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죠. 원래는 극장 개봉용으로 만들어졌는데 코로나 때문에 길을 잃고 헤매다 결국 넷플릭스가 꿀꺽. 최신작에 대한 예우로 스포일러는 없게 적을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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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핸드폰을 잃어버린 박신혜가 한동안 떠나 있던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아빠는 이미 어렸을 때 죽었고 엄마는 병 때문에 죽을락 말락하고 있으니 상황이 아름답진 않아요. 그나마 그 엄마와의 관계도 안 좋습니다. 초반엔 설명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빠의 죽음에 엄마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엄마를 병원에 입원 시켜 놓았으니 시골 외딴 커다란 2층짜리 단독 주택(1, 2층 합하면 100평이랍니다)에 혼자 들어가 지내야 하니 가뜩이나 무서운데 집 전화기로 갑자기 괴상한 전화가 걸려옵니다. 이미 다 알고 계시듯이 그건 20년 전 과거로 연결된 전화이고. 어찌저찌 전화 속 동갑내기 여자애랑 친구가 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내요. 알고 보니 같은 집에 사는 아이였던 거 있죠!! 그러다 주인공의 사정을 알게 된 그 친구의 호의로 아빠도 살려냈네요!! 덕택에 완전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박신혜는 그 아이가 곧 죽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가뜩이나 천성이 상냥한 데다가 이미 크나큰 은혜까지 입은 신혜씨는 자신이 얻어낸 정보를 활용해 그 아이를 살려내는데...



 - 요즘 들어 이런 소재의 이야기들이 진짜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시간 여행, 타임 루프, 다른 시간대와 소통하게된 사람들의 이야기 같은 것 말이죠. 너무 흔해지니 신선도가 떨어지는 느낌도 들지만 그만큼 장르물들이 많이 쏟아져 나온다는 의미도 되니 전 좋게 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거기에 나름 신선한 아이디어 하나를 넣었죠. 과거의 미친 x로부터 협박당하는 현재의 주인공이 어떻게든 벗어나보려고 몸부림 치는 이야기요. 극중에서 대사로도 한 번 언급되듯이 과거의 인물은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현재의 인물을 해칠 수 있지만 그 역은 성립이 안 되니 악몽도 이런 악몽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이런 설정을 꽤 잘 살려서 짜여져 있어요. 아주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 다만 이런 이야기들이 갖는 한계들 역시 그대로 갖고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먼저 이 시공 초월 통화... 라는 핵심 기믹이 전혀 설명되지가 않죠. '일단 그런 셈 칩시다! 대신 재밌는 얘기 들려 드릴게요!!!' 라는 작가의 하소연이 들리는 듯한. ㅋㅋㅋㅋ 걍 어느 시점부턴가 통화가 가능해지면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똑같이 흐른다는 게 기본 설정인데. 어째서 이런 통화가 가능해졌는지 단 한 마디의 설명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자기장 태풍이라든가, 근처 어딘가의 과학 실험이라든가, 혹은 신이 내린 운명이라든가. 보통은 뭐라도 한 마디 정도는 흘리듯 던져주기라도 하는데 이 영화는 그딴 게 그냥 아예 없습니다. 영화 속 상황들을 보면 과거와 현재의 그 전화기들은 그냥 워키토키(...)가 되어 집어 들고 무슨 번호를 누르든 무조건 서로에게만 연결되는 모양인데 그것도 너무나 부자연스럽고 어색하구요.


 과거에서 그 미친 놈이 뭔 짓을 저지를 때마다 주인공의 현재가 바뀌는 걸로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처음 한 두 번은 그럭저럭이지만 뒤로 갈 수록 이 '현재의 변화'가 지나치게 작가 편할대로 흘러간다는 혐의도 지울 수 없습니다. 자동차 운전 중에 벌어지는 일이 대표적이고... 엄밀히 말해서 이 이야기 속의 룰대로라면 마지막에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단 한 번의 기회는 애초에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보는 동안엔 강한 몰입도와 몰아치는 스피드 때문에 얼떨결에 넘어가게 되지만 다 보고 나서 잠시만 생각해보면 이 영화의 막판 20분 동안 벌어지는 일들은 그냥 사기에요. 갑자기 주인공만 시공의 변화에서 격리된 채 혼자 둥둥 떠다니는 존재가 되어 있는 거죠. 근데 그러면서도 과거에서 벌어지는 일에 실시간으로 영향은 받고 있으니 이건 뭐... ㅋㅋㅋㅋ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습니다.


 일단 배우들이 참 좋습니다. 박신혜는 현재의 불쌍한 젊은이 역할을 맡고 안정적으로 노련하게 그 불쌍함을 펼쳐 줍니다. 사실 상당히 한국 드라마스런 연기들인데 어쨌거나 모자람 없이 능숙하고 자연스러워서 보는 사람들의 감정 이입을 잘 이끌어 줘요.

 그리고 박신혜가 그러는 동안 우리의 전종서님께서 대한민국 영화 사상 역대급의 싸이코 연기를 펼쳐주며 공포와 위기감을 만들어 주는 거죠. 벌써 사방에서 극찬의 평가들이 쏟아져내리고 있는데 진짜로 잘 합니다. ㅋㅋ 이 분 때문에 아무 관심 없었던 '버닝'이 갑자기 보고 싶어졌을 정도.

