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1999년 코파아메이카 아르헨티나 vs 콜롬비아. 


축구사에 다시 없을 진기록이 탄생합니다. 아르헨티나는 PK를 3개나 얻어냈지만 3개 모두 실축해 버렸습니다. 더더욱 진기한 것은 그 3개를 모두 한 선수가 실축했다는 사실이었죠. 전성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위용을 과시하고 있던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와 그의 후계자로 주목받던 에르난 크레스포, 그리고 그에 필적하는 신성들이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축구강국 아르헨티나의 스트라이커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상황에서 이런 실수는 너무나 뼈아픈 것이었고, 이는 결국 0-3의 대패로 이어집니다.


한경기 PK 3개 실축이라는 기념비적인 기록과 함께 그는 패배의 원흉이 됐고 조국의 광적인 팬들에게 살해위협을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는 예상대로 다시는 아르헨티나의 국가대표로 부름을 받지 못합니다. 그의 국적이 '아르헨티나'만 아니었던들 그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말입니다. 그는 좌절하지 않고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를 남미 챔피언의 자리에 올려 놓는 활약을 펼치며 유럽으로 진출하지만 발목이 부러지는 큰 부상과 부진을 극복하지 못하고 다시 쓸쓸히 아르헨티나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어쨌건 이 경기 이후 그는 'PK 실축'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합니다. 아르헨티나 최고 명문 보카 주니어스에서 3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주전으로 계속 활약하고 팀의 역대 통산 최다골을 갱신하는 대기록을 수립했지만 전세계의 축구팬들에게 그의 이름이 의미하는 건 한 경기 최다 PK실축이었습니다. 이 불운한 선수의 이름은 마르틴 팔레르모.


장면 2.


2009년 10월. 남아공 월드컵 남미예선 아르헨티나 vs 페루.


폭우속의 수중전. 후반 45분이 모두 지난 상황에서 스코어는 1-1. 예선 꼴찌팀을 상대로 아르헨티나는 졸전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자칫 이 경기를 놓친다면 자력으로 월드컵에 진출할 수 없고 플레이오프로 밀려나야 하는 위기 상황. 추가시간마져 끝을 향해 내닿던 순간 혼신의 힘을 쥐어 짜낸 아르헨티나의 마지막 공격이 문전 앞 혼전을 불렀고, 페루 수비수의 발을 맞고 튕긴 공이 아르헨티나 선수 앞에 떨어지고 그는 그 공을 골대 안으로 밀어 넣습니다. 극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결승골. 아르헨티나는 열광했고, 그는 'San Martin'이라고 불리웁니다. 


그 순간의 주인공 마르틴 팔레르모. 저 불운한 경기 이후10년 동안 아르헨티나 국가대표와 인연이 없던, 누구나 다시는 아르헨티나의 유니폼을 입은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거라 믿던 그를 마라도나 감독은 다시 국가대표로 발탁했고, 그로 인해 가뜩이나 구설수에 시달리던 마라도나 감독이 더더욱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다른 누구도 아닌 그가 벼랑끝에서 아르헨티나를 구해냈습니다.


장면 3.


2010년 6월. 남아공 월드컵 B조 최종전 아르헨티나 vs 그리스


후반 44분. 메시의 환상적인 드리블에 이은 강력한 슛팅이 골키퍼의 선방에 막혀 튀어나오는 그 자리로 그가 쇄도하고 강력한 슛팅이 골망을 시원하게 갈랐습니다. 2-0 쐐기골. 그는 환하게 웃었고, 동료들은 그를 축하했습니다. 마르틴 팔레르모. 비록 남미예선에서 아르헨티나를 구하긴 했지만 최종 엔트리에 뽑힐 지는 의심을 받았던 그가 그 스스로 '거대한 꿈'이라 말하던 월드컵 출장과 함께 데뷔골을 터뜨린 순간이었습니다.


그에게 또 다시 출장기회가 주어질까요?


인터밀란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디에고 밀리토나 토레스가 떠난 이후 AT 마드리드의 공격을 혼자 이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아게로도 벤치에서 대기해야 하는, 화려하다 못해 과하기까지 한 스쿼드를 보면 한경기의 승패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토너먼트에서 다시 그의 모습을 보는 게 쉬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승패가 완전히 기울어버린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말이지요.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는 이미 승리자입니다. 1973년생. 만 37세. 다른 동료들이 선수로서의 꿈을 접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 나이에 그는 그 자신의 '거대한 꿈'을 이뤄냈습니다.


그에게 지구반대편의 한 축구팬이 축하인사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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