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이 로봇 개를 넘어뜨리는 장면을 두고 진중권은 '감정이입 능력의 결여'라 비판한 바 있는데, 이에 대한 주된 반론은 이같은 행위가 '로봇의 자세복원 시험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는 것.

최근의 몇가지 사건들을 보며 이 일이 생각나서 해당 영상을 찾아보니.. 아니 그냥 이재명의 제스쳐를 폭력적이라 할 수 있을지가 의문.

억지 비판과 논지를 벗어난 반론.

사실을 호도한 진중권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겠으나, 저런 반론들이 도리어 진중권의 논지를 강화하면서 사태는 대망진창으로 전개. 저들의 반론이 비인간을 대상으로 행사하는 폭력을 옹호하는 성격을 띄기 때문.

'안 했습니다'로 족한걸 '그게 뭐가 나빠?'로 반론할 필요가 있느냐 말임. 이게 다 유시민 때문이다.

이재명의 사례에 부합한다 할 수는 없으나, 사람이 비인간의 대상 특히 사물에 이입하거나 애착을 갖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 이같은 현상은 동물계에서도 발견되므로 인간의 고유한 정신작용이라 할 수는 없을 것. 우리가 그들의 생태에 도덕성을 요구하지 않는 것처럼 이런 현상들을 고등한 정신능력의 발현으로 여기지 않을 뿐. 정직하게 말하자면 사물에 대한 우리의 애착은 정신에 남은 진화의 흔적에 가까운 것, 우리가 동물임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징표 아닐까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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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며칠 전의 폭설을 맞아 많은 이들이 눈사람을 만드는데 열중했음. 눈오리의 대량생산 플로우 사이로 누군가는 눈사람을 걷어차는 자들을 원망하고, 누군가는 자신은 연례 행사로 석재 볼라드를 심은 눈사람을 만든다 떠벌이기도.

네? 저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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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커여운 아기 개발자들이 토이프로젝트로 시작한 colormytree란 서비스가 있음. 해당 서비스의 취약점을 발견한 일군의 '못된 녀석들'이 대량의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테러를 자행. 이로 인해 서비스 장애와 금전적 피해가 발생하자,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서비스 주체인 산타파이브 팀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함. 서비스는 정상화되고 피해는 복원 중에 있으며 우리는 성긴 선의로 연결된 이타적 공동체의 가능성을 다시 발견함. 여기까지는 아름다운 이야기.

그러나 모든 이야기에는 불편한 지점이 있고, 자타공인 '저만 불편한가요' 게시판이므로 이 불편함에 대해 얘기하기로.
저 '못된 녀석들'을 하필 '못된 녀석들'로 지칭하는 이유는, 아무리 봐도 쟤들은 그냥 철딱서니없는 애기들로 보인단 말임. 애초에 악의적으로 사이버테러를 벌이는 범죄자들이 공개적으로 자신들이 벌인 일을 광고하는 사태를 납득할 수 있겠음? 며칠 전의 민정수석 아들과 마찬가지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어떤 일이 벌어지면 여기엔 뭔가 특기할만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 간주하고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음.(따라서 그 기사는 경솔했다 평가해야.)

산타파이브 사건에 공분하며 협력하고 있는 이들의 선의는 의심치 않으나, 종종 그런 선의들이 적절한 개입의 선을 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함. 일례로 저 사태에 책임있는 어떤 인물은 공개된 자신의 트위터 계정으로 사과문을 올리고 있더란 말임. 거기엔 그의 개인 홈페이지 링크와 유튜버로 자신을 소개하는 바이오가 붙어 있었고, 나는 어렵지 않게 저 개인의 신상을 탈탈 털어낼 수 있을거라 기대함. 저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그래야 한다는 인식조차 없어보인다는 얘기.

산타파이브와 그 협력자들이 이 일을 어른스럽게 처리해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음. 저들이 어리거나 또는 지능장애가 의심되므로 관대하게 용서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게 아님. 잘못을 벌하고 책임을 묻는 일과 가해자인 약자를 보호하는 일이 병행되지 못할 이유란 없음. 정의감에 도취되어 분별을 잃는 일이 없기를 바람.

이 에피소드가 인간에 대한 혐오를 강화하는 것으로 끝나게 될지, 그래도 아직 희망이 있나보다로 끝나게 될지 모르겠음. 거짓 낙관이라도 품어보고 싶은 건 크리스마스 시즌이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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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눈사람을 걷어차고, 다른 누군가는 볼라드를 심은 눈사람을 만들고, 또 누군가는 조두순의 머리를 망치로 내려치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왜 어떤 사람들은 눈사람을 걷어차는걸까?' 조금쯤 슬퍼하면서도 무해한 눈사람을 만들고 있음.

그러게.. 왜 걷어차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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