 결정적으로 이 두 배우 & 캐릭터의 합이 좋습니다. 박신혜가 이야기의 중심을 잡고 안정적으로 받쳐주는 가운데 그 위에서 전종서가 맘껏 화려한 망나니춤을 선보이는 식의 역할 분담도 좋구요. 또 단순하게 협박 하고 당하는 관계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극중에 존재해서 이야기를 흥미롭게 해 줘요. 본격적으로 스릴러 모드로 전환되기 전에 둘이 쌓는 드라마와 감정의 교류 같은 게 썩 괜찮았거든요.


 그리고... 위에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사기다... 라고 한참 투덜거려 놓았지만 어쨌거나 살짝만 눈 감아주면 굉장히 흡입력 있고 스릴이 넘치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위에서 설명한 게임의 규칙상 과거의 미친 놈이 뭐 하나 거하게 망쳐 놓으면 그게 이제 영원히 수습이 안 되거든요. 현재의 주인공은 물론이고 과거의 미친 놈 역시 그걸 돌이킬 방법이 없어요. 그게 계속해서 절망감을 고조시키면서 막판을 숨가쁘게 몰아갑니다.


 마지막으로, 동어반복 같지만 두 주인공의 캐릭터를 잘 만들어 놓은 게 아주 좋았어요. 특히 전종서의 캐릭터가 정말 좋아요. 나름 사연이 있고 인간적인 부분도 있다... 라는 걸 보여주는 것 자체는 흔한 일이지만 그걸 되게 잘 해놨어요. 그냥 일반적인 장르물용으로 만들어진 단순 싸이코패스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막 감정 이입을 해줘야할 불쌍한 놈도 아니고. 보통은 양극단 중 하나로 치우치기 쉬운데 그 중간에서 균형을 되게 잘 잡았더라구요.


 



 - 다만 딱 한 가지.

 전 이 영화의 결말이 싫습니다. 정말 너무너무 싫습니다. 그것 때문에 진짜 재밌게 보다가 기분 잡쳤어요. ㅋㅋㅋ

 일단 결말의 내용 자체가 제 취향이 아니면서 또 그게 영화 속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테마 하나를 뻘짓으로 만들어 버려요. 그런데다가 위에서 제가 한참 투덜거렸던 '말도 안 됨'의 결정체이기도 하거든요.


 스포일러가 될 테니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합니다...



 - 종합하자면 이렇습니다.

 코로나 크리를 맞지 않았으면 당분간 박신혜와 전종서의 대표작이 되었을 겁니다. 흥행도 꽤 잘 됐을 거라고 확신해요. 그만큼 잘 뽑힌 장르물입니다.

 인공적인 '게임'의 규칙 위에서 흘러가는 이야기이지만 두 주인공의 캐릭터를 잘 뽑았고 배우들이 워낙 잘 해줘서 아주 인상적인 결과물이 되었구요.

 스릴러 좋아하시고 특히 시간 여행류 이야기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꼭 보시길. 우주 명작까진 아니지만 한국 장르물들 중에선 꽤 상위권이라고 봅니다.

 솔직히 결말만 아니었으면 다들 그냥 무조건 보시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을 텐데 그게 참 아쉽네요. ㅋㅋㅋ




 + 소화기에는 참 다양한 용도가 있죠. 근데 막판에 스쳐지나는 한 장면은 웃기라고 넣어둔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전 웃었어요. 한참 진지한 장면이었는데. 아니 소화기가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ㅋㅋㅋㅋ


 ++ 재밌게 봤기 때문에 자꾸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생각을 하면 할 수록 이게 또 말이 안 되는 부분들을 자꾸만 깨닫게 됩니다. 이것 참.


 +++ 사실 과거의 그 아이가 미친 놈이라는 건 좀 감춰두는 편이 더 좋았겠죠. 그래서 이 글에는 그걸 언급하지 말까... 했었는데. 이게 원래 극장 개봉용이어서 그런지 포스터가 되게 여러 버전이 있는데 그 중 제가 첨부한 이미지를 제외한 모든 버전에 커다랗게 그 아이의 정체가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넷플릭스의 간단 소개 텍스트에도 버젓이 적혀 있고 듀나님도 리뷰에서 그냥 언급을 하구요. 또 영화에서도 처음부터 끊임 없이 노골적인 힌트들을 던져 줘요. 그래서 저도 그냥 이렇게 적었습니다.


 ++++ 서태지가 아주 비중이 큰 소재로 활용됩니다. 노래도 본인 버전으로 계속 흘러 나오구요. 원래 이 양반이 대중 매체에서 자기 노래 써먹는 걸 좀 싫어하는 캐릭터였던 걸로 알고 있는데. 혹시 박신혜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 양반이 이은성이랑 절친이라서 서태지랑도 친분이 두텁다고 하죠. 크레딧에도 도움 주신 분들 명단의 첫 자리가 서태지더군요.


 +++++ 환타지 로맨스 영화나 코믹 드라마에서 자주 쓰는 설정과 소재를 갖고 살짝 비틀어서 호러를 만들어대는 건 블룸하우스의 특기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봤는데요. 듀나님 리뷰를 보니깐 이게 애초에 리메이크작인 걸로 되어 있네요. 언젠간 블룸하우스 버전이 따로 나올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하면서 듀나님의 다른 최신 리뷰를 보니 블룸하우스는 그새 또 로맨틱 코미디의 호러 버전 영화를 하나 만들어 내놓았군요. 그 양반들 참 성실하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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