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의 이름 이야기

2021.04.28 12:26

양자고양이 조회 수:465

한국 이름들이 로마자 표기도 애매하고 발음하기도 어렵고 등등의 고민을 많이 하지만 직접 타국에서 살아보니 이름에 얽힌 사연은 한국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부르기 쉽고 알아듣기 쉬운 이름이 가장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하는데

한국에서 제 이름은 결코 알아듣기 쉬운 이름은 아니었습니다. 흔하지 않은 이름에 여자 이름으로는 더욱 흔하지 않아 누군가에게 소개하거나 전화 통화할 때 꼭 두 번 이상씩 말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오니까 그런 고민이 사라졌습니다. 온갖 이민자들이 모여드는 곳에 제 이름은 특별히 부르기 어려운 이름도 아니었고 스펠링도 단순해서 적어주면 대부분 제대로 발음하고 특히나 성별은 한국 이름으로는 짐작하기 어려우니까 그런 문제도 사라지고요. 


제 주변 얘기들을 풀어보자면 일단 남친님이 남미 출신이라 스페인어 이름을 갖고 있는데 이름 갖고 고생하는 걸 보면 '아, 내 이름은 아주 쉬운 이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선 스페인어 이름이 긴 경우가 많은데 제 남친님은 이름과 성이 모두 길어서 낭패를 보는 경우입니다. 영어라면 좀 길어도 알아들을텐데 생소한 스페인어 이름에 철자까지 불러주면 기본 세 번 이상 불러줘야 합니다. 게다가 스페인어 이름은 성이 두 개인데 아빠 성과 엄마 성을 따서 각각 씁니다. 표기는 아빠 성을 먼저 적고 엄마 성을 적지만 실제로 각종 서류에서 요구하는 진짜 성은 아빠 성이죠. 그런데 서류에 풀 네임을 적어 놓으면 대부분 제일 마지막 이름을 성으로 알고 적어 놓으니 종종 서류상의 문제가 생겨서 본인 확인이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이름이 긴데 네 개나 되니 프린트에서 막 짤리기도 하고요. 남친님은 거의 20년 가까이 이 곳에서 살고 있는데 바로 며칠전에도 은행이랑  '라스트 네임' 문제로 서류 고치고 대조하고 확인하는 걸 봤습니다.


이 곳에도 커피나 샌드위치 시키면 이름 물어보고 주문하면 이름 불러주는 일이 많아서 우리 둘 다 그 때는 쉬운 영어 이름을 씁니다. 저는 그 때 그 때 유행 따라 아무거나 씁니다. 


회사에 저희 팀에 있는 사람들과 이름 얘기를 하는데 다들 커피 주문하는 예명을 쓰고 있습니다. 한 친구는 미국인인데 이름이 'Lane'이라 그것도 흔하지 않은 이름이라서 두 번씩 꼭 물어본다고요. 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해요. 그래서 커피 주문할 땐 다른 이름 쓴다고 합니다. 다른 친구는 호주 사람인데 성이 'Ts..'로 시작하는 걸 보니 영국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발음을 물어보니까 T는 묵음이고  S부터 발음한대요. 그래서 '너도 이름때문에 한 고생 하겠구나. 사람들이 어떻게 발음하냐고 계속 물어보지 않냐?'고 했더니 자기도 문제는 성이 아니라 퍼스트 네임이랍니다. 이름이 Ellis인데 이것도 없는 이름은 아닌데 커피 주문하면 꼭 'Alice'라고 적는다고요. Alice 를 부르는데 190가까이 되는 거구의 덩치가 산같은 사내가 일어서서 커피를 가지러 가면 사람들이 다 쳐다본대요. 


그래서. 제 이름의 문제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사연은 있는 법. 어떻게 발음하느냐고 물어보고 그렇게 불러주면 되고 샌드위치 주문할 때는 짧고 쉬운 이름 골라서 쓰면 됩니다. 사실 저는 이름 두 글자를 하이픈 없이 스페이스로 띄어 쓰는데 미들 네임 아니고 스페이스 포함해서 모두 퍼스트 네임이예요..라고 하면 그렇게 적어줍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적어도 남친님이 전화 통화로 이름 불러주고 서류 고치는 거 보면서 위로는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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