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표시 의미 없는 영화가 아니냐구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봤다가 꽤나 실망했습니다.



김형욱 암살이랑 10.26을 한두달쯤의 시간에 우겨넣고 일종의 인과관계로 묶었는데 이게 참 억지로 보였어요. 역사랑도, 심지어 원작과도 전혀 관계 없음. <양계장 모이> 썰은 2000년대 중반쯤 흘러나온 이야기고 원작은 90년대에 출판됬으니까요. 그냥 <남산의 부장들> 이란 기가막힌 제목만 빌려오지 않았나 싶어요. 따지고보면 영화는 남산의 부장<들> 이라고도 하기 뭣한게, 김재규랑 김형욱말고 다른 중정 부장들은 나오지도 않거든요. 제목에 걸맞게 아예 초대 부장 김종필부터 중간에 이후락도 연대기 식으로 집어넣었담 덜 지루했을텐데. 원작 자체가 중정 부장들의 살벌한 에피소드 모음에 가까운데요 뭐. JP-박통 갈등이나 이후락 비밀 방북같은거요. 


대신 영화를 가득채운 영상은...네, 이병헌의 중절모와 칼각 트렌치코트 연미복 영상화보 되겠습니다. 예고편부터 살짝 불안하긴 했습니다만 이토록 이야기 없이 눈만 호강하는 영화일 줄이야. 이병헌 김부장 패션이랑 이성민 박통 연기로 눈은 즐거웠습니다만 워싱턴디씨나 파리는 굳이 왜 넣었나 싶었더랩니다. 한 나라의 2인자이자 정보기관 수장이 직접, 혼자서, <조용히> 전임자를 손봐주러 미국출장 간다는 설정은 너무나 무리수인것. 이병헌 김부장의 미국 입국 공항 패션만큼이나 말이 안됨. 퍼스트 타고 갔다 쳐도 12시간 넘게 비행기에 있다 나온 사람 옷이 저렇게 주름 하나 없다고요? 그런데 저 시절에 김포-워싱턴디씨 직항이 있었나요?;; 


워싱턴 디씨 얘기를 좀 더 하자면, 프레이저 청문회 씬은 어차피 실내니까 현지 야외 촬영 불필요할테구요. 전직 부장 곽도원이 일종의 워싱턴 디씨 1일 여행가이드(...) 가 되서 이병헌 김부장을 끌고 다니며 이런 대사들을 칩니다. 링컨 동상 앞에서 "저 양반도 총맞아 죽었지?", 아이들 웃음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 같은 (=배경음으로 깔린)  공원 벤치에 앉아 "차암...자유롭다" (아련),  모뉴먼트가 뒤로 보이는 가운데 "너 배신자 이아고를 아냐?"  70년대 한국 정보기관 수장들의 가상대화라기엔 성의없이 짜낸 티가 너무 심해서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 특히 마지막이요. 중국 삼국지나 일본 전국지에 차고 넘치는 배신자, 2인자 캐릭터 아무나 갖고 오는 편이 훨씬 70년대 아저씨들 대화스럽지 않았을까요?! 관객들도 좀 더 편하게 볼 수 있구요. 셰익스피어따위 말구요  손자병법 격언도 괜찮겠네요. 도대체 워싱턴디씨 야외에서 찍어야 할 이유가 뭔지. 링컨 동상, 모뉴먼트 따위 굳이 넣야겠음 씨지처리하고 차라리 중후반부에 아주 잠깐 나오는 70년대 명동 거리 씬이 좀 더 길었더람 좋았을텐데. 2019년에 찍었음서 70년대라고 어색하게 주장하는 워싱턴디씨의 몇몇 관광포인트보담 칼라풀하게 재현된 70년대 명동 거리를 보고 싶습니다요. 


이병헌 김부장...연기가 문제는 아니죠. 다만 역대 최고로 나사빠진 김재규로 기억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거의 매 등장 씬에서 이 양반은 단정함을 넘어 가히 강박에 가까운 딱 떨어진 수트핏을 보이는데  거기다 언제나 <각하> 와 함께, <각하>의 곁에 있겠단 대사가 더해지니까 일순 로맨스소설의 집착캐릭터가 되버리데요??  


기억합니다. 막상막하로 깔끔한 수트핏, 그러나 15년 더 젊은 얼굴의 이병헌이 연기한 <달콤한 인생> 의 선우요. 도입부에서 이병헌 선우가  본인이 관리하는 청담동 호텔 식당에서 혼자 아이스크림인지 초콜렛인지 티스푼으로 조금씩 우아하게 떠먹는 씬이 이 영화에선 출장지인 워싱턴디씨에서 혼자 와인을 홀짝이는 씬으로 되풀이되네요. 재활용이건 오마쥬건 다 좋은데 문제는 빌려온게 껍데기 뿐이란거. 이병헌 선우는 곧이어 말안듣는 놈들을 직접 후드려팸으로써 관객에게 얼굴이고 수트빨이고 초콜렛 아이스크림이고 결국 이놈의 본질은 조폭양아치임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요. 물론 동시에 이 시점에선 필요 이상의 피는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이 놈이  단시간에 효율적으로 유능하게 일하는구나;; 하는 어떤 이미지를 심기도 하죠. 그런데 이병헌 김부장은? 마지막 10.26 총격을 빼면 이 사람이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은 단 하나도 없어요. 남산  대공분실에서 옆방의 비명소리가 들리긴 합니다만 듣기 괴로울 정도는 아니고 스쳐가듯 지나가는 장면이라 크게 신경쓰이진 않죠.


물론 한 나라의 2인자 씩이나 되신 분이 친히 주먹을 휘두를 필요까진 없다쳐도 이병헌 김부장은 형편없이 무능하기까지 하니 답이 없습니다. CIA에 털린건 차라리 그렇다 쳐도 본인 부하한테까지 통수맞네요. 기껏 미국 출장까지 가서 가져온 전직 회고록 원고가 본인 부하 중 누군가에 의해 무려 정보부 금고에서 간단하게 일본으로 새어나가요. 조사도 하는둥 마는둥하니 진상 밝히기에 별 관심이 없죠. 명색 한나라의 정보기관 수장인데  대외비유지와 조직관리 모두 엉망인 이병헌 김부장 목이 즉각 날아가지 않는 이유가 궁금할 지경입니다.  


이성민 박통이 노발대발하면서도 이병헌 김부장을 자르진 않는 이유로 영화는 두 가지 설정을 제시합니다. 이병헌 김부장이 박통의 <술상무>이자 5.16 <가담자> 라는데 둘다 사실도 아니고 설득력도 없죠...이병헌 얼굴이랑 수트빨, 집착에 감동해서라면 납득할지도 쓸데없이 해외출장비랑 조직운영비만 축내고 시키는 일은 더럽게 못하는 이병헌 김부장은 비 쫄쫄 맞으며 도둑고양이처럼 안가의 벽을 타고 올라가 박통과 차지철의 술자리를 도청합니다. 상관 도청이란 직권 남용 하는 와중에 하필  그것도 한밤의 술자리라니 찌질하네요. 그런데 박통이 자기 욕 하는거 듣곤 훌쩍훌쩍 울기까지? 이쯤되면 일개 <청담동조폭>  선우보다도 시원찮은 이 사람이 당시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조직의 수장이란 영화의 설정은 힘을 잃습니다. 막판에 육본으로 차 안돌리고 계획대로 중정에 갔어도 일이 풀렸을지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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