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작이고 런닝타임은 두 시간. 스포일러는 없게 적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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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따위 잡음일 뿐!!!! 이라는 거친 메탈 청춘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아냐!!)



 - 제목과 포스터 이미지처럼 거친 공연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드러머구요. 현란한 손놀림으로 귀와 뇌를 박박 자극하는 공연을 멋지게 마무리하네요. 장면이 바뀌면 주인공이 사는 캠핑카입니다. 아까 공연의 여성 보컬님과 연인 사이구요. 보아하니 진짜로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보기 좋은 커플인 것 같고. 캠핑카에 장비를 싣고 몸도 싣고 전국을 떠돌며 공연을 다니나봐요. 그리고 도착한 새 공연 장소에서... 갑자기 주인공은 자신의 귀에 이상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병원에 갔더니 무시무시한 얘기 두 가지를 해줘요. 1. 무조건 귀를 아껴야한다. 큰 소음은 절대 불가. 2. 지금도 니 청력은 실시간으로 사라져가고 있으며, 한 번 사라진 청력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이 저항 불가의 재난을 과연 우리의 주인공은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뭐 이런 내용의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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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중에서 주인공더러 '부엉이처럼 생겼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배우 얼굴을 보고 만든 대사임이 분명하다고 확신했습니다. ㅋㅋ)



 - 듀게에서 추천의 글이나 댓글을 종종 봤던 영화였습니다만 굳이 보지 않았던 건... 아시다시피(?) 저는 휴먼 드라마 같은 덴 별로 취미가 없습니다. 메탈 사운드로 사람을 사지분해 한다든가, 드러머가 의문의 연쇄 살인 사건에 휘말린다든가, 혹은 본인이 전설의 '드럼채 살인마'라든가. 이런 영화가 아니면 볼 의욕이 별로... ㅋㅋㅋ 그래서 제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봐도 '조용한 희망'은 아직도 안 보고 있는 것이기도 하죠.

 암튼 그렇게 자자한 호평을 못 본 채하며 미루고 미루고 미뤄두다가 결국 보기로 결심한 건 엊그제 본 '픽시' 때문에요. 올리비아 쿡 나온 영화를 하나 더 보고 싶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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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로 올리비아 쿡은 스토리상 시작과 끝에만 나옵니다. 분량이 아주 작진 않고 역할도 분명 중요하구요. 그냥... 그렇습니다. ㅋㅋ)



 - 어쨌든 그래서 이 영화는... 음. 듣던 대로 참 따스한 영화입니다. 참으로 암울하고 비극적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래요. 참 따뜻합니다.


 일단 이야기 속에 '나쁜 사람'이라고 볼만한 인물이 정말 단 하나도 안 나와요. 되게 착하든가 적당히 착하든가 둘 중 하나죠. 가장 먼저 버리고 튈만한 여자 친구님은 그 와중에 아주 현명하게 주인공에게 가장 필요한 조치를 다 취해주고요. 주인공이 처음 가는 시설 두목님도 배려와 이해심, 그리고 신념을 두루 갖춘 멋진 양반이구요. 그 와중에 만나는 비중 소소한 인물들도 다 그냥 착하고 자기 인생 열심히 사는 좋은 사람들입니다. 덧붙여 우리의 주인공도, 그 갑작스런 비극을 생각하면 안 망가지고 잘 버티며 몸부림치는 꽤 괜찮은 사람으로 묘사되구요.


 나오는 사람들이 다 그렇다 보니 주인공의 고난도 그 양반이 처한 상황에 비해 상당히 순한 맛이 됩니다. 아니 당연히 본인 입장에선 전혀 순하지가 않죠. 그렇긴 한데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이 모두 다 힘을 합해 쿠션 역할을 해줘요. 사실 보면서 '이 양반 정말 운이 너무 좋은 거 아냐?'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현실에서 그런 인물이 이런 고난을 겪게 된다면 저얼대로 이런 식으로 풀리진 않을 거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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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기엔 살짝 무서워 보일 수 있겠습니다만. 모두 다 한 명도 빠짐 없이 모두 좋은 사람들입니다.)



 - 하지만 그렇게 좀 덜 현실적이네? 싶을 정도로 선량하고 따스한 전개가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자 장점이라고 느꼈습니다. 선량하고 따스해봤자 어차피 주인공의 고난이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구요. 그 안에서 주인공은 충분히 고통에 몸부림치구요. 그냥 그 정도만 되어도 충분하죠. 무슨 고문 포르노도 아니고 현실 고발 르포도 아닌데 주인공을 악당들만 득시글거리는 차가운 세상으로 몰아 넣고 극한까지 쥐어짜서 관객이든 누구든 얻을 게 뭡니까. 음악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음악 밖에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귀가 멀었다잖아요!! 여기서 더 뭘!!!! (흥분.)

