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제목을 빌려오긴 했지만, 다른 글에 대한 늦달님의 리플에 대한 글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글이 길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아침. 잠이 덜 깬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바닥에 흰 A4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뭔가 휘갈겨진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는데, 짐작은 했지만 내용을 한 번 읽어 봤습니다.

 

내용은 '안되는 이유'에 관한 것입니다.

무엇이 안되냐 하면 제가 그와 결혼하는 것이 안되는 일입니다.

한 번 읽고 그대로 찢어서 버려둔 채 출근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 근래 몇 년을 사귀었습니다.

재작년부터 결혼 이야기를 꺼냈는데, 결국 실패했습니다.  모친('어머니'라고 쓰기가 너무 힘듭니다)의 생각에 그는 경멸의 대상입니다.

 

저의 집은 흔한 기준으로 봐서, 좋은 집안에 속한다고들 합니다.

부친의 번듯한 이력에 재물이 많을 것 같은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 역시, 아무것도 모르고 보면 번듯한 사람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싫은 부친은 어려운 환경에서 힘들게 성장해서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대하기 불편합니다.

말씀하시는 이상과 실제 생활에서의 현실에는 극복할 수 없는 괴리가 있는데, 그것은 모두 남의 잘못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모친은, 당신의 표현에 따르면 지옥같은 가정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그러하듯,  스스로 생각하기에 상상할 수 없는 시집살이를 했고, 남편으로부터 학대를 받기도 했습니다.

역시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한번 아니다 싶으면 공존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마저 사라지고, 스스로를 학대하면서 그 힘을 빌어 상대방을 혐오합니다.

결국 그게 누구를 해치는 것인지에 대한 조금의 양해도 하지 않고, 이 모든 파멸은 모두 너때문이라는 논리로 스스로를 옭아맵니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를 우리 집에서 받아들이기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것.

몇 해 전인가, 부유한 재력가 집에서 결혼을 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싫었습니다. 돈 많은 사람의 악세사리가 되고 싶지 않았고, 사위들의 충성경쟁 대열에 끼고 싶지고 않았고, 무엇보다도 여자분의 야망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저는 그 당시 새로운 직장 때문에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청렴한 선비임을 자처하는 아버지는 제가 그 집에 가면 제 집 문제 등을 모두 해결해 줄 것 아니냐고 하셨습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선을 보라는 것입니까. 부친은 침묵하셨습니다.

 

저는 그를 사랑했습니다. 그와 있을 때 가장 마음 편했고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그라고 해서 객관적으로 그렇게 부족한 사람이 아닙니다.

몇 가지 단점이 있지만, 결국 경제적인 문제로 환원되어질 성질의 것이고 그건 결혼하는 제가 감내할 몫입니다.

 

그러나 모친은 설득이 되질 않았습니다. 제가 그 문제를 꺼낼 때 마다, 소름끼치는 언사를 거침없이 쏟아냈습니다.

그리고 부친은 굳이 반대는 안하겠지만, 모친을 설득하는 문제는 제가 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한 명있는 형제는 아무말이 없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부친이나 형제는 저를 도와주기 보다는 항상 일을 키워왔다는 생각이 있어서인지, 굳이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제가 겪고 있는 고통을 알면서도 나몰라라 하는 모습이 너무나 뻔하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그를 보내주었습니다.

아이같이, 정말 어린 아이같이 울면서 너는 나랑 같이 있으면 비참해진다. 너 뿐만 아니라 너의 소중한 가족 모두가 극심한 마음고생을 하게 된다.

나는 그거는 정말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동안 나를 사귀면서 마음고생한 거 다 아는데, 이제라도 뭔가 해결이 되었어야 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음에 대해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는 내 잘 못이 아니라고 했고, 저는 이 절망감에서 너라도 빠져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와 헤어진 고통의 크기가 얼마만큼일지 몰라서 두렵습니다.

살아가다가 그가 몸서리치게 보고싶을 때, 그런 순간 순간에 제가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얼마다 바보같은 짓을 한건지를 살다가 어느 순간 알게 되었을 때 겪게 될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무슨 변명으로 감내하여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부친은 선을 보라고 연락처를 주었습니다.

제 나이가 몇인데, 이제는 집안 생각도 해야 한다는 말고 함께요. 아마도 여기저기 며느리 자랑이 하고 싶은 단신의 욕망을 제가 이루어 달라는 것이라면,

그렇게 말을 하면 될 것을, 집안을 생각한다는 말로 표현하더군요.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할머님의 생신이었는데, 두 분이 참석하여 돌아와서는,

모친이 제게 인간으로서 기본이 안되었다고 세상에 저같은 놈이 없다고 하더군요.

저는 당신이 내게 그런말 할 자격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결혼이라는 것이 당신이 하지말라면 하지 말고, 하라면 해야되는 것인가.

내 고통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으면서, 오직 내 결혼만 이루어 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모친은 그녀를 지칭하면서 아직도 안헤어진거냐고 앙칼지게 따지고 들었습니다.

저는 폭발했고, 이 상황에서 헤어졌는냐 안헤어졌는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만 말하려 했는데, 나도 모르게 

당신이 원하는 대로 헤어져 주었다고 했습니다. 너무나 서러워서, 그리고 그녀에게 너무도 미안해서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모친이 말했습니다. 너는 부모의 마음을 모른다고.

그따위것 궁금하지도 않다고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밤새 자신의 화를 참지 못한 모친은, 종이에 자신이 옳다는 근거를 휘갈겨서 제 방에 던져두었구요.

말그대로 비참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저도 제가 요즘 무슨생각으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제가 무능한 탓이겠지요.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병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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