은 버닝썬 때문에 '범죄 호텔'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어요. 게다가 허세도 모자라고 별로 근본도 없어 보이고. 앞으로도 딱히 안갈것 같아요. 너무 자주 가는 도심에 있어서 비일상적인 곳에 왔다는 느낌도 안 들고.



 7.사실 호텔에서 큰돈 안 쓰고도 '진정한 친절'을 경험하려면 그들의 긴장감이 최고조일 때 가는 게 좋아요. 전에 썼듯이 아무리 좋은 호텔도 느슨해지면 품질도 빠릿빠릿함도 떨어지고 뭐 그러니까요. 어떤 호텔이 리모델링한 직후나 막 열었을 때 가보면 '이렇게 친절해도 되나'싶을 정도로 친절하거든요. 


 하지만 호텔에서 지나친 친절함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친절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긴장하기를 바라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그런 건 좋아하지 않아요. 돈을 낸것만큼만 대접받고 싶거든요. 돈을 낸것보다 더한 친절과 대접을 바라는 건 도둑놈 심보라고 생각해요.



 8.요즘은 워낙 안가서 그런지 호캉스나 한번쯤 가보고 싶어요. 왠지 지금 호텔에 가면 업그레이드를 한번쯤 해줄 것 같기도 하거든요. 나는 룸 업그레이드를 거의 받아본 적이 없어요. 남들은 그렇게 자주 받는다는데. 물론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짐작갈 만한 이유가 몇개 있지만요.


 정말 가고싶긴한데...괜히 잘못 움직였다가 바보같이 전염병에 걸리면 안 되니까 웬만하면 참아야죠. 문제는 전염병이 이제 시작되는 모양새란 말이예요. 의사들 말처럼 이 바이러스가 날씨가 따뜻해지면 극적으로 사라지는 종류의 것이었으면 좋겠네요. 사람들을 못 만나니 너무 재미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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