 ...암튼 그렇게 따사로운 주변 사람들 덕에 오히려 주인공에게 닥친 비극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는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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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로 이런 일 하시는 분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실감나는 캐릭터였던 청각 장애인 공동체 리더님.)



 - 그 외엔 뭐... 그냥 전형적으로 흘러갑니다. 충격과 고통에 몸부림치며 현실을 부정해보려고 하다가, 포기하고 그 상황에 적응하려 노력하다가, 그게 잘 풀려갈 때 쯤에 어떤 일이 벌어져서 갑자기 다른 맘을 먹는 바람에 오히려 일이 꼬이면서 바닥을 치구요. 그 상황에 어떤 깨달음을 얻으면서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자신의 삶 자체에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눈을 뜨게 되고. 그렇게 조용히, 요란한 사건과 엄청난 감정 분출 같은 것 없이 고통을 극복하고 새로운 길을 걸어가게 되는 이야기죠.


 그렇게 전형적인 와중에 맘에 들었던 건 바로 방금 전에 적은 것처럼 '요란법석'이 없었다는 겁니다. 클라이막스에 등장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아픈 순간은 정말 조용하고 차분하게, 그냥 일상적인 느낌으로 흘러가요. 참으로 아프고 애잔하고 안타깝지만, 그게 옳은 선택이고 현명한 길이라는 데 공감하게 되면서 그냥 납득하고 응원하게 되는 거죠. 상당히 인상적인 장면이고 또 좋은 장면이었어요. 차분한 연출도 좋고 두 젊은 배우의 오버하지 않는 연기도 참 성숙한 느낌으로 맘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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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리비아 쿡은 립씽크 연기도 참 잘 하네... 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더라구요?)



 - 또... 얘기할 게 뭐가 남았으려나요.

 착하고 선량한 영화의 톤과 어울리게 화면 톤도 차분하게 살짝 가라앉았으면서도 따뜻한 톤으로 이어집니다. 고정시켜 놓았다가 감정이 격해질 때마다 헬드핸드가 섞이는 카메라도 거기에 맞게 오버하지 않고 미묘한 흔들림 정도를 잡아내는 데 만족하구요.

 귀가 안 들리게 된다는 주인공의 상황과 심리를 관객들에게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들어간 사운드 효과들도 효율적으로 잘 쓰였습니다. 특히 초반에, 귀가 들리다 말다 할 때의 연출들이 좋았네요. 일상의 소소한 소리들을 차분하게 들려주면서 '들린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실감하게 해주더라구요.


 마지막으로 나름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주인공이 누군가에게 다시 들을 수 있을 거란 희망에 차서 열변을 토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차분하게 그 이야길 듣던 상대방이 차분하게 한 마디 해요. '당신 방금 마치 중독자 같았어.'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되게 신선한 느낌이었어요.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구요. 이미 완전히 잃어버린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것. 설사 그 잃어버린 것이 원래는 아주 평범한 것이었다고 한들 그 상태는 중독자들의 그것과 별로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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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에 적응하며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어린이들과 부엉이 한 마리.)



 - 그래서 결론은 대략 이렇습니다.

 장애에 대한 이야기이고 실제로 청각 장애를 얻은 사람들의 삶이 디테일하게 묘사되지만, 결국 장애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구요. 삶에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사건을 겪은 사람이 그것을 이겨내고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며 그와 함께 성숙해 나가는 일종의 성장담이라고 느꼈습니다. 

 오버하지 않고, 필요 이상의 자극을 심지 않으면서도 적절하게 감정을 움직여 나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센스가 좋았구요. 배우들 연기나 아름답게 촬영된 화면들도 좋았습니다. 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결말도 그렇게 전형적이지 않으면서, 동시에 과하게 쿨싴하지 않은 정도로 적절히 풀어내서 다 보고난 후 기분도 좋았어요.

 이렇게 보람찬 두 시간을 보냈으니 전 이제 다시 드럼채를 들고 희생자를 물색하러 다니는 변태들의 세계로 떠나겠습니... ㅋㅋㅋ

 암튼 부담스런 자극 없이 적절 훈훈한 치유의 시간을 원하는 분들께 추천해드립니다. 듣던 대로 잘 만든 영화였네요.




 + 뭐 영화 내용상 주인공이 참 운이 좋은 사람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이런저런 배려들이 상당히 잘 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는데요. 미국의 실상은 어떠한지, 그리고 한국 사정은 어떤지 궁금해지더군요.



 ++ 영화를 본 후 이것저것 검색을 해 보다가... 음? 영화 도입부에 나오는 공연 장면의 노래를 올리비아 쿡이 직접 불렀나 보네요? 하하 좀 놀랐습니다. 당연히 립씽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그럴싸한 기타 '퍼포먼스'를 위해 실제 뮤지션을 만나서 이런저런 요령도 배우고 샤우팅 방법도 배웠다네요. ㅋㅋ 마찬가지로 리즈 아메드도 실제로 드럼을 몇 달 배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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