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한 세상, 심란한 마음

2020.03.14 17:29

어디로갈까 조회 수:1207

1. 대학시절, 과 전체가 공동책임져야 할 불미스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은사님이 꾸중 대신 하셨던 말씀이 의식의 수면 위에 떠올라 있습니다. 
"게으른 학생이 좋아하는 선생은 안도감을 주는 선생이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걸 다시 멋있게 말해주는 선생.
그러나 너희가 요구해야 하는 건 너희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을 제시하는 선생이다. 지식의 넓이와 깊이 문제가 아니라, 너희에게 낯선 세계를 낯설게 보여주므로써 지금까지 너희가 살아온 방식을 불편하게 하는 선생을 말하는 것이다."

'선생' 자리에다 작가/철학자/예술가/ 정치인을 대입해도 통할 지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즘 한국 정치계의 흐름을 보노라면 대중이 듣고 싶은 말을 해줘서 안도감을 주는 정치인이 역시 인기 갑인 것 같습니다. 낯선 주장과 언설로 걱정/불안하게 만드는 정치인은 분열분자로 낙인찍혀 제쳐지는데, 그런 인물이 없는 정치란 상상만으로도 오싹한 나라 아닌가요? 
살이 부딪고 피가 튄 역사와 이 시대의 안이한 욕망이 충돌하는 현장을, 그것이 앞으로 야기할 비극을, 먼눈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세종이 진저리쳤 듯 '여뀌잎처럼 작은 나라에서 간장종지 같은 마음으로 당쟁정치 하는 인간들'이 왜 그리 많은 건지. - -

2. 한때 밈[meme]이란 개념 - 계속 변화하고 진화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파되는 정보나 아이디어- 가 주목받았죠. 그러나 이젠 사람들의 관심에서 밀려난 듯싶어요. 밈을 파생시킨 유전자가 결정론적 개념이라서 그런 걸까요. 
아무튼 covid-19가 어찌저찌 일단 마무리되더라도, 이 바이러스는 인간과 어떤 식으로든 공생 관계를 맺고 서로 던지고 담으며 앞으로 쭉 같이 가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그런 관계에서 인간은  진화된 행위 양식을 발견하게 되기 마련인데,  결과 중심이 아닌 과정 중심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라 밈과는 궤를 달리하게 되는 것 아닐까 싶어요.

3. 어제 단골 카페에 갔더니 손님이 확 줄었다며 주인이 시무룩해 하더군요. 그러면서 한마디 던지기를  " 앞으론 인간을 포함해서 이런저런 재앙들끼리 경쟁하는 세상이 도래하겠죠?"
자기만 해도 지구의 기후변화를 걱정해서 코로나 사태 이전엔 자주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나, 몇 주째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대형 SUV 자차만을 사용하는  걸로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는 토로였어요. 여전히 지구 온난화라는 재앙의 바운더리에 있지만, '일단 살아남아야하는' 초근접 재앙 앞에서는 내 목숨이 먼저여서 지구 안전에는 과감하게 눈감게 되더라고. - -

그의 말을 듣노라니 제임스 러브록이 주장한 '가이아 이론'이 떠오르더군요. 러브록의 견해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살아있는 거대한 유기체이고, 지구의 생물권은 환경에 적응하기만 하는 소극적인 존재가 아니라 지구의 물리화학적 환경을 변화시키는 능동적인 존재라죠.
그렇다면 covid 19 바이러스는 인간에 대한 비인간으로서  행위자actant 연결망을 촉발하는 소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인데요. 그래서 한때 주목받았던 밈이 사람들의 관심에서 밀려난 것인지도...

4. 우리보다 뒤늦게 서유럽이 초토화되고 있는 중이라 업무에 여러 차질이 생기고 있습니다.  동료들의 출장이 취소되어서 온라인으로만 소통하노라니 진행도 더디고 의외의 문제들이 불거져나오네요. 만약 이 바이러스 사태가 장기적 국면으로 돌입하여 이런 식의 업무 모드가 계속되면,  제 체력보다 정신력이 먼저 손들고 나가떨어질런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같은 재앙 경쟁의 시대에는 전 시대에게서 전해받은 지식이 많은 사람보다 위기상황의 매뉴얼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더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겠다는 생각이 확연히 듭니다.

5. 뜬금없이 떠오르는 햄릿의 독백.
"호두껍데기 속에 고립되어 있어도 악몽만 꾸지 않는다면, 나는 무한차원의 왕이다."
(듀게인 모두 무한차원의 왕/여왕으로 이 위기를 지나시기